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임시 숙소를 떠나 머물 집을 찾으며 집주인 S를 만났다. 암만 거주 30년 차라는 S는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세입자를 받는 듯했다. 약간의 흥정을 요구했지만 흔쾌히 수락해 줬고, 이사 날짜까지 일사천리로 잡았다. S의 입장에서 초반의 나는 환영할 만한 세입자는 아니었다. 임시 숙소의 벽과 침구류 깊숙이 밴 냄새에 스트레스를 받아 S가 얘기한 입주 날짜보다 빠르게 입주하길 희망했다. S는 그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집 정리가 되지 않았고 가구도 더 들여야 하니 조금 늦게 들어오길 바랐다. 그러나 S의 집을 못 찾았으면 몰라도 찾은 이상 담배 냄새가 나는 임시숙소에서 생활할 수 없었다.
"저 없을 때 자유롭게 집에 와서 정리해도 괜찮아요. 제가 퇴근하고 가구 설치로 시끄러워도 돼요. 저는 정말 담배 냄새 안 나는 집이면 누가 오든, 소음이 들리든 정말 괜찮거든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 두 손을 모아 빌면서 S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척도 약간 더해줬다. 연기에는 능하지 않지만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마침내 이른 입주 허락을 받았다.
그날 퇴근 후 임시 숙소로 돌아가 빠르게 짐을 꾸렸다. 주름 진다는 이유로 빼뒀던 가을, 겨울 옷을 다시 압축팩에 넣은 뒤 공기를 뺀다고 난리를 쳤다. 물기 묻은 세안도구도 탈탈 털어 탁자 위에 올려뒀다. 다음 날 퇴근 하자마자 이사하는 것을 목표로 평소와 달리 민첩하게 움직였다.
다음 날 퇴근시간이 되고 회사 현지인 직원 친구 도움을 받아 이삿짐을 옮겼다. 이삿짐이라고 해봤자 몇 주 전 한국에서 올 때 끌고 온 캐리어 하나와 등산 배낭 그리고 백팩 하나가 전부였다. 그렇게 많은 짐은 아니었지만 택시를 타고 가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도움을 받기로 했으나 임시 숙소 앞에 놓인 차량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자동차는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곤 했지만 이 차는 어쩐지 잘 굴러갈 것 같지도 않았다. 문은 뽑아달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범퍼는 이미 죽여달라는 듯 지면에 닿기 일보직전이었다. 트렁크에 짐을 넣으며 내부는 괜찮기를 바랐다. 앞 좌석에 타고 문을 닫았는데 문틈 사이로 도로가 보였다. 차량 주인이 시동을 걸었는데 차가 앞으로 가질 않는다. 몇 번 더 시동을 건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5m 전진 후 1m 후진하는 기분이었다. 꿀렁거리고 털털 소리 나는 차는 만화적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꿀렁거리는 차를 타고10분 거리 새 보금자리에 25분 만에 도착했다.
건물 앞에서 S에게 전화를 하니 바로 내려와 건물 현관문을 열어줬다. 곧바로 열쇠를 꺼내 "우선 급히 치웠는데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라며 내가 앞으로 살 집 문을 열어줬다. 아! 이 상쾌함. 거실, 부엌, 안방 그 어느 곳에서도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청소 중이라 가스레인지와 가스 후드는 해체되어있고, 가구도 덜 들여놓아 거실에는 소파도 매트도 없었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담배 냄새'가 없는 방에서 기분 좋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 S는 짐을 풀고 쉬라고 한 뒤 본인이 사는 윗 층으로 올라갔다.
