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Aug 27. 2021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무리하지 말고, 힘을 빼기

당신에게 4일이라는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남편 할아버지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지난 브런치 참조:https://brunch.co.kr/@ummi/89) 급 한국에 방문한 바람에 나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한국에서 자유시간 4일이 주어졌다. 마침 미국에 방문 중이던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봐주고 계신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혼자서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것도 내 고국 한국에서 말이다. 남편은 장례식 일정을 마친 후 곧바로 미국에 돌아갔고, 남편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은 시댁에서 지냈던 나는 남편이 가자 마자 친정집으로 향했다.  



친정집에 도착해 짐을 푸르고 나서야 진짜 한국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엄마, 아빠가 반갑게 맞아주지 않는 조용한 친정집이 낯설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혼자서 나만의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마치 결혼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4일. 이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는 10가지도 넘었다. ‘하고싶은 일’과 ‘꼭 해야만 하는 일’을 구분해서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꼭 해야만 하는 일: 은행, 피부과, 외갓집 등 방문

하고 싶은 일: 미용실 가기, 친구들 만나기, 쇼핑하기, 서점 구경



우선 은행일이 급선무였다. 한국 번호가 없는 미국에서는 한국 은행 계좌, 주식 등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내 계좌임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에 뜨는 인증번호가 없어 은행일을 보지 못한 지 꽤나 오래 됐다. 사고싶었던 한국 주식도 살 수가 없었고. 때문에 미루고 미뤄왔던 은행일을 처리하는 게 4일의 자유시간 동안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이었다.


뒤이어 피부과를 가야했다. 몇 년 전부터 두피에 여드름 같은 종기가 났는데, 종기는 몇 년 동안 그곳에서 사라질 줄을 몰랐다. 머리를 만질 때 마다 두피에 난 종기가 거슬렸고, 한국 피부과에서 꼭 종기를 제거하고 가야겠다고 결심을 해둔 터였다. 한국에선 피부과에서 쉽게 받을 수 있는 치료가 미국에선 참 어려워서, 피부과 가는 일도 꼭 해야할 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외갓집도 꼭 가봐야지. 남편의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살아계신 분은 외할머니 한 명 뿐.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1년에 고작 한 번 뵐까 말까인 외할머니를 이번에 꼭 뵙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4일 동안 모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귀하게 아껴썼다. 그 결과 위에 나열한 '해야만 하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할 수 있었다. 그런데...사건은 마지막 날 터졌다.


오후 8시40분 비행기를 타야했던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


그날까지도 내 스케줄은 빡빡했다. 오전에 증권회사를 갔다가 친구들과 점심 브런치를 먹고, 피부과에 가서 종기를 제거하는 게 내 일정이었다. 피부과 일을 가장 마지막 일정으로 배치해둔 이유는 미용실을 가기 위해서였다. 종기를 제고하고 나면 당분간 염색이 불가하다고 하여, 미용실에서 염색과 클리닉을 한 후 마지막날 종기 제거를 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친구들과 식사를 마치고 집 앞 피부과에 도착하는 데까지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몸이 피곤해도 너무 피곤한 거였다. 한국에 오자마자 시차적응이랄 것도 없이 장례식 일정을 소화했고, 이후 4일 동안 자유부인 시간을 최대한 즐기고자 홍길동 같은 삶을 살았으니 극심한 피로감은 당연한 결과였다. 아마 그 때 내 얼굴은 유령신부 같지 않았으려나. 한국 살던 시절부터 단골이었던 옷가게에 잠시 들렸을 때, 사장님이 내 얼굴을 보고선 혀를 끌끌 차며 비타민을 챙겨주셨으니, 한국에서의 내 얼굴은 도저히 봐주기 힘들 수준이었을게다.


피부과 상담실에서 종기 제거 방법에 대해 듣다가 책상 위 놓여있는 피부과 관리 가격표에서 '영양제 주사'를 발견했다. 과거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힘이 났던 기억이 나서 영양제 주사에 온 신경이 집중됐다. '지금 내가 느끼는 피로감을 단 시간 내로 풀 방법은 저 주사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장님께 영양제 주사에 대해 물어봤고, 실장님는 병원 사람들도 피곤할 때면 꼭 맞는다는 '마늘 주사'를 강추해주셨다.


"30분이면 충분할까요? 종기 제거와 동시에 가능할까요?"


촉박하지만 가능할 거라는 답변을 듣고 충동적으로 마늘 주사까지 맞기로 결정을 내렸다. 말할 수 없이 피곤했기에, 그 피곤을 풀고싶은 마음이 컸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예상 시간보다 종기 제거와 마늘 주사 맞는 일은 긴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종기 제거 후 염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약국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시간 계산에 넣지 않은 일이었고, 결국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 늦게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4단계 정책으로 인해 뻥- 뚫릴 줄 알았던 올림픽 대로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막혔다. 이러다 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는 길에 설마해서 아시아나 항공 측에 연락을 해봤더니 출발시간 최소 50분 전까지는 티켓팅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8시40분 비행기이니, 7시50분까지는 도착을 해야했다. 라이드를 해준 남동생이 엑셀을 밟아 겨우 7시48분쯤 아시아나 항공에서 티켓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복병은 시내 면세점에서 사둔 물건을 찾는 일. 비행기 타기에도 촉박한 시간에 탑승구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100미터 질주하는 사람 마냥 달리고 달려 면세품 찾기까지도 성공했다. 면세품 물건을 들고 또 다시 탑승게이트로 달렸다. 마스크를 쓴 채 전력질주를 하니 숨 쉬기가 힘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탑승게이트에서 승무원에게 표를 내밀자 상대 직원의 '이 사람 뭐지'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힘든 여정 끝에 내 좌석에 앉았다.


해냈다,는 감정과 함께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다 문득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하고싶은 걸 다 하면서,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내며 살아가면 원하던 대부분의 일을 이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난 4일동안 내가 한국에서 하고자 했던 모든 일들을 다 했던 것처럼. 하지만 여기서 함정은 무리하게 모든 걸 다 이뤄내고자 아둥바둥 하면, 결과로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전혀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만 해도 4일간 바쁘게 지내느라 그 순간을 완벽하게 즐기진 못했다. 피곤함을 애써 억누르며 친구들을 만나고, 서점에 가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행복했나?


마음을 비우고,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일정으로 하루를 살았더라면 한국에서 보내는 4일 동안 순간 순간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을텐데. 내 아이디가 왜 더음미인가. 삶의 많은 부분을 음미하며 살고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음미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먹어치운 것 같아 스스로에게 마음이 아팠다. 여유가 전혀 없었구나 너...



비행기를 놓칠 뻔 하고 깨달은 사실은 무리하지 말자는 것.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이 삶을 마주하자는 것. 인생이라는 큰 여행의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는 무리하지 않고, 힘빼기 기술을 연마해야하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시국 장례식에 참석하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