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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Nov 19. 2019

미국 영화관에서 ‘기생충’ 영화 관람하기

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모습들

여행지에서 영화관에 가는 일을 좋아한다.


낯선 곳의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일은 뭐랄까, 나로 하여금 그곳의 이방인이 아닌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표를 구매하는 일은 ‘난 이곳에 속한 사람이야. 여행객이 아니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세계 어디서나 할리웃 영화 한 두 편쯤은 상영 중이기 때문에 언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뭐 사실 할리웃 영화가 아니라고 해도 큰 상관은 없다. 실제로 도쿄에서 ‘꽃보다 남자’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미 기본 줄거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기본 일본어 수준으로도 영화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아예 모르는 줄거리의 영화라면 나의 상상만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뭐 그것도 매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예술은 언어를 뛰어 넘으니까.



어쨌거나 아주 낯선 곳에서 현지인인 척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일은 꽤나 낭만적이다.

 




그런데 지난 밤, 미국의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기생충’을 봤다. 미국에서 나의 모국어로 만들어진 한국 영화를 미국인들과 함께 감상하는 일은 여행지 영화관에서 느끼던 감정과 묘하게 닮은듯 하다가 또 묘하게 달랐다.


미국에서 한국 영화가 개봉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에 지난 밤 다음날 출근이라는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야영화를 보기 위해 집 앞 영화관을 찾았다.


<Glendale에 위치한 Americana 쇼핑몰의 11월 밤거리>


영화관을 향하는 길이 동화속 세상 마냥 현실감 없이 아름다웠다. 이곳 ‘아메리카나 몰’은 11월부터 크리스마스가 시작된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캐롤...행복한 기분이 물씬. 이곳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즐기기에 제격인 '크리스마스 맛집'이다. 매해 수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이곳을 찾는다. 아이들의 동심을 실현시켜줄 '산타클로스 집'도 지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가정은 사전에 예약해서 방문하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팝콘을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이왕 행복하기로 한 것, 100%로 행복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닌데, 조금 더 행복감을 만끽하자는 생각.


밤 10시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생충’ 상영관에는 약 서른명쯤이 앉아 있었다. 와,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 서른명이나 앉아있다니 괜히 감동스러웠다. 외국에 나오면 애국자 된다는 말, 틀린 말이 아니다.





미제를 좋아하는 부자의 모습


‘기생충’ 영화에서는 미제를 찬양하는 대사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나왔다. 부잣집 사모님 역할을 맡은 조여정은 아들 다송의 장난감이 ‘미제여서 좋다’는 식의 대사를 반복했다. 빗물이 새지 않는 방수 텐트, 진짜 같은 인디언 옷과 화살 장난감 모두 미제였다. 한국의 내노라하는 부잣집 사모님이 미국제품을 찬양하는 모습은 여전히 한국의 위상이 미국보다 한참 낮은 곳에 있는 것을 시사하는 듯해 씁쓸했다.


미국인들은 미제를 좋아하는 한국 부잣집 사모님의 모습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 역시 미국제품은 한국에서도 먹히는군’ 이런 뿌듯한 마음이 들었을까, 아니면 ‘한국의 수준은 아직 저 정도이구나’ 싶었을까.


부익부 빈익빈의 극대화


미주 한인 커뮤니티 온라인 사이트에는 ‘기생충’ 영화를 본 누군가가 ‘아직도 한국에 저렇게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나요’라는 글을 올렸다가 댓글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그렇다. 세상에 아직도 영화 속의 부익부 빈익빈은 존재한다.

미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대가 캘리포니아의 경우 몇년간 잇따른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인해 집값에 허덕이는 중산층이 급격히 증가했다. 미국에는 전세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집이 없는 사람들은 렌트비를 내며 살아야 하는데, LA 한인타운의 신축 콘도 기준 원베드(거실+방 1개)가 한달에 2000~3000달러다. 월급을 전부 렌트비로 쓴다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강호 집이 빗물에 잠기는 장면, 변기에 앉으면 천장에 머리가 닿는 장면, 대피소에서 주민들이 단체로 자는 장면 등은 한국의 안타까운 단면을 미국인들에게 들킨 것만 같아 괜시레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미국에도 저런 가난은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한국의 좋은 모습만 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가령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그려진 싱가폴의 모습은 근사하지 않은가! 작품을 통해 대리경험하게 되는 한국의 모습이 보다 멋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매우 감명깊게 봤다.

다만 영화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들었던 감정들이 미국인들에게 내 나라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소수민족의 자격지심인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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