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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un 18. 2021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조슈아트리(Joshua Tree)' 국립공원을 떠올리면 안녕바다의 '별빛이 내린다'는 노래 가삿말이 입에서 절로 흘러 나온다. 별빛이 내린다 샤라랄라라, 라는 가삿말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장소가 또 있을까?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은 LA에서 약 2시간 정도 자동차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곳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많은 LA 여행객들이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 밤하늘 별을 보러 떠나곤 한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은 지난 몇 년간 꼭 가고 싶었던 여행지 중 한 곳이지만 이상하게도 선뜻 가지지는 않던 곳이다. 아마도 아직은 어린 두 아들과 함께 그곳을 간다면 고생길이 훤히 열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왠지 그곳에 가면 고요한 새벽에 별을 바라보며 캠핑을 해야할 것만 같아서 가기도 전부터 덜컥 겁이 났다. '애 둘을 데리고 어떻게 캠핑을 한담. 다음에 가자. 다음에'라며 기약없이 다음 여행지로 미뤄왔던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그런데 지난 5월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 롱위켄드에 아무런 계획이 없던 우리 가족은 무심코 30분 만에 짐을 챙겨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향하게 됐다. 


상황은 이렇다. 

새벽 6시에 잠에서 깬 막내 아들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드라이브를 다녀온 남편은 7시쯤 집으로 돌아오더니 잠에서 갓 깨어난 나와 첫째 아들에게 말한다. 


"차 하나도 안 막힌다. 조슈아 트리 가자." 

"어?? (당황) 진심??" 

"지금가면 1시간 30분 만에도 도착해. 애들 옷만 입혀서 가자."


그렇게 우리 가족은 옷만 갈아입고, 아주 단촐한 '급여행'을 떠나게 됐다. 역시 여행은 언제나 옳지만, 급 떠나는 여행만큼 설레는 일도 없다. 성격에 따라 계획없이 갑작스럽게 떠나는 여행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나와 남편은 여행에 있어서는 한없이 즉흥적인 편이다. 사전에 계획하지 않고, 현지에 가서 끌리는대로 여행하는 걸 즐긴다. 물론 계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꼭 가봐야 할 곳을 구경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다음에 또 가지 뭐'라고 생각해 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부랴부랴 떠나온 여행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들 아침으로 유부초밥을 싸왔다. 어른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침을 스킵하고 점심을 먹어도 된다지만 아이들의 아침은 건너뛸 수 없었다. 차 안에서 새처럼 입을 쩍쩍 벌려대는 아이들에게 유부초밥을 넣어주며 괜시레 더 허기가졌다. 그래도 여행을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엔돌핀이 솟아서 배고픔쯤은 거뜬히 참을 수 있었다. 난 다름 아닌 여행길에 올라있으므로!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는 별을 보러가는 게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팜스프링스(Palm Springs)로 네비게이션을 찍었다. 이곳은 엘에이에서 1시간~1시간 30분이면 가는 곳이어서 1년에 한 번 이상은 찾게 되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가는 길에 '데저트 힐 아울렛'이라는 서부에서 가장 유명한 아울렛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아울렛을 가기 위해서라도 팜스프링스를 찾게 된다. 팜스프링스는 라스베가스처럼 호텔 값도 꽤나 저렴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엘에이 근교 여행으로 추천할 만한 지역이다. 

다만 이곳은 사막이기 때문에 여름에는 극강의 더위를 자랑한다. 5월이었음에도 팜스프링스에 도착하자 마자 숨 쉬기 힘들 정도의 무더운 공기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하지만 롱위켄드인데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참아왔던 여행을 하기 위해 쏟아져 나온 까닭에 팜스프링스 다운타운 인파는 엄청났다. 흡사 코로나19가 종식된 분위기였다. 남편과 나는 백신을 맞았지만 아이들이 백신을 맞지 않기 때문에 긴장감이 돌았다. 남편과 상의 끝에 팜스프링스에 가면 늘 찾던 핫한 레스토랑 대신 사람이 없는 피자집에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북적이던 다운타운 중심지의 레스토랑들과는 대조되는 한산한 피자집. 그래도 피자맛은 끝내줬다! 


피자를 먹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스타벅스를 향하는 길. 마스크까지 쓴 상황에서 더워도 너무 더웠다. 사막더위는 역시나 만만하게 볼 수 있는게 아니다. 더위로 사람이 기절할 수도 있겠다 싶은 만큼의 더위다. 거기다 남편과 나는 각각 아들 한 명씩을 안고 걸어야 하니(아이들은 더위에 지쳐 못 걷겠다고 우리에게 안겼다), 과연 이대로 밤까지 별을 보기 위해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즉흥성은 이때도 발현돼 냅다 가장 가까운 호텔을 예약했다. 당일치기 여행이 1박2일로 급전환을 이루게 된 것이다. 


즉흥여행은 즐겁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최악이긴 하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아무 준비도 없이 왔건만 호텔을 예약하는 바람에 최소한의 여행용품이 필요해졌다. 이를테면 세면도구, 컵라면, 햇반, 편한 옷 등등... 호텔 체크인 후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 하고 다운타운 거리에 나와 H&M에서 잠옷으로 입을 편한 옷과 원피스를 구매했다. 사막 더위를 차마 예상 못하고 청바지를 입고 온 나는 당장이라도 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내가 호텔에 돌아온 후에는 남편과 바톤터치. 남편은 랄프스에 가서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먹을 식료품과 생필품 등을 장봐왔다. 돈이 아깝기는 하지만 이런게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기는 하다. 새로운 살림을 시작하는 사람 마냥 이것 저것 사서 호텔방에 들어오는 일. 낯선 곳에서만 가능한 묘한 이질감. 


아이들을 목욕 시키고, 저녁을 먹은 후 드디어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으로 출발! 이것 저것 뭘 하다 보니 계획해둔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해 지는 모습을 보기는 글렀다. 그래도 뭐 또 오면 된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본다. 키스 뷰(keys view)에서 많이들 선셋&별구경을 하길래 우리도 그곳을 향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아이들은 차에 타자 마자 잠들었다. 그 옛날 연애시절 데이트 하는 기분이 났다. 이게 얼마만인지. 고요함 속에서 남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일이. 창밖의 사막 풍경과 해지는 모습, 우주에 우리 둘만 남겨진 기분. 행복했다.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 도착. 역시는 역시였다. 실망시키지 않았다.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걷는 일이 꿈처럼 아득하면서도 진한 행복감을 줬다.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식구가 하나의 존재로 합쳐진 것 같았달까. 학창시절 수련회, 수학여행에서 담력 시험을 했던 기억도 스쳤다. 학생이던 내가 어느덧 내 가정을 꾸려 아주 낯선 지역의 밤하늘 아래에서 별을 구경하고 있다니, 얼떨떨하면서도 이런게 인생이구나 싶었다. 영원히 아이일 수 없고, 난 이제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부모가 되었다. 하지만 책임감이 무겁지만은 않다. 이날처럼 서로 손잡고 한 팀이 된다면 어벤저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세상 풍파를 함께 맞고 이겨낼 수는 있는 힘은 있다는 용기가 났다. 


이 세상 참 살만한 곳이구나, 지금의 감정을 잊지 말아야지. 살면서 슬프고, 힘들고, 억울한 일이 생기면 이 시간을 마음 속 서랍에서 꺼내봐야지. 그래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다시금 되새겨야지,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어느날 예고없이 문득,

별보러 가지 않을래, 라고 물어준 남편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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