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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Aug 25. 2021

코로나 시국 장례식에 참석하려면

해외 거주자가 한국 장례식에 참석하는 '긴 여정'에 대하여

몇 달 전 부모님과 샌디에고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라호야 비치에 도착해 인근 유명 브런치 식당에서 막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에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따라 남편의 전화가 의아하게 느껴졌다. 굳이 이 시간에 내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 남편이 전화를? 잘 도착했느냐,를 묻기 위한 안부전화일 수도 있지만, 그건 카톡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약간은 의아한 감정으로 "응, 남편?" 이라고 답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쩌면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의아함은 불길한 증조를 미세하게나마 감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화기 너머 남편이 들려준 이야기는 희소식은 아니었다. 한국에 계신 남편 할아버지의 부고였다.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건강이 최근 급격히 악화됐다는 소식을 작은아버지께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해외에 살면서 가장 힘들 때는 바로 이럴 때, 경조사를 챙기지 못할 때다. 특히나 가족과 친구들이 겪고 있는 큰 슬픔을 함께하지 못할 때가 가장 슬프다. 8월에 친한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어둔 터였는데, 엄마 아빠는 그 비행기표를 앞으로 당겨 남편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는게 어떠냐고 하셨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인 상황에서 친구의 결혼식 참석을 포기하고 가족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이 더 이치에 맞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나 역시 동의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부고 소식을 들은 바로 다음 날,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코로나 시국에 장례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 티켓을 끊은 후 바로  해외 입국자 격리면제서 신청을 해야했다. 격리면제 신청을 위해서는 여권 사본, 사망 진단 증명서, 전자 항공권, 가족관계증명서, 격리 면제 발급 신청서(활동계획 포함) 및 동의서, 방역수칙 이행각서 등의 서류를 영사관에 제출하면 된다. 서류들을 거주 지역 영사관에 직접 제출하거나 이메일로 전송하면 되는데, 시간이 급박한 만큼 남편은 직접 LA 총영사관에 방문해 격리면제서를 발급 받았다(부부 중 한 명만 영사관에 직접 방문해 배우자의 격리면제서까지 대리 발급이 가능).


다음날 난 부랴부랴 샌디에고에서 엘에이로 돌아왔고, 30분 만에 짐을 싸서 남편과 함께 공항으로 출발했다. 탑승 게이트 앞에는 사람들이 많아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는 2시간이나 남았는데, 갈 곳 잃은 우리는 공항을 어기적 걸어다니다 한 술집에 들어오게 됐다.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시켜 남편과 홀짝이며 생각했다. 우리는 누구, 여긴 어디지?


미국에 살면서 한국을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가본 일은 처음이었다. 해외 거주자에게 고국에 방문하는 일은 1년 중 명절과 같은 '대행사'로 여겨진다. 캐리어에 가족들,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바리바리 싸서 한국가는 날만 고대하는 건 해외 거주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남편도 나도 얼떨떨했다. 나는 한국에서 결혼한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뵌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뵐 때마다 얼마나 따스한 분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남편 또한 오랜 유학생활로 인해 할아버지와의 많은 추억은 없지만, 어린 시절 할아버지 집에서 친척들과 함께 놀았던 풍경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90세 넘게까지 살다가신 할아버지의 죽음은 '호상'일까? 세상에 호상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다면...




비행기에서 긴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한국에 도착했다. 미국에서 한국갈 때는 필히 밤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러면 시차적응도 빠르고, 비행기에서 숙면을 취할 수도 있다. 아시아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A380을 더이상 운행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날 우리가 탄 비행기는 과거 한국갈 때 타던 비행기들과 비교해 굉장히 작았고, 그랬기 때문인지 예상 도착시간 보다 2시간이나 빨리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 시각으로 새벽 3시였다. 평소였더라면, 장례식 때문에 한국에 온 게 아니었더라면 이른 도착은 분명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례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온 것이었고, 지금은 코로나19 시기였다. 그 이야기인 즉슨, 입국하기 위해서 치뤄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남편과 나는 '장례식 참석'이라는 목적으로 인해 급히 한국에 온 것이므로 비행기 탑승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코로나19 PCR 검사지 제출을 면제 받았다. 대신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PCR 검사를 받아야했다. 


그런데 문제는 인천공항 내 입국자들을 위한 PCR 검사소가 오전 7시에 문을 연다는 것이다. 오전 3시에 도착한 우리는 꼼짝없이 오전 7시까지 공항에 발이 묶여야했다. 게다가 검사소가 문을 열자 마자 코PCR 검사를 받는다해도 결과지가 나오는 최소 4~6시간 동안은 공항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즉, 오전 3시에 도착한 우리는 오전 11시까지 인천공항에서 갇힌 신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온 지라 온 몸이 소금에 절인 배추 마냥 쳐졌다. 그 와중에 검사소 의자에 하염없이 앉아있는 일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장례식 참석을 위해선 1분1초가 아까운데, 이렇게 공황에서 10시간 넘게 대기해야 하다니 나라 법이 잘못 만들어졌구나 싶었다. PCR 검사지 없이 '격리면제'를 해주면 뭐하나. 공항에서 발이 묶여 버리는데.


물론 보건소 가서 검사 받는 것 또한 가능했지만, 보건소에서는 PCR 검사 결과가 다음날에야 나오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진 집에 있어야 한다. 당장이라도 장례식에 가야하는 이들이 도저히 택할 수 없는 있으나 마나한 선택지였다.

남편과 공항 내부를 몇바퀴나 돌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오전 7시가 됐고, 우리는 1등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이후 우리는 공항 내에 웬 정체불명의 부스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추우면 덮개용도로 쓰라며 받은 은박지를 깔고 앉아 검사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공항 직원이 나눠준 아침 식사 대용인 김밥이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웠다.


이런  난민이 아닐까? 나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인데, 국가로부터 하대받는다는 기분에 쓰라렸다.  부스에서 들려오는 이야깃소리에  기울여 보니 그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족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라에 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거지 취급을   있냐며 씩씩대는 그들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거세게 끄덕였다.




오전 11시 무렵. 이메일로 '코로나19 진단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 이제야 우리에게 자유가 왔다. 잠시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이 된 듯 했는데, 공항과 작별할 시간이 왔다. 감옥에서 나온 죄수의 자유로운 기분을 살짝 맛봤다면 나는 과장이 심한 사람인걸까? 그런데 진짜 그랬다.


그런데 한 가지...복병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남편은 장례식만 참석하고 2박3일 후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인데, 미국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3일 안에 검사한 PCR 결과지가 있어야 했다. 이미 인천공항에서 받은 결과가 있지 않냐고? 그건 프린트가 안되기 때문에...인근 병원에서 또다시 받아야 한단다. 아니 뭐 이런 개똥같은 법이..........


그리하여 인천 나사렛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19 검사를 하기 위해. 이미 몇 시간 전에 받은 코로나19 검사 결과 자신이 '음성'인걸 뻔히 알면서도 남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코를 찔려야했다. 인천공항에서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는 왜 미국으로 돌아갈 때는 인정해주지 않는건지, 나라 법에 대한 욕만 나왔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무사히 장례식에 참석했고, 할아버지의 발인도 지켜볼 수 있었다. 격리 면제가 가능한 덕분에 코로나19 시국에도 가족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19 관련 법들이 조금 더 현실에 맞게 개선돼야 할 필요성은 너무나 명확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게 한 만큼 법을 만드시는 분들도 정신이 없을게다. 그래도 법 개선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인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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