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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Mar 06. 2023

내향적인 소녀가 어른이 되기까지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망가져갔다. 



대학이나 회사에서 나를 만났던 사람들은 내가 실은 어릴 때 조용하고 소심한 소녀였다고 말할 때마다 믿지 못한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심지어 중학교 동창 하나는 내가 항상 검은 옷만 입고 구석에 앉아 책만 읽었다고 기억하더라,라는 말까지 덧붙이면 거짓말하지 말라며 웃어넘기곤 했다. 


예민하고 신중한 성격을 소심하다고 표현하고, 외향적인 성격을 적극적이고 활발하다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모두들 그러하듯 나는 조금씩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했다. 활발한 친구들 사이에서 같이 즐거운 척 웃고 거친 친구들에게 욕을 해가며 술자리에서는 술을 권하는 사회형 인간이 되어갔다.


제일 처음 나와 맞지 않는 가면을 쓰던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유치원도 채 들어가기 전이었다. 옆집 친구와 매일같이 인형놀이를 하며 놀았는데 그 친구는 놀이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역할이 주어지거나 하면 흥, 하고 집에 가버릴 거라고 나를 겁주었다. 친구가 한번 가면 다시는 오지 않는 줄 알았던 어린 나는 매번 그 아이에게 양보했다. 어느 날 엄마가 나를 타일렀다.


"소윤아, 매번 그렇게 맞춰주지 않아도 돼. 다음에도 oo가 집에 간다고 하면 그래 그래라, 하고 집에 가게 놔둬. 그래도 내일 또 놀러 올 거야."


다음 날, 그 친구는 또 자기 집에 가 버린다고 하며 떼를 썼고, 나는 용기를 내어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 아이가 2층 집이던 우리 집 계단을 내려가던 순간이 정확히 기억난다. 5살쯤 된 어린 나는 층계 위에 서서 그 친구를 내려다보고 그 친구는 계단 아래 몇 칸을 남겨두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 친구의 눈에 서린 당혹감을 나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어떻게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그때의 기분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에게 안겨 울었던 것 같다.


조용하고 책을 좋아했던 초등학생의 나는 6년이 크레파스로 까맣게 칠해진 것 같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국어책을 읽고 싶은데도, 저 친구보다 더 잘 읽을 수 있는데도, 차마 손을 들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고 자신감이 넘치던 다른 눈동자들이 부러웠던 마음이 기억난다. 유일하게 나를 괴롭히지 않았던 남자 짝지의 동그랗고 살짝 튀어나온 두 눈이 생각난다. 불합리하고 이해가지 않는 것들 때문에 한 남자아이에게 두드려 맞기도 하고 제사 지내는 날이면 큰집 2층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 억울한 게 많던 나는 작고 힘이 없었고 내 편을 들어주는 어른은 많지 않았다.


중학교에 가서야 학교가 끝나면 도서대여점에 우르르 같이 뛰어가는 친구 무리가 생겼다. 점심시간이면 같이 운동장을 서성이고 등하교를 같이 하는 친한 친구도 생겼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전교 1등을 하고 반장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하고 싶은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었고 화를 내는 법도 배웠다. 대학교에서는 남자아이들에게 장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활발하다 못해 거칠어졌다. 나와 맞는 친구들을 만나고 주변에서 인정을 받는 일이 한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는 내 학창 시절 전부를 바쳐 배웠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 성격은 더욱 효율적으로 사회화되었다. 정교하고 자연스러운 가면을 쓰고 행동하게 되었다. 모든 대화는 계산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하고 싶은 말은 참고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했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도 친절하게 전화받는 일을 익혔고 에둘러 거절하는 방법도 익숙해졌다. 맞춰줘야 하는 상대방과 찍어 눌러야 하는 상대방을 구분했다. 기분이 나쁘고 마음이 힘들수록 활짝 웃고 다녔다. 어른이 되었다. 


사회화된 나는 편리했다. 나는 친절하고 예쁜 사람이었고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다. 상대방의 마음보다 나의 시간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열정, 센스, 유머, 쿨한 것 따위를 사람들은 좋아했고 그렇게 나 자신을 포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며 싸워서 이기는 일은 통쾌하고 신나는 일이었다. 나보다 더한 사람들은 세상에 많고 나는 그래도 합리적이고 점잖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망가져갔다. 내면의 내가 다치는 걸 모른 척해야 일을 잘하는 인간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새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에 주사로 죽고 싶다는 말을 달며 맨몸으로 수영장에 뛰어드는 여자가 되었다. 이게 문제라는 것도 정신과 선생님과 한창 상담을 거친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농담처럼 친구와 하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30대가 넘어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아직도 병원에 가본 적 없다면 자신이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인 거라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면서 왜 우울증에 시달리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글쎄,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우울증에 걸려야만 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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