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재, 내 든든한 빽

마음이 힘들면 서재로 간다

by Iris Seok

디즈니 영화 <미녀와 야수>를 보던 중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바로 야수가 벨에게 서재를 선물해 줬던 장면. 영화관에서 그 장면이 나오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다. 상상 속에서만 꿈꾸던 '서재'의 모습과 흡사했을 뿐더러 책 읽기를 좋아하는 벨에게 서재를 선물하는 야수의 배려에 감동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장면은 뇌리에 또렷하게 박혀있다. <섹스 앤더 시티>에서 빅이 캐리에게 만들어 준 드레스룸 보다 야수가 벨에게 선물한 서재가 훨씬 더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디즈니 <미녀와 야수> 영화 캡처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꾸린 후 가장 큰 로망이 있다면 나만의 서재를 갖는 일이었다. 글쓰기가 업이기도 하거니와 책을 읽는 일은 내 삶에서 가장 큰 활력을 더해 주는 일이다. 특히 아이를 낳아 키우며, 혼자만의 시간이 거의 사라지자 과거보다 더욱 책 읽기에 집착하게 됐다. 책만이 나를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 있게끔 해줬다.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치열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나의 자아와 마주하고, 내 세계 너머의 다른 세계를 보게 된다.


감사하게도 최근 교외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하면서 꿈에 그리던 서재를 갖게 됐다. 텅빈 집을 보러 갔을 때부터 "2층 거실은 무조건 내 서재"라며 남편에게 강조했다. 지금와서 되돌아 보면 남편은 그 공간에 TV와 소파를 두고 편히 쉴 장소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도 서재의 존재는 절대적이라는 내 말에 남편은 순순히 응해줬다.


이사를 한 지 4개월 만에 완성된 서재. 코로나19 시국인지라 가구 배송이 워낙 느려 생각보다 더 늦게 완성된 서재와 마주할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책을 구입하는 탓에 이사 전만 해도 책꽂이에 책을 다 꽂아둘 수 없어 집안 구석구석 책들이 쌓여 있었다. 남편은 굴러다니는 책들을 보며 한숨을 쉬기 일쑤였고, '책 한 권을 살 때마다 두 권씩 버려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책을 처치하는 일은 내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 책 한 번 더 읽고 싶은데...' '언젠가 또 읽고 싶어지면 어쩌지?' 등의 생각으로 난 쉽사리 책을 놓아줄 수 없었다.


서재가 생기자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책을 꽂을 공간이 넘치다 보니 내가 소유한 책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느껴졌다. 텅빈 서재 공간을 보며 앞으로 책을 사는데 문제는 없겠다 싶어 숨통이 트이는 한편, 빨리 빈 공간을 채우고 싶어 책을 구입하는 주기가 짧아졌다. 읽고 싶은 책은 무수하고, 꽂아둘 공간은 넉넉하니 마음의 풍요가 흘러 넘치는 듯 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이르면 오후 9시, 적어도 오후 10시가 되면 서재에 온전히 나 혼자 있을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이 깰 수도 있으니 아주 조용하게 클래식을 틀어 놓고 읽고 싶은 책을 한 두 권 꺼내온다. 책을 읽으며 기록하고 싶은 감정과 생각들을 일기장에 적는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난 완전하게 치유받는다고 느낀다.


살다보면 유독 힘든 날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이 다칠 일은 수두룩하다. 가령 최근에는 취재원으로부터 항의전화를 받고 마음에 허기가 찼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바른 일이었을까? 내가 쓴 기사가 괜한 논란을 키운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기자도 한 회사의 일개 직원일 뿐이고, 기사를 신문에 실을지 말지의 여부는 데스크의 영역이다. 취재원이 아무리 내게 따지고 윽박질러도 이미 내 손을 떠난 기사를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부당하게 누군가로부터 비난 받았을 때, 육아로부터 몸과 마음이 탈탈 털렸을 때, 괜시리 타지에서 향수로 몸부림 칠 때면 언제나 난 서재를 향했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내 마음 상태를 일기장에 손으로 기록하며,
나는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서재에서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난 것만 같았고, 나만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나는 평소에는 돌보지 못했던 내 내면을 들여다보고, '괜찮니?'라고 질문했다. 그리고 내게 가장 필요한 위로의 말들을 건넸다.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서재 덕분에 육아로 인한 피로감도 한결 나아졌다. 아이들이 싸우거나, 말을 듣지 않아 날 힘들게 할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조금만 더 참으면 아이들은 잘 테고, 난 서재로 갈 수 있다!' 그러면 약간의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하루 끝의 보상이 남아있기 때문에 사람이 조금 더 너그러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따금씩 마음이 힘들면 난 어김없이 서재를 떠올린다. 서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지금의 이 힘든 감정은 오늘 밤 서재 위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니 난 괜찮다고, 그렇게 나를 달랜다.



서재를 빽으로 오늘도 굳건하게 살아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시안 증오범죄, "그래도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