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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y 28. 2021

집구석 캠핑

사서 고생하는 이야기

지난해부터 나와 남편이 달고 사는 말.


아, 언제 한 번 캠핑 가봐야 하는데.

1년째 이 말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시기에 캠핑을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갈망은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 해서 우리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런데 말이 전염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듯이 어느새부터 아들이 캠핑을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러댔다.


"너 캠핑이 뭔지 알고 말하는 거야?"

"응. 그럼. TV에서 봤어."


특히 교외 지역으로 지난 연말 이사를 온 이후에는 각 주택들 앞에 주차된 캠핑카를 볼 일이 잦았는데, 이로써 아들은 캠핑카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나가면 최소 1대 이상의 캠핑카를 지나치곤 하는데, 이때마다 아들은 "와! 캠핑카다. 우리는 캠핑카 언제사?"라고 물었다. 우리 집은 캠핑카를 언제 사냐며 몇 번이고 묻는 아들 앞에서 남편은 은근한 자극을 받았다. 남편은 인터넷으로 캠핑카 가격을 알아보며, 언젠가 사기는 사야겠다는 마음을 품은 듯 보였다.  


아니, 캠핑 한 번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캠핑카를 사겠다니, 이 무슨 얼토당토 않는 소리인가! 나는 결사반대였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캠핑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긴 했지만 과연 캠핑카를 구매해서 꾸준히 캠핑을 즐기는 부류가 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나름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캠핑을 즐길 만한 사람이 못되는 것 같다, 라는 객관적인 판단.


왜냐. 우선 나는 벌레가 무섭고, 침대에서 자는 게 좋고, 편한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이다. 고생스러운 여행은 딱히 가고 싶지 않은데, 캠핑은 확실히 고생이라는 놈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짐싸는 과정에서부터 잠자리, 화장실, 장시간 운전 등 모든 면에서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지난 1년간 '캠핑 가고싶다'는 말을 해온 것은 캠핑을 향한 어떤 낭만과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비춰진 캠핑의 모습은 우리에게 충분히 환상을 주입할 만 했다. 상쾌한 자연에서의 하룻밤, 맛있는 BBQ 식사, 야외에서 마시는 모닝 커피, 불멍 때리며 나눌 수 있는 진솔한 대화 등등. 캠핑을 즐기는 자유인에 대한 동경은 캠핑을 가고 싶게끔 만들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을 보면 캠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주말.


"우리 캠핑은 언제 가?"


아들이 물었다. 남편은 아들에게 집에서라도 캠핑을 경험하게 해주겠다며, 그날로 텐트를 사왔다. 정원에 텐트를 설치하고 보니 그럴싸 했다. 캠핑이 별건가. 야외에서 텐트 쳐놓고, 고기 구워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린 집에서라도 제대로 캠핑 느낌을 내보기로 했다.


텐트를 사오는 길에 남편은 스테이크로 먹을 등심과 해산물까지 장을 봐왔다. 평소에도 매주 주말마다 야외에서 스테이크를 구워먹는 일은 허다했지만, 텐트를 설치한 후 고기를 구우니 이곳이 캠핑장? 이라는 묘한 착각이 들었다. 분명한 건 기분 좋은 착각이었다. 설렘을 동반한.


아들도 잔뜩 신이났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았다. 거기까지는.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 잠을 자러 들어가자고 말을 했더니,

아들은 "캠핑인데 여기서 자는 거 아니야?"라고 묻는게 아닌가.


"아니, 여기서 잠을 어떻게 자."


"캠핑 하자고 했잖아. 캠핑은 텐트에서 자는 거야."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아들을 나는 외면하고자 했으나, 남편은 그러지 못했다. 애가 저렇게 원하는데 이왕 캠핑 느낌 내는 거 마지막까지 제대로 해보자고 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캠핑이라며 들떴던 아들 모습이 떠올라 나도 마지못해 동의를 했다. 급 월마트에 가서 침낭과 랜턴을 사서 집으로 왔다. 손님들이 오시면 쓰는 여분의 얇은 매트릭스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침낭을 펼쳤다. 남편, 아들, 나는 두꺼운 내복을 입고 각자의 침낭 안으로 쏙 들어갔다. 우리 과연 여기서 잠들 수 있을까?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남편은 군대에서는 한 겨울에도 이렇게 잠자곤 했다며 허세를 부리더니 금세 잠들었다. 아들과 나만 남았다.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에 이곳이 야외임을 실감했다. 좁은 침낭 안에서 편하지 않은 자세로 잠을 자려니 아들도 통 불편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입은 실실 웃고 있었다.


"엄마, 진짜 재밌다. 그치."

"재밌어? 다행이다. 엄마두 재밌는 거 같아."


그렇게 우리는 점차 잠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차서 이러다 꼼짝없이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아 침낭으로 얼굴까지 덮었다. 침낭을 발로 걷어차 몸이 잔뜩 삐져 나온 아들을 침낭 안으로 넣어주고, 나도 스스륵 잠이 들었다.


텐트에서의 하룻밤은 쉽지 않았다. 허리가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바람 소리에 놀라 수시로 잠에서 깼다. 우리 집 정원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낯선 사람, 동물이 텐트를 공격할까 싶은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그리운 내 방 침대여. 집을 코 앞에 두고 이게 무슨 사서 하는 고생인가,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자문했다. 다음날 오전 6시에 잠에서 깬 아들은 "밖에서 자니 조금 춥긴 하네"라며 배시시 웃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한 남편은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채로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휴, 나는 재택근무여서 천만다행)



캠핑은 역시나 불편하다. 아들이 캠핑 타령을  때마다 이제는 조금  두려워질 같다. 그럼에도 집구석 캠핑은 색다른 경험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테지. 조만간 캠핑카로 떠나는 여행을 도전해 봐야겠다. 도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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