처음 요르단에 도착했던 때 했던 일이라 순식간에 짐정리를 마쳤다. 이미 S가 환기까지 다 해둔 덕에 몇 개월간 비어있었다는 집이지만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았다. 새로 빨아뒀다는 이불 커버를 씌우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기분 좋을 때 듣곤 하는 바우터 하멜의 <Breezy>를 틀었다. 그대로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잠에 들 뻔했는데 S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 먹으러 올래요?"라는 말에 고개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부엌을 바라보고 "저야 좋죠."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S의 집으로 올라가기 전 복도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이미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지만 예의상 문을 똑똑 두드리니 부엌으로 오라고 소리친다. 부엌으로 가니 아직 요리 중이었다. 옆에 서서 뭐 도울 것이 없나 서성거리다 말동무나 하기로 했다. S는 왜 요르단에 오게 되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고 필요한 물건은 다 구했는지 등 여러 가지를 물었다. 아직 업무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잘은 모르겠지만 요르단 사회 전반에 대해 배우고 있고, 아직 물건을 다 사진 못했다고 답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당근과 렌틸콩 등이 들어간 스프는 S이 원하는 점성으로 잘 끓었다. 뒤이어 그린빈을 곁들인 꼰낄리에 리가테 토마토 파스타도 잘 익었다. 파스타를 듬뿍 떠서 치즈 그레이터로 치즈를 갈아 스프와 같이 내줬다. 이사 첫날부터 따뜻한 집밥으로 피곤한 몸을 달랬다. "너무 맛있어요!"라고 하니 더 먹으라며 처음과 같은 양의 파스타를 접시에 담아줬다. 차마 거절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배불러도 더 먹고 싶은 맛이라 "잘 먹겠습니다!"하고 또 싹 비워냈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넘었다. 초대해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떠나려는데 "내일 점심도 먹으러 와요."라고 한다. 괜찮다고 했지만 새로운 사람을 향한 '요르단 환대문화(Jordanian Welcoming)'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 미안하지만 또 한 번 가야겠네.
이사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야근을 하지 않는 날이면 S를 만났다.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집주인에서 친구로 바뀐 S. 그도 그럴 것이 나는 S가 새로운 세입자를 들일 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들어왔다. 퇴근 후 집에 오면 S는 창틀을 닦고 있거나, 후드의 기름때를 불리고 닦고 있었다. 손님이 올 일이 없는데도 손님방까지 꼼꼼하게 정리해 줬다. 저녁이 되면 저녁밥을 하고 불러 밥을 먹이거나, 요르단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데 궁금한 것만 많은 한국인 여자애를 차에 태워 밖으로 나갔다.
집 주변을 이곳저곳 돌며 동네를 구경을 시켜줬다. 집에서 가까운 슈퍼는 어디에 있고, 회사에서 가까운 맛집은 어딘지, 질 좋은 고기를 파는 정육점, 신선한 과일을 파는 곳 등을 골목골목을 다니며 알려주었다. 하루는 거주지가 있는 곳 왼쪽에 있는 5, 6, 7 서클을 다른 날은 구시가지부터 3 서클까지 데리고 다니며 맛집도 하나씩 추천해 주고 식당도 데려가서 아랍 음식을 사주었다. S네에서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랍 음식과 문화 속성 수업 우등생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안에 가구가 하나 둘 설치되기 시작했다. 원하는 소파가 있냐고 물어보길래 그냥 깔끔한 소파면 되고 크기는 상관없다고 했다. 어느 날 아카바항에 소파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소파가 아카바항에 있냐 물으니 터키 가구점에서 샀다고 한다. 그렇게 터키에서 온 소파가 거실에 설치되었다. 소파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집주인이 가구 구매에 열심이다. "왜 이렇게 물건을 샀어요? 저 진짜 괜찮아요."라고 하니 "손님이 들어왔는데 이렇게 텅 빈 거실에 살게 할 순 없죠. 무조건 편해야 해요."라며 소파 설치해야 하니 방으로 들어가라 떠민다. 나보다 내 편의를 더 생각해 주는 집주인 S를 만나서 행복했다. 방에 들어가는 대신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자식을 키워본 엄마들은 눈썰미가 뛰어나다. 방 곳곳을 매의 눈으로 살피며 부족한 가구는 없는지, 교체가 필요한 가구가 없는지 보는 줄 알았는데 내 간소한 짐이 눈에 띄었나 보다. 이사하고도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지 못해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아울렛 쇼핑을 가자며 또 다시 차에 태웠다. 이번엔 평소보다 멀리 나갔다. 밤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울렛 거리에는 불빛과 쇼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장 필요한 슬리퍼, 샤워가운, 수건만 보려 했는데 의류는 물론이고 생필품도 저렴했다. 시내와 달리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S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물건을 전부 구매했다.
