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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Mar 20. 2024

사막 도시에서 계곡 트레킹? 진짜 죽어가는 사해

즐거웠던 요르단 7박 8일 여행

  꿈만 같던 아카바 여행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던 중 Y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릿 짐 싸고 있죠? 더 머물러도 괜찮으니까 더 놀다 가지 그래요?"라며 솔깃한 제안을 했다.

  "재밌는 농담이네요. 하지만 이제 다시 가서 일해야죠." 아쉬운 마음에 농담으로 치부하며 누가 들어도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농담이 아니라, 재택 근무 하겠다고 해봐요."

  "불가능해요. 이제 근무 4개월 차예요. 아니, 4년이 돼도 재택 못할걸요."

  "왜요? 아쉽네요."

  "저도 정말 아쉬워요. 제가 더 아쉬워요 진짜. 아카바에 더 있고 싶어요."


   안 그래도 떠나기 싫어서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더 떠나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을 때 떠나야 다음번을 기약할 수 있으니 짐을 챙겨 시내로 가는 차에 올랐다. 좋은 기억이나 다음 여행은 떠나기 싫은 마음을 달래기 위함일 뿐. '가서 하루 쉬고 출근하려면 떠나야지. 가서 일해야지. 돈 벌어야 또 놀러 오지.'라는 생각으로 암만행 제트버스에 올랐다. 여전히 떠나기 싫은 아쉬움에 와디럼의 붉은 암석 풍경이 보이기 전까지 아카바 시내를 계속 눈에 담았다. 잔상이라도 오래오래 남길 바라며.  



  아카바는 휴양도시로써 매력적이지만 역시 나는 암만처럼 좀 북적이는 곳이 좋다. 저녁은 상사가 추천해 준 요르단식 전문점 수프라(Sufra Restaurant)를 갔다. 암만의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인 레인보우 스트릿(Rainbow Street)에 위치한 곳으로 여름에는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현지인도 많지만 사진에서 보이듯 외국인이 대부분이고, 야외석에 앉으려면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프랑스 친구들이 왔을 때 한 번 더 갔는데 당일 예약을 해서 취소한 사람이 없었더라면 못 갈 뻔했다. 물론 근방에 맛있는 식당이 많다.


  친구가 좋아하는 타불레(Tabbouleh)와 훔무스 파테(Hummus Fatteh)를 고른 뒤 직원한테 추천을 부탁하니 양고기를 추천해 줬다. 샐러드, 메제 각 1개씩 시키고 양갈비와 구이류까지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기본제공 된 빵과 식탁 위에 놓인 올리브 절임을 맛보았다. 갓 구워져 뜨끈한 빵을 뜯어, 올리브와 한 입 먹었다. "토딘! 이거 진짜 맛있어." 하고 옆을 보고 이미 올리브와 빵을 음미 중인 친구가 보였다. 요르단에 와서 양고기를 처음 먹었다는 토동도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요르단 식당에서는 갓 구운 빵을 무제한 먹을 수 있는 것과 맛있는 올리브가 기본 제공 되는 것이 좋다. 빵 한 개 먹고 금방 배가 부르지만.


  올리브와 빵으로 배를 채우기 전 주문한 음식이 식탁 위에 하나씩 올라왔다. 이미 아는 맛인 타불레와 파테에 이어 직원이 강력 추천한 연탄불에 갓 구워진 고기, 토마토와 양파, 막 튀겨 바삭바삭한 감자튀김까지. 신선하고 상큼한 타불레 샐러드로 위장에 음식이 들어갈 것을 알렸다. 양갈비를 하나 집어와서 손으로 들고 뜯었는데 이 맛 뭐지? 미미(美味)! 22년 10월 수프라의 양갈비 구이를 맛보고 요르단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한탄을 그만두었다. 피곤해서 입맛이 없었는데 이곳 음식 전부 미뢰를 자극하는 맛이어서 금세 접시를 비웠다.


*요르단의 대부분 식당은 겨울에 야외석에 천막을 만들고 불을 피워준다. 수프라 또한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 겨울에 방문했을 때는 야외에 앉지 못했다.


  아카바에서 제라쉬와 인근 도시 여행을 계획을 접었지만 친구 Y덕에 차선책을 찾았다. 곧바로 암만-사해-와디무집-암만 경로로 차량 예약도 마쳤다. 수프라에서 저녁을 먹고 암만 집으로 돌아와서 와디무집과 사해에 가기 위한 짐을 챙겼다.


