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은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이룩하기에 좋은 숫자다
허리 수술을 받은 지 3개월 정도 지난 아빠가 이제 슬슬 재활 운동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말을 꺼낸다. 엄마는 버럭 화를 내며 그런 건 무리하지 말고 의사 선생님과 의논해 보고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태가 빨리 진정되려면 내가 나서야 한다. 1:1보다는 1:2가 나으니까. 엄마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우선 아빠 편을 들기로 한다. 엄마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빠가 아무 운동도 아니고 도수 치료 경력 있는 전문가한테 재활 운동 배운다는데 뭐가 문제야? 의사 선생님도 당연히 오케이 할걸!
엄마는 한풀 꺾인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래도... 너무 이른 거 아닌가 싶어서 그러지...
쐐기를 박아야 한다.
나도 접때 그분한테 도수치료받아봤는데 잘하던데 뭘! 경락이나 지압 같은 것보다 훨씬 재활에 전문적이구만, 엄마는 왜 화부터 내?
사실 엄마가 별 것 아닌 일로 화부터 낸 건 아빠의 고집 때문이라는 걸 나는 안다. 아빠는 마음을 한번 먹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마음먹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더 세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아빠 재활에 운동이 효과적일 것 같아서 얼른 엄마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번지기 전에 단도리를 해두는 것이다. (엄마 미안)
소소한 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둘보단 셋이라서 진압이 빨리 되는 편이다. 둘이서 대치하다가도 다른 한 사람이 한 사람의 편을 들면 어쩐지 어… 하고 수긍하게 된다. 꼭 다툼이 아니라 단순한 의견 차이일 때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사는 동생에게 보낼 물품을 택배 상자에 싸면서도 이렇게 넣을까 저것도 넣을까 말들이 많았지만 역시 두 명이 찬성하는 쪽으로 대세는 기울었다.
이전에는 셋이 토론해도 결국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동생에게 의견을 구했다. 동생은 전혀 다른 신박한 답을 내놓으며 우리 셋을 감탄케 했다. 역시 박사님이야.
셋이 모이면 결국 끝이 안 좋다는 말이 있다. 더 친해지는 둘이 생기기 마련이라 결국 한 명이 서운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엄마 아빠가 한 편인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별로 섭섭할 일이 없다. 나는 이제 되려 혼자인 게 더 편하다. 놀러 가고 맛있는 걸 먹는데 자꾸 날 끼우려고 하는 건 오히려 부모님이다.
꼭 부모님의 갈등에 내가 껴들기만 하는 건 아닌데, 오늘 같은 경우에 나와 엄마가 참외씨를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로 토론을 벌이는 와중에 내가 슬쩍 아빠를 쳐다보며
아빠, 참외씨 맛있잖아?
했더니 아빠가 엄마 눈치를 쓱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참외 껍질이 건강하다는 걸 티브이에서 봤다고 했을 때도 나와 아빠 둘 다 참외를 그렇게 먹을 바에야 먹지 않고 말겠다며 난리를 쳤다. 엄마는 머쓱해하며 그럼 너네는 깎아먹던지~ 했다.
셋은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이룩하기에 좋은 숫자다. 둘로는 표결이 안 되니까 하나가 더 필요하다. 우리는 오늘도 참외씨와 참외껍질로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둘보다 셋이 좋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