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선택한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며칠 전 동생과 싸웠다. 둘 다 30대가 된 이후에는 어른이 다 되었으니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별 일이었고, 그만큼 마음이 아팠다. 며칠 뒤인 아빠 생신 선물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동생에게 얘기했더니 자기는 자기 남편이랑 이미 선물을 주문했다는 말 때문이었다. 여태까지는 거의 항상 생일 선물만큼은 함께 했기 때문에 동생이 아무렇지 않게 언니 갑자기 혼자 왜 그래? 하는 태도가 나는 너무 속상했다. 때마침 마신 술기운에 더 서러워져서 엉엉 울기도 했다.
뒤늦게 동생이 생신 선물은 보통 나와 동생이 같이 골라왔던 게 맞는 것 같고, 동생 입장에선 양가 부모님 선물 챙기느라, 또 나는 안 챙기는 명절 선물들이랑 헷갈려서 당연히 각자 챙기느니 싶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도 그렇게 이해는 했다. 하지만 나는 이틀이 넘어서까지 속상하고 섭섭해서 오늘 영상 통화 온 동생의 카메라 앞에 웃는 얼굴을 비추는 것도 힘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이건 나-동생이 주가 되어 부모님 생신 선물을 고르던 전통이 사라지고 동생-그녀의 남편이 한 편이 되고 내가 다른 편이 되는, 새로운 편 가르기의 문제로 느껴졌던 것이다. 둘이 함께 시간을 워낙 많이 보내니까 그렇겠지, 동생은 결혼할 때부터 당연히 제부랑 한 편이라는 엄마의 말도 나에게는 소용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동생은 우리 가족 내에서 나의 동생이라는 정체성보다 이제는 자신이 이룬 가족에서 아내라는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긴데, 나는 이게 왜 이렇게 받아들이기 힘이 들까. 단지 내가 결혼을 아직 안 해서일까.
동생은 이제 결혼한 지 4년이 되어 가고 얼마 후면 출산도 한다. 지금은 제부와 함께 미국 보스턴에서 포닥 과정을 밟고 있어서 한국에 못 들어온 지 한참 되었다. 나는 동생을 매우 아끼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딱 그만큼, 동생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마음만큼 그녀가 결혼 후에 생긴 우리의 관계의 변화에 대해서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싶다. 나의 집착일까 싶기도 하고, 평생 가지고 있던 걸 갑자기 나더러만 바꾸라고 강요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제일 처음 이런 감정을 느낀 건 동생의 결혼 직후에 우리 가족이 항상 계획하고 상상해 오던 유럽 가족 여행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다들 제부도 당연히 같이 간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에 나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당시 나는 아직 제부와 친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대륙을 건너 오랜 기간을 여행에 당연히 같이 동행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소한 나의 의견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엄마 아빠는 되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고 나는 페이스북에 결혼은 다 이런 거냐며 징징거리고 그나마 작은 위안을 얻었다.
그때는 다들 하나 둘 셋 하고는 우리는 가족이니까! 가족이라고 느끼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강요를 받는 것 같았다. 새 가족은 나에게는 아직 낯선 사람인데, 시간을 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한국의 가족주의는 이렇게 개인을 무시하는 전체주의인 건가?
지금이야 제부랑 함께 마신 술 잔과 시간만큼 또 동생에게 듣는 제부의 이야기로 제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남편인지 좀 알게 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유럽 여행도 같이 가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느낄 만큼 마음의 벽도 사라졌고 얼마 전에는 실제로 동생과 제부, 나 셋이서 이탈리아에서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고 천천히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가족이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때 왜 나만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당했었을까.
이번 일도 언젠간 닥칠 일이었을까. 편을 가르는 문제는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역시 동생은 이제 동생이 선택한 가족을 이뤘으니까 나보다는 더 그쪽에 집중하고 신경 쓸 수밖에 없나 하는 생각을 내가 할 때가 되었나 싶다. 동생이 출산을 하고 나면 동생은 언니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엄마가 당부하던 게 떠오른다. 역시 그런 걸까.
가족이란 뭘까.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도 쉽지만은 않지만, 결혼으로 맺어져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더구나 성인이 되어서 생기는 가족은 진짜 어렵다. 내가 결혼하면 나는 동생의 마음을, 동생은 나의 마음을 알게 될까. 내가 결혼하지 않으면 평생 나는 나만 속상하고 섭섭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답을 알게 될까 싶어서 글을 적기 시작했는데 이 숙제는 왠지 영원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