  암만에서 와디 무집까지는 약 90분이 걸린다. 사해를 끼고 달리는데 하릴없이 지하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현지인 기사(이자 Y의 조카) M이 사해가 있는 지역이 저지대라고 알려주었다. 와디무집 계곡에 물이 고일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 덕에 와디무집 알 시크(Al Siq) 트레일 같이 수영을 하며 즐기는 관광지도 생겼지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인명 피해도 발생하기 쉽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와디무집은 우기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기가 시작되기 전 10월에 방문했다. 일찍 가지 않으면 인원 제한으로 입장이 불가할 수 있다 하여 오전에 갔는데 벌써 꽤 많은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으려 했는데 M은 탈의실이 따로 없어 차에서 갈아입어야 한다고 했다. 인기 있는 곳인데 탈의실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팔에 들러붙는 집요한 파리들을 쫓으며 건물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수십 명의 서양인 관광객이 보였다. 현지인으로 추정되는 여자도 있었는데 수영복 차림이 꽤 놀라웠다. 히잡을 쓴 채 치마 스타일 상의를 입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어 전신을 가렸다. '저 옷 물 먹으면 꽤 무거워지겠는데?' 하며 거울을 보니 그들과 큰 차이 없는 옷차림의 여자가 보였다. 그건 바로 나. 운동용 아디다스 반팔에 레깅스를 입고 운동용 짧은 바지까지 입어줬다. 비키니 차림의 사람들은 나를 보고 놀라겠는데?


  요르단패스의 힘을 발휘될 수 없는 곳이 바로 와디 무집이다. 현지인과 같은 대우를 받는 나조차도 18JD를, 친구들은 나보다 더 비싼 21JD를 입장료로 지불했다. 아쿠아 슈즈나 방수팩은 유료로 대여 가능하다. 직원이 준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가니 절벽과 얕은 개울이 보였다. 와디 무집에는 여러 가지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계곡에서 즐길 수 있다는 알 시크(Al Siq) 트레일을 택했다. 생각보다 물이 없어 아쉬운 것도 잠시 어느새 계곡물이 목 끝까지 차올랐고,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설치된 밧줄을 잡지 않고서는 이동할 수 없는 구간도 있었다. 곡 깊숙이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악!", "꺄아!"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어떤 지점은 수심이 2m는 되는 듯했는데 수속성 친구들은 수영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밧줄을 생명줄 삼아 바위에 바싹 붙어 이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와디무집 재미있는데? 정도였다.


  폭포가 쏟아지는 암석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우리 앞에는 수십 명의 입장객이 모여있었다. 줄을 서는 것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저 '저곳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웠다. 잔뜩 긴장한 채 줄을 서 있는데 내 바로 앞의 여자가 바위의 미끄러운 부분을 밟았는지 미끄러졌고, 그 앞에 있던 남자가 손을 잡아 줬다. 건너갈 수 있으려나 했는데 물줄기가 꽤 거세서 그대로 폭포와 함께 계곡으로 풍덩 빠졌다. 꺄악 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하필 내 앞에서 떨어지다니. "건널 수 있어!"하고 외치고 건너니 아까 그 남자가 손을 내밀어 준다. 구세주 같은 사람. "고맙다"며 손을 잡았지만 앞의 여자와 똑같이 그대로 물줄기에 쓸려갔고 "아악!" 하는 메아리를 만들었다. 내 앞의 남자는 손만 내밀고 누구도 돕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살면서 한 번도 강한 물줄기에 쓸려 간 적도, 물로 맞아본 적도 없어 정신이 혼미했다. 그렇게 물속에서 어푸어푸하는 나를 또 다른 관광객이 건져 렸다. 또 쓸려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던 덕분인지 두 번째엔 무사히 폭포 사이를 건널 수 있었다. 그 뒤로도 "고마워(Thank you)"를 수 십 번 말한 후 흠뻑 젖은 생쥐꼴로 도착지점에 도달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내 친구들도, 다른 관광객도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서로를 보며 엄지 척을 하며 웃어 보였다.


  도착 지점에 가면서 '여기 물살이 이렇게 세서 어떻게 내려가나'하는 구간이 있었다. 처음처럼 밧줄과 사다리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고, 한 번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바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법이 있었다. 수영도 못하는 내가 저곳에 빠지면 괜찮을지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까지 온 거 한 번 해보자! 하고 직원 앞 바위에 앉았다.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물에 풍덩 빠져 무서웠지만 몸은 괜찮았으나 물에 빠지며 안경을 잃어버렸다. 안경을 잃어버리는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친구들이 잠수를 해서 물속을 둘러보았으나 이미 안경은 내 손을 떠났다. 예상외로 너무 재미있었다. 요르단에서 계곡 트레킹을 하게 될 줄이야.


"아이릿! 여기 안 왔으면 정말 후회했을 뻔했어!"흥분으로 가득 찬 토딘이 외쳤다.

"그러니까! 회사 사람들이나 현지인 친구들이 추천한 이유가 있었네! 나 물 안 좋아하는데 정말 재미있었어!"

"재미있네." 토동도 동의.


