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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Jan 02. 2023

J와 매운 오징어 볶음

못 먹던 걸 먹게 된 것처럼 많은 것이 변했던 나의 20대

J와는 4년을 만났는데도 그 아이에 대한 음식을 생각하면 석촌 호수 근처의 매운 오징어 볶음이 또렷하게 생각났다. 4년 간 먹은 음식이 그렇게 많을 텐데, 그게 정말로 그렇게 좋았냐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물어도 답은 같았다. 나는 J를 떠올리면 매운 오징어 볶음이 생각이 났다. 그건 아마 내가 원래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다가 먹을 수 있게 된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매운 걸 잘 못 먹던 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받으면 매운 음식을 먹는 게 신기하고 부러웠다. 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매운 건 통각일 뿐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느 날 J와 함께 큰 마음먹고 집 근처의 오징어 볶음을 먹으러 갔다. 그 가게가 J가 가족과 종종 가곤 했던 유명한 맛집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오징어 볶음은 정말 매웠다. 오징어 볶음 한 입에 물김치 한 모금, 오징어 볶음 한 입에 맥주 반 잔, 오징어 볶음 한 입에 계란말이 한 입을 베어 물어 가며 먹었다. 땀이 뻘뻘 났다. 한 겨울이었는데 춥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신 오지 않겠다 했다. 그런데 두세 달 뒤에 그 매콤 달콤한 맛이 다시 생각이 났다. 나는 J에게 또 그 집에 가자고 했다. 괜찮겠냐는 그의 질문에 근데 먹고 싶은데 어떡하냐고 반문했다. 나는 또 오징어 볶음 한 입에 물김치와 맥주를 번갈아 가며 배를 불리었지만 그래도 서서히 왜 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알게 되었다. 매운맛이 고통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못 먹던 걸 먹게 된 것처럼 많은 것이 변했던 나의 20대 초반에서 후반까지를 함께 한 J는 내겐 참 소중한 사람이다. 고시 공부한다고 설쳤던 1년도 함께 견뎌주었고, 해외 연수가 잡혔는데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았을 땐 나 대신 이사도 대신해준 적도 있다. 내가 고향인 부산에 내려갈 때면 항상 서울역에 데려다주곤 했었어서, J와 헤어진 뒤 한동안 서울역에 혼자 가는 것이 너무 낯설어 그만 울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4년은 그런 힘이 있었다.     


그는 평안하고 따뜻했다. 20대의 나는 불안과 불만에 시달리던 아이였기 때문에 지금보다 짜증과 화가 많았는데 J는 나의 짜증을 잘 받아넘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운전하다가 조수석에 있는 J에게 짜증을 바락 냈는데 J는 그 감정을 되받아치지 않고 차분히 대답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멋쩍게 다시 운전을 하는데 창밖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처음으로 연애하면서 행복한 게 이런 느낌이구나,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 순간을 지금까지도 기억한다. 아마 이 순간의 기억은 그다음 연애와 그 다음다음 연애들뿐 아니라, 내 자존감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는 평이하고 지루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재밌었다’, ‘그저 그랬다’, ‘별로였다’는 세 가지 평 중 하나밖에 할 줄 모르는 단순한 종류의 인간이었는데 나는 사회생활을 해나갈수록 인문학적이랄까, 철학적이랄까, 아무튼 공대에선 누리지 못했던 다양한 종류의 주제의 대화가 고파오던 시기였다. 나는 답답함이 쌓여갔지만 대화는 친구와 함께 하고 인생은 J와 함께 하자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고 꾸역꾸역 관계를 유지해 갔다.      


답답함은 또 있었다. 우리는 섹스도 평범했다. 미용실에서 꼭 챙겨보던 ‘코즈모폴리턴’에 의하면 정상적인 커플의 섹스 횟수보다 우리는 훨씬 못했다. 나는 그런 횟수에 신경이 쓰여서 한 달에 한 번은 그를 유혹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는데, 그렇다, 내가 한 달에 한 번 섹스를 할 정도로 우리는 섹스 생활에 있어서 즐거움이 별로 없었다. 가끔 내가 입으로 해달라고 요구하면 그가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그조차도 미안할 지경이었으니까.      


가끔 그와 역경과 시련을 딛고 결혼에 성공했다면 우린 잘 살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를 낳고, 주말엔 교회를 가고, 섹스는 거의 하지 않지만 부족한 건 거의 없으니 나는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며, 그렇게 적당히 살아가겠다. 하지만 언젠가 욕구불만에 싸여 헬스장 트레이너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헤어진 게 너무 아파서 그 뒤로 한 번도 그 아이를 보지 못했는데 언젠가 누군가 친구의 결혼식에서 J를 만나게 된다면 이거 하나 물어보고 싶다.      


내 생일에 결혼한 J야, 혹시 결혼기념일에 가끔 내 생각은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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