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꼬치는 정말 맛있었다
[날도추운데따뜻하게댕겨]
한 달 전, 요즘 버전의 ‘잘 자’로 전 썸남의 카톡이 왔다. 난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근황을 조금 주고받았고 이내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틴더에서 알게 됐는데, 누나 누나 하며 싹싹하게 구는 말투와 허옇고 멀쩡하게 생긴 외양에 설득되어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첫 만남에 그것도 카페에서 스킨십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남자는 처음 봤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을 슬쩍슬쩍 건드리는데 내가 손을 빼거나 싫은 티를 내지 않자 손을 감싸 쥐는 식으로 진도를 나가고 결국은 손목을 잡고 또 내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 쥔다거나 하는 식으로까지 스킨십을 이어나갔다. 나는 매 순간 애교 부리면서 장난치는 그가 귀여워서 그의 손재간을 내버려 둬 봤다.
그가 파라다이스 호텔된 관련 일을 해서 파라다이스 남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꼭 파라다이스를 제공해서 파라다이스 남인 것 같다며 친구들이 질색하곤 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P남이라고 부르겠다. P남과는 여러 번 데이트를 했다. 썸남이라고 부르기는 사실 애매한 것이 우리 둘 중 누구도 우리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틴더라는 앱의 특성이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것을 통해 만난 남자들 대부분 섹스는 원하되 애인을 원하는 것 같진 않았다. 아무튼 P남과는 데이트 궁합이 꽤 잘 맞았는데 내가 예약해 둔 호텔 근처에서 같이 밥을 먹고 그가 식사를 계산하고, 올라가서 섹스를 하면 시간과 돈의 배분이 딱 맞았다.
인상 깊은 데이트가 있다면 가보고 싶은 닭구이 요리점이 있어 서면까지 나갔던 적이 있다. 식당도 예약을 미리 해뒀고 식당과 가까운 호텔도 예약을 해뒀으니 정말 완벽한 데이트였다. 아니, 완벽했어야 했다. 호텔에 주차를 하고 식당까지 걸어갔다. 닭구이는 부위별로 두어 꼬치씩 구워서 나오는 요리였는데 문제는 꼬치 사이사이 우리 둘이 대화가 뚝뚝 끊기기 시작했다. 무엇을 주제로 꺼내봐도 정말 재미가 없었다. 나는 결국 그의 꿈이 뭐냐고까지 물어봤다. 나는 닭구이의 다음 부위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차리리 취하면 좋겠다, 아니면 이 식사가 얼른 끝나서 섹스하러 가는 게 낫겠다, 뭐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나마 그와는 섹스는 나쁘지 않았다. 크기도 괜찮았고 너무 빨리 끝내지도 너무 늦게 끝내지도 않았다. 입으로도 곧잘 내 것을 빨아주었고 능숙하게 자세를 바꿀 줄도 알았다. 애교 많은 성격답게 끝나고 나서 적당히 앵겨 붙어 기분 좋은 말을 늘어놓을 줄도 알았다. 모르는 것에 대해 잘난 척하지도 않았고 취향이나 신념도 내비치지 않았다.
정말로, 이 정도로 괜찮은 섹스 파트너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 나는 3번 정도 만난 이 남자와의 섹스에 정말 만족했고, 그래, 밥 먹을 때 지루한 정도야 밥을 빨리 먹으면 되지, 하고 좀 더 로맨틱한 로망에 그와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때는 여름이었기 때문에 나는 프라이빗 풀장이 있는 펜션에 너무 가고 싶었고 또 거기서 섹스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도 갖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거제나 남해는 꽤 멀고 풀빌라는 가격이 꽤 비싸다는 것이었다. 여행 이야기부터 삐끗거리기 시작한 우리는 한바탕 싸운 끝에 다시 만나지 않기로 합의했다. 어쩌겠는가, 잠자코 집 근처에서 술이나 먹고 섹스나 하기엔 너무 지루했는걸.
그런 그에게서 몇 달 만에 문자가 온 거다. 잘 지내냐고. 적당히 잘 지낸다고 하기가 싫어서 사실대로 나는 코로나에 걸렸었고 이래저래 잘 지내진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며칠 전에 또 [새해복많이받아누나]라고 카톡이 왔다.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 섹스할 여자가 그렇게 없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