차에 오르기 전 몸의 물기를 제거하는데 어쩐지 다리가 너무 아프다. 레깅스를 걷어 보니 오른쪽 정강이에 10cm 넘는 푸른 멍이 들어있었고 살짝 부어있었다. 아까 구세주의 손을 놓치고 물에 쓸려가며 암석에 찧은 듯했다. 그때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통증도 못 느꼈는데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느껴진다. 부러진 건 아닌 것 같아 그대로 레깅스를 내렸다. 다리에 멍도 얻고, 눈 잃었지만 한껏 들뜬 채 사해로 향했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사해 바다에 둥둥 떠보기"가 있다. 염도가 34%가 넘는 사해는 바다 밑이 아니면서 가장 낮은 땅이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지중해 해면보다 400m 이상 낮다고 한다. 게다가 바다로 착각하게 사해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죽음의 호수다. 왜 사해라고 불리는지 모르겠다. 사호라고 하면 이상한가? 어쨌든 사해 주변 지역에는 폭우가 쏟아지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정도라는데 그 물이 사해까지 유입되지는 않나 보다. 오히려 매년 1m씩 수심이 줄어들고 있어 수십 년 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요르단 북부에서 유입되는 수량 및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량 감소가 그 원인이라나. 높은 염도로 생물이 살지 못해 죽음의 바다(Dead Sea) 사해라 불리는데 이제 사해 자체가 사라지게 생겼다니. 메마르기 전에 미리 가보았다.


  고백하자면 사해에 처음 간 이날은 팔을 뻗고 떠있지 못했다. 수속성 인간이 아닌 데다가 와디무집에서 물에 쓸려 나가 다리에 큰 멍도 생겼고, 안경까지 잃어버려 물이 무서워졌다. 게다가 그냥 물도 아니고 염도가 높아 더 큰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소금물! 토딘과 토동은 다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사해에 둥둥 떠서 온갖 묘기를 펼쳤다. 수속성 인간의 움직임에 박수를 치며 사진을 찍어줬다. 나는 아주 얕은 곳에 가서 손으로 땅을 짚은 채 사해에 몸을 담갔다.


  사해는 그 지리적 위치나 특성을 제외하고도 신기한 게 더 있다. 바로 물의 촉감과 냄새. 염분기 때문인지 물이 앰플 같았다. 미끈거리는 게 기름 같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와디무집에서 다친 곳과 상처 난 줄도 몰랐던 곳들이 염분으로 따끔거리지만 언제 또 올 지 몰라 꾸덕한 앰플 같은 사해에 몸을 담근 채 (자갈 위에) 둥둥 떠있었다. 



  사해에서 둥둥 떠보기 꿈을 달성하고 온수로 붉어진 상처와 미끌거리는 몸을 헹군 뒤 리조트 내 수영장으로 돌아왔다. 사해를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많았지만 리조트를 택한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호텔 숙박을 하거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식당, 카페는 물론이고 샤워시설까지 잘 갖춰져 있어서 편리했다. 수속성 인간 토딘과 토동은 아카바에 이어 사해에서도 수영 삼매경. 나는 발이 닿지 않는 수영장 가장자리에 팔만 걸친 채 사해 건너편 이스라엘 땅을 바라보았다. 국경을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것이 어색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어서인지 국경이 맞닿아 있거나 이동할 수 있는 나라를 보면 신기하다.


  리조트에서 시간을 보낸 뒤 암만으로 돌아왔다. 아직 남아있는 소금기를 깨끗이 씻어내고 기념품 구매를 위해 7 서클 스웨피예로 갔다. 시샤를 피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지난 여행을 곱씹었다. 사막도시인 데다가 무슬림 국가라 여행지로서 매력이 있을까 했는데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평소에 쉽게 하지 못할 다양한 즐길거리, 쉽게 보지 못하는 자연환경, 정 많은 요르단 사람들. 나중에 누가 요르단에 가자고 하면 또 갈 의향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와디무집? 요르단 가면 무조건 가야지! 토동은 카페에 두고 토딘과 암만 대형마트 중 제일 크고 물건이 많은 코즈모(Cozmo)에 갔다. 토딘은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답게 팔라펠 믹스부터 대추야자까지 필요한 것만 쏙쏙 골라 구매했다. 마지막 날을 이대로 보내기 아까워 집에 돌아와서 야식으로 KFC 치킨까지 야무지게 시켜 먹었다. 항상 긴장하며 지냈는데 요르단 여행을 하며 좀 편안해졌다. 다음 날 새벽, 심리적 긴장을 없애는 데 일조해 주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친구들 떠나보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출근 했다. 7박 8일은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1년이 더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추억 대신 꿈을 먹고살아야 한다지만 토딘, 토동과의 여행을 추억하며 또 다른 꿈을 꾼다. 우리 다음에는 어디서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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