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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입국, 또다시 이방인

상상 속의 대륙 아프리카에 가다

by 아이릿

프랑스어를 주전공으로 택한 이후, '내 생애 한 번쯤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에 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프랑스어 공부를 꾸준히 할 거니 프랑스, 벨기에, 캐나다와 같은 프랑코폰 국가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 부르는 유럽이나 북미가 아닌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튀니지, 모로코와 같은 아프리카 프랑코폰에서 일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전공, 상위 지망 국가와 무관하게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국가 탄자니아에 가게 되었다.


탄자니아행이 결정된 날, 구글지도를 켜서 탄자니아가 어디에 붙은 국가인지 위치를 확인했다. 앞으로 1년간 일하게 될 탄자니아의 경제수도 다르에스살람행 직항은 없었다. 카타르 항공 도하 경유, 에미레이트 항공 두바이 경유, 그리고 에티오피아 항공 아디스아바바 경유 편이 최적노선이라고 들었을 뿐이다. 희망 항공은 내 선택이 아니었고, 회사에서는 카타르 항공 티켓을 보내주었다.


2022년도 요르단에서 일하게 되었던 나는 7월 18일 카타르항공을 타고 도하를 경유해 암만에 도착했다. (운명의 신이 있다면) 장난인 듯, 정확히 2년 후인 2024 7월 18일, 나는 또다시 인천공항 카타르항공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심지어 출발 시간도 2년 전과 동일했다. 2년 간 항공 일정이 변동되지 않았나 보다. 항공일정은 동일했는데 카타르항공의 아프리카행 수하물 규정은 달랐다. 기내수하물은 7kg까지 허용되는데 백팩까지 포함되더라. 중동행은 기내용 캐리어 무게만 재고 백팩은 눈감아줬는데 이번엔 얄짤 없었다. 저렴한 플라스틱 소재의 캐리어니 취급주의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기내용 캐리어 앞뒷면에 손바닥보다 큰 취급주의(Fragile) 스티커가 붙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조용한 벤치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이번 출국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거야 말로 신이 장난치는 게 아닐까. 드디어 내가 바라던 일을 할 기회를 알려주는 합격자 발표. 동시에 받은 아빠의 건강검진 결과. 심장이 두 가지의 다른 두근거림을 동시에 겪었다.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쿵 내려앉았다. 이 상태로 국내에서 진행된 교육을 받았다. 그 사이 아빠는 수술까지 마치고, 딸 발목을 잡기 싫다며 회복치료에 들어섰다.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결론은 "우선은 가자."였다. 출국 당일, 고향의 공항버스터미널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 이제 막 깐 콘크리트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콘크리트에 진득하게 눌어붙은 신발을 한 발 한 발 옮기며 힘겹게 탄자니아행 비행기에 탔다.


그간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많았던 탓인지 인천에서 도하까지 가는 11시간, 기내식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리 잠만 잤다. 다리를 펼 수 있는 앞자리였지만 딱딱하고 불편한 비행기 좌석은 정말이지 형벌 도구로 써도 될 듯하다. 허리가 뻐근해질 즈음 경유지인 도하에 도착했고, 도하에서 다시 5시간 이상의 비행을 해야 탄자니아 땅을 밟을 수 있다. 도하행 항공편에서 잠을 너무 오래 잤는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운 좋게 옆자리에 배정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눴다. 탄자니아 생활에 대한 기대, 걱정, 설렘을 나누다 보니 "곧 다르에스살람 줄리어스 니예레레 공항에 도착합니다." 기내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러 저 너머 작은 창을 바라보니 구름아래로 평소 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풍경이 조금씩 보였다.


15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탄자니아 땅을 밟았다. 오랜 비행 끝에 몸도 정신도 너덜너덜. 기내를 벗어나 공항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공항 직원이 황열병 예방접종 카드를 확인했다. 여권 사이에 껴 온 황열병 카드를 보여주니 별말 없이 통과시켜 줬다. 멍한 상태로 입국심사장을 향해 걸었다. 아프리카 국가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정보를 듣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바로 나의 치트키 '현지어로 인사하기'! 입국심사대 앞에 서서 직원과 눈을 마주쳤을 때, 가볍게 웃으며 여권을 내밀며 말했다.

"하바리(Habari 안녕하세요)!"


상대가 누구인지 무관심했던 업무용 눈빛이 아주 살짝 풀리는 게 느껴졌다. 직원이 뭐라고 되물었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마 "나는 좋아 너는 어때?"라고 물어본 것 같아 바로 답했다.

"포아포아~(Poa poa 좋아 좋아~)"

그 뒤로 입국 목적, 체류 기간, 머물 곳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 빠르게 답하고 '쾅'소리와 함께 입국 도장을 얻었다. 역시 인사가 중요하다. 그렇게 다섯 마디 이내로 탄자니아 입국에 성공했다.


입국장으로 나가자마자 익숙지 않은 피부색의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보였던 흑인, 이제 그들 틈에선 내가 그 이방인이다. 인파를 헤치고 나가니 마중 나온 회사 동료가 보였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밖으로 나갔다. 공항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탄자니아의 7월 뜨거운 공기가 몸을 감쌌다. 다행히 습도가 낮아 숨이 턱 막히고 흐른 땀이 마르지 않는 한국 여름 날씨는 아니었다. 자동적으로 "와... 뜨겁네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 말에 현지에서 1년 정도 근무했다는 분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긴 지금이 시원한 달이예요." 그 말을 듣고 입이 벌어졌고, 그 김에 뜨거운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왔네, 탄자니아.


앞으로 1년, 잘 살아보자.


탄자니아 첫 주. 탄자니아를 대표하는 표현 두 개.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는 탄자니아 현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명언 같은 표현이다. 문제는 없지만 조금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문제없어요, 걱정 마요"라고 여유를 가지라는 뜻으로 건네는 말이다.


함나 시다(Hamna Shida)는 하쿠나 마타타와 비슷한 듯 하지만 느낌은 살짝 다르다. 실제 어떤 문제가 발생했지만 그것에 대해서 "문제 없어요. 괜찮아요."라며 상대를 다독이며 건네는 말이다. 놀랍게도 내가 어떤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도 해도 탄자니아 사람들은 "함나 시다~"하며 웃어 넘긴다. 문제가 있다고 요청하는 건 난데 상대방이 문제 없다고 하니 나로서는 팔짝 뛸 노릇.



인스타 구경하기: https://www.instagram.com/i_kiffe/

블로그 구경하기: https://blog.naver.com/kim_eyo/223536635111 (탄자니아행 카타르항공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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