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변태인 그놈
지적인 남자에 대한 환상이 있을 때가 있었다. 전공 지식 너머의 무한한 지식을, 그리하여 삶을 꿰뚫는 어떤 통찰력을 갈구했을 때다. 전공 지식만으로는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어떤 궁극의 진리를 얻게 되면 좋겠다고 기도하던 때였다. 물론 나는 지금도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그 지식이란 게 자신의 삶에도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적용되는지의 여부나, 지식과 철학을 통해 얻은 통찰들이 결국은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고 사회에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 깨달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는 게 많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멋있어 보이진 않는다.
20대 후반, 학부 때와 회사에서 배운 공학 지식들만으로 내 삶을 채워나가기에 뭔가 부족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이런저런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당시 인문학이 유행을 타기 시작해서 흥미로워 보이는 기회들이 많았다. 그중 시간도 장소도 적당해서 동양화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서양화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동양화부터 먼저 들어야지 했다.
칼퇴하기 눈치 보이는 일 많은 회사에서 강남에서 퇴근하고 강북까지 달려가 복잡한 어디 골목에 주차 한 뒤에 2층으로 올라갔다. 쭈뼛거리며 열었던 철문의 삐걱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녁 7시 수업에 첫날부터 지각했던 나는 겨우 서너 번 참석한 수업 내내 조금씩 늦었다. 강사는 주로 어디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이것저것 한다는 30대 초중반의 젊은 남자였는데, 피부가 하얗고 머리가 계란형으로 까만 뿔테 안경을 꼈다. 멀쩡하게 생긴 젊고 지적인 남자 강사는 대부분이 여성인 10명 남짓한 수강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두 번짼가 세 번째에, 9시쯤 수업이 끝나고 뒤풀이로 다 같이 순댓국에 소주를 마시러 갔다.
생애 처음으로 점수도 평가도 없는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점점 신이 났다. 하고 싶은 말과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고등학생 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미술을 전공한 적은 없고 평생 이과에 공대를 나온 여자애가 던지는 질문들이 신선했는지 그 강사는 나에게 조금 관심을 가졌다. 나름 잘 나가는 회사원처럼 보이겠다고 몸에 딱 붙는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신고 다닌 덕에 내가 유난히 예뻐 보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순히 개중에 어려서일지도.
강사는 사람들과 함께 소주를 마신 날 밤 내게 문자를 보냈다. 잘 들어가라는 식의 가벼운 인사였는데, 별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별 문자인 셈이었다. 우리는 조만간 또 순댓국에 소주를 마시자는 약속을 주고받았다.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으려던 나는 여럿이서 함께 하는 술자리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강의를 마치면서 강사가 자, 오늘은 순댓국에 소주 드실 분 없나요, 묻자 손 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강사는 약간 어색하게 그럼 소윤 씨랑 둘이 마셔야겠네요, 했고 나는 그래도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쯤에야 이건 뒤풀이가 아니라 데이트 같은 거구나, 인지했다.
지난번 갔던 순댓국집에 가서 각자 한 병씩 딱 두 병 소주를 마셨다. 더 마시고 취하고 싶진 않았다. 약간 어색했던 나는 수업 시간에 다 못 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바닷가 한가운데 있는 바위를 보면서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무슨 지질 현상이 일어났길래 저런 바위가 생겨났을까, 그런 게 궁금하더라니까요, 저는. 이과 진짜 어쩔 수 없죠. 그 사람은 내 예상대로 내 이야기를 흥미로워했다. 그 그림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나는 사실 되게 순진하고 착한 어린애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이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거라는 계산 정도는 할 줄 알았다. 멋진 큐레이터가 나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았다. 미술을 배운 적이 없어서 그렇지 나도 똑똑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 사람의 눈빛은 술이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뜨거워졌고 나는 그것을 짐짓 모른 척했다. 하지만 계산을 하고 식당 밖으로 나와서는 나도 재빨리 스탠스를 결정해야 했다. 우리는 딱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그가 내 어깨 위로 팔을 둘렀다. 내가 고개만 돌리면 그의 얼굴이 바로 부딪히는 키 차이였다. 몇 걸음 걷다가 내가 그의 얼굴을 바라봤고 우리는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키스는 꽤 열정적이었다. 한적한 도로여서 이따금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우리는 고개를 돌리고 킥킥 웃었다. 나는 이 지적인 남자가 나를 좋아하다니, 하는 환상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일정이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벌써부터 그와 함께 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저는 이제 가야겠어요. 키스를 멈추고 대리 운전기사를 불렀다. 그가 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고 해서 같이 차 뒷좌석에 앉았다. 다시 열렬한 키스가 시작됐고 그는 내 몸을 더듬고 난리가 났다. 거기까지는 나도 열정, 사랑 뭐 이런 건 줄 알고 약간 흥분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주섬주섬 바지를 벗으려고 했다. 나는 뭐 이렇게 진도가 빠르지, 당황했다. 그가 대뜸 자기 것을 빨아달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대리 기사님 곧 오실 텐데 어쩌냐고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는 자기가 너무 흥분해서 좋아서 그러니까 제발 거시기를 빨아달라고 졸랐다. 남들이 볼 수도 있는 도로변에 주차한 차 안에서 하루 종일 활동하고 씻지도 않은 거시기를 빨아달라고 조르는 남자는 처음 봤다.(다행히 이후로도 못 봄) 그냥 무조건 싫었다. 다행히 대리 기사 아저씨가 늦지 않게 왔고 그는 바지를 서둘러 올렸다. 그는 끈질기게 우리 집에 같이 가겠다고 졸랐지만 나는 다음 날 일정을 핑계로 그를 거절하고 대리 기사 아저씨와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는 그다음 주부터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다들 뭐 그런 변태가 있나 생각하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는 특별한 변태라기보다, 단순히 나를 쉽게 봤던 것 같다. 나에게 평범한 이성에의 호감이나 애정을 갖고 있던 게 아니라 평등한 관계의 다른 사람에게는 요구할 수 없었던 변태적인 요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20대 어린애였던 나를 만만하게 봤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그의 강의를 다시 들으러 가지 않기로 결심할 때까지 수없이 고민했다. 지적이고 멋진 미술관 큐레이터 남자가 그런 변태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쪽에서는 그런 행위를 요구하는 게 자유롭고 쿨하고 뭐 그런 걸로 여기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보수적이었나? 왜 나는 그 사람이 이렇게 싫어진 거지? 그때는 이유를 정확히 몰랐지만 나는 그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한 게 분했다. SNS 속 그는 잘 나가는 큐레이터였고 나는 그의 업계에서 다시 부딪힐 리 없는 일반인이었기 때문에 내가 당한 일은 그에게 아무 타격도 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덜 자유로워서 자유로운 그를 못 받아준 건 아닌가 의문스럽기도 했다. 남자들은 종종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 뒤로도 지적인 남자가 멋있어 보였다가, 환상이 깨졌다가 하는 일들이 반복됐다. 어느 분야에서 재능이나 두각을 드러내는 건 누가 봐도 멋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내게도 멋진 남자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언어로 자기 잘난 것을 포장하는 남자들은 지루해졌고 말로만 애정을 표현하는 남자들에게는 덜 감동받기 시작했다. 네네, 그쪽 잘나시고 저를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제가 왜 당신을 좋아해야 하죠? 나한테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데요?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한 법이다. 친구 말마따나 혓바닥 긴 사람은 원래 언제나 좀 별로라는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