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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Nov 29. 2019

스타벅스의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

스타벅스의 카페모카



1년 내내 거의 여름인 LA에 거주하고 있지만, 사실 LA에도 나름대로의 겨울은 존재한다. 11월말 또는 12월 초부터 2월까지 LA에는 눈 대신 비가 내린다. 지난해의 경우 그 시기에 강수량이 유난히 높아 ‘한국의 장마철이 LA에도 왔구나’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LA의 겨울은 한국의 장마철과 늦가을을 잘 버무려 섞어 놓은 듯한 비 오고 쌀쌀한 날씨다. 

겨울만 되면 평소보다도 스타벅스에 방문하는 빈도가 부쩍 높아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는 스타벅스 매장의 불긋한 풍경은 연말 특유의 설렘 지수를 200%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이번 해 스타벅스는 ‘Merry Coffee'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문구가 적힌 컵에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스타벅스, 이 마케팅 천재들...

한국은 겨울철이면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필두로 한 겨울 제품들이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아쉽게도 미국은 한국만큼의 풍부한 시즌별 제품들을 매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게 아시아 국가와 미국의 차이일까. 미국은 아기자기한 감성은 확실히 떨어진다. 조금 더 밋밋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판 스타벅스 겨울 제품들을 보고 침만 흘리고 있다. (이 현상은 벚꽃시즌 MD를 볼 때 특히 더 심해진다.)





스타벅스의 크리스마스 시즌 컨셉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스타벅스를 자주 찾게 되기도 하지만 과거의 추억을 현재로 소환시키기 위해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가 더 크다.

10년 전 이맘 때 친구와 함께 뉴욕에서 몇 달 간 머물렀다. 푸릇푸릇한 스무 살. 되돌아보면 참 어리고 순수했던 그 시기에 친구와 나는 뉴욕에 있었다. ‘섹스 앤더 시티’와 ‘가십걸’ 미드를 즐겨보던 우리, 소녀도 여성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머물렀던 우리에게 뉴욕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뉴욕은 우리로 하여금 할리웃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환상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도시였다. 

요즘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고 쯧쯧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일 자체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인터넷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사마시는 여성들에게 ‘된장녀’라는 호칭을 붙이곤 했던 때니까.

하지만 뉴욕이었기에, 우리는 ‘스타벅스’가 더더욱 마시고 싶었다. 스타벅스 커피를 한 잔 들고 뉴욕 맨하탄을 길거리를 활보하는 기분을 마음껏 느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스무 살, 부모님께 한국에서 타온 용돈은 한정돼 있었고, 날마다 스타벅스를 사먹는 일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와 나는 스타벅스를 사먹는 날을 화요일, 목요일로 정했다. 일주일에 두번 만큼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우리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이다. 평소에는 숙소에서 믹스 커피를 타 마셨지만, 우리가 지정해둔 ‘스벅 데이’만큼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층에 있는 스타벅스를 향했다. 


나는 카페모카, 친구는 카라멜 마끼야또. 언제나 우린 이 두 잔을 주문했다. 


한 모금 마셨을 때 발끝까지 퍼졌던 달콤함과 눈 내리던 뉴욕 맨하탄의 풍경, 커피잔을 들고있던 손의 찬 온기,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서로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던 친구와 나. 





이 모든 순간들이 겨울철 스타벅스 카페모카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눈 앞에 재현된다. 그 때의 내가 10살이나 더 먹은 현재의 내 앞에 고스란히 다가와 있다.



그때로부터 난 얼마나 멀어져있는걸까.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럼에도 그때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 여전한 것은 무엇일까.


1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간극을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음미하며, 조금은 아련한 마음으로 평일 아침을 시작한다.
이 글을 적어내려 가는 지금도 LA는 비 내리는 겨울이고, 난 카페모카 한 잔을 마시고 있다.


지금의 나를 10년 후의 나는 또 어떻게 기억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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