그런 S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리스, 배 고프지 않아요?"하고 S가 물었다. 뭘 먹든 내가 사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고파요." 답하니 자기가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로 데리고 갔다. 이사 온 순간부터 전부 고마워서 S가 전화하러 나가있는 동안 계산할 생각으로 매대 앞에 서있었는데 어쩐지 직원이 계산을 안 해준다. 그 사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S가 큰소리로 "아이리스 뭐해요?"라며 옆으로 밀쳤다. 자기가 데려왔는데 이건 아니다, 앞으론 그러지 말라며 카드를 꺼내 계산을 마쳤다. 내 카드는 받지도 않던 직원이 S의 카드는 흔쾌히 받아 결제를 마쳤다.
그렇게 처음 맛본 쿨라주(Kullaj). 얇은 페이스트리에 치즈를 잔뜩 넣고 다시 페이스트리로 덮고 다진 피스타치오를 잔뜩 뿌린 아랍식 디저트라고 한다. 어떻게 한 건지 바삭하고 부드럽고 달콤한데 치즈가 잔뜩 들어가 있어 고소하기까지 했다. 요르단 사람들이 소울 디저트인 크나페를 제치고 내 최고 디저트에 등극한다.
우리의 외출은 계속되었다. 나는 먹는 것에 특히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다. 퇴근 후 정원에서 식물에 물을 주고 있는 S에게 인사를 하며 "S! 샤와르마 좋아해요?"하고 물었다. 회사에서 샤와르마를 처음 먹었는데 맛있길래 혹시 좋아한다고 하면 사다 줄 생각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매일같이 음식얘기만 했던 탓일까, S는 이 말을 "S, 저 샤와르마 맛집 궁금해요!"로 알아들었나 보다. 그날 저녁 1~7 서클을 돌면서 샤와르마와 팔라펠 샌드위치를 3개나 맛보았다. S는 단순히 음식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식당의 역사와 음식의 재료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어린 시절 이탈리아에서 미식 생활을 즐긴 탓인지 S도 음식에 진심이었다. 한국 식재료를 갖다 주면 어울리는 요르단 향신료까지 생각해 낼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늦은 저녁 미식 여행을 마치고 배를 통통 두드리며 내 방이 아닌 S의 부엌으로 향했다. S는 소화를 위해서 그리고 식후에는 민트차를 마셔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민트차로 달래주고 팔라펠은 어떻고, 아까 먹은 샤와르마 두 곳의 차이는 어떻다는 이야기를 하며 소화를 시켰다. 차가 아니라 수다가 최고의 소화제가 아닌지...
11개월간 S의 집에서 지내면서 많은 음식을 먹었다. 어느 날은 S가 중국 음식점에서 맛있게 먹었다며 중화풍 음식을 해주며 평가를 해달라고 했다. 불맛이 잘 나는 게 중국 음식 같다 하니 미소 짓는다.
어느 날은 닭 위에 요거트에 타히니 소스를 섞어 얹어줬다. 닭에 요거트가 어울리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직접 요거트 소스를 만들어서 먹을 정도로 빠지게 되었다.
S 한테 말 꺼냈다가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까지 미식 여행을 여러 번 한 뒤로 '말조심해야지!' 하면서 매번 또 먼저 말을 꺼낸다. 이날 역시 "S, 요르단에선 아침에 뭐 먹어요?" 질문 한 번 했다가 한 밤에 요르단식 아침밥을 먹었다. 내 질문에 정성을 다해서 설명해 주는 S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S의 집에서 살면서 S와 입맛이 비슷해졌다. 크나페보다 쿨라주를 좋아하고,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샤와르마도 같은 브랜드를 좋아하고...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는데 첫 요르단 살이에서 S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S는 환대문화라고 표현했지만 한국인인 나는 S가 해준 모든 것을 정(情)으로 느꼈다. 한국의 정문화라고 표현하는데 해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정을 더 느끼기 힘든 것 같다 생각했는데 요르단에서 많은 사람에게 정을 느꼈다. 환대문화나 정이나 애정과 같은 감정적 유대감을 기반으로 하니 비슷하지 않을까. 요르단의 환대문화를 배웠고, 나중에는 S에게 받은 것을 다른 한국인 친구들과 현지인에게 베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