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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Dec 15. 2019

30대가 되어 20대를 바라보니

무지해서 찬란한 시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과거의 일기를 들춰본다. 일기를 읽는 일은 과거의 나와 만나 대화하는 일이다. 일기장을 읽다 보면 과거의 나와 그 시절의 풍경이 종이 위로 붕- 떠올라서 현재의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다. 그래서 종종 의식적으로 일기장을 찾게 된다. 과거의 나를 만나고 싶은 날이면 언제나.       


 

오늘은 일기장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사진들도 들여다봤다. 과연 이게 나였을까, 싶을 만큼 멀게 느껴지는 과거의 사진들. 특히 인스타그램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4~5년 전의 내가 포스팅 한 사진들 속 내 모습은 참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진다.         



“정녕 사진 속 나는 내가 맞을까?”        



아무래도 낯설었던 점은 그 때의 나는 20대고, 지금의 나는 30대이기 때문이다.        



아니, 20대와 30대의 차이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때의 나는 학생에다 미혼이고, 지금의 나는 워킹맘인 기혼 여성이다. 신분의 차이가 20대와 30대의 사이의 나를 38선 마냥 갈라놓은 것 같다. 두 사이의 간극은 앞으로도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이며, 선을 넘게 되는 일도 없으리라.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20대의 나는 무지했고, 그랬기에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고, 세상에 두려운 일이 없었다. 당시 하늘을 찔렀던 자신감은 내가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치기어린 생각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 자신감 넘쳤던 나의 색깔은 많이 옅어졌다. 20대가 빨갛다면 지금은 연분홍 정도는 될까.    



아이를 낳고, 키우고, 워킹맘이 되고, 하루하루 아등바등 하며 살아가다 보니, 지금의 난 세상이 조금은 무서워졌다. 두려운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 아이가 아프면 어떡하지, 취재하기로 했던 일정이 꼬이면 어떡하지, 오보가 나가면 어떡하지, 야근이 생기면 아이 픽업을 어떡하지...이런 조그마한 걱정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세상이 이전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학생일 때는 사회에만 나가면 내가 큰 역할을 할 줄 알았다. 대단한 착각이었는데, 막상 사회에 나오니 난 시스템 속의 부품에 불과했다. 이 세상은 나 없이도 잘만 돌아가고, 세상뿐인가, 우리 회사도 나 없이 잘 돌아간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삶이란 매일이 비슷한 나날들의 연속이고, 그런 일상을 반복해 살다보면 1년, 2년, 3년...이 지나 나이가 든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가족을 이루고, 그러다 20대의 우스울 정도로 자신감 넘쳤던 어느 정도는 오만했던 내가 아주 많이 부끄러운 지금 이순간이 왔다.     



조금만 더 겸손하면 좋았을걸, 조금만 더 여유로웠으면 좋았을걸, 조금만 더 베풀었으면 좋았을걸, 조금만 더 타인의 입장을 배려했더라면.     



그런 생각들이 든다. 40대의 나 역시 30대의 나를 바라보며 조금은 후회하는 모습들이 있을까? 당연히 있을테지.



오늘이 내 생에 가장 젊은 날임을 잊지 말자.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을 것이고, 또 30대에서 바라본 20대가 찬란했듯이 40대, 50대가 바라본 30대 또한 빛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를 즐기며 이곳에서 춤추며 살아가자. 그게 2020년 내가 가장 바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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