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단골 바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함께 굴과 함께 피트 위스키들을 마시는 자리를 가졌다. 한 달 전쯤 친구와 바에 갔을 때 옆자리 사람들과 친해져서는 한 달 뒤 6시에 다시 이 바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은 것이다. MBTI로 치면 극강의 E가 할 법한 짓이 아닐 수 없는데, 굴과 피트 위스키를 함께 마셔보고 싶은데 굴을 싸와서 혼자 먹기도 그렇고 피트 위스키를 정말 좋아하는 편도 아니니까 병째 집에서 먹을 수도 없고 그러니까 여럿이서 다 같이 먹어 보자는 게 기본 아이디어였다. 누군가가 위스키를 한 병 가져오고 굴은 집이 가까운 내가 사 오기로 했다. 바 사장님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사실 굴에 피트 위스키를 마시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그 아이가 생각나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에게 이 조합이 맛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 아니다, 아예 위스키에 피트 종류가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바로 그 아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드벡이 맛있다는 느낌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피트 위스키 초보자이기 때문에 당시 그 아이와 남해로 여행 가서 처음으로 굴에 피트 위스키를 마실 때만 해도 위스키가 너무 세서 나에게 맞지 않는 술이라고 생각했다.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둘이서 먹을 거면서 남해 전통 시장에 가서 껍질 단단한 굴을 망 채로 사 왔으니까. 껍질 몇 개 까는 것만도 힘이 드는 데다 생전 처음 마셔보는 피트 위스키에서는 병원 약 냄새가 펄펄 나지, 나는 대체 왜 굴에 위스키가 잘 어울린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제대로 못하고 희미하게 웃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와는 페이스북의 오랜 친구였는데 우연찮게 만났더니 곱슬머리인 단발이 잘 어울릴 만큼 얼굴이 꽤 샤프하게 잘생겨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서 흰 터틀넥 니트가 잘 어울렸는데 소매 사이로 삐져나오는 긴 손가락도 내가 참 좋아했다. 그는 페미니즘 책도 나보다 더 많이 읽었을 만큼 성인지 감수성도 풍부했고 내 글도 많이 읽고 기억하고 좋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큰 결격 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에 대해 좋아했던 건 다양한 경험에서 오는 풍부한 취향이었다. 굴에 피트 위스키를 좋아한다던가, 파인 레스토랑을 경험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던가, 하는. 그는 위스키뿐만 아니라 칵테일도 잘 알아서 나는 바에서 그가 추천해주는 술을 마시는 것을 진심으로 즐겼다. 장거리 연애였기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단정하고 깔끔한 숙소의 소중함도 이해했고, 다니고자 하는 전시나 상점의 취향도 크게 맞출 필요가 없었다.
한 가지 단점,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사이에 가장 큰 균열을 일으켰고 영원한 이별을 가져온 큰 단점은 바로 그가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공 공부를 포기하고 예술을 시작하느라고 부모님의 전폭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용돈을 아껴서 나와 데이트하는데 돈을 썼고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인생을 건 그를 이해하고 응원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보다 내가 돈을 더 많이 쓰는 것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한창 사랑에 빠졌을 때는 이대로 결혼까지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란 사람은 앞뒤를 재지 않지 때문에 돈이 우리 사이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가 생계유지에 대한 걱정을 평생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는 우리의 균열은 예상치 못했다.
당시는 코로나 판데믹 초기 시절이었다. 카페 사장인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카페를 닫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재난 문자로 동네에 코로나 카페로 찍힐 텐데 그렇게 되면 몇 달간 내가 받을 매출 타격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나는 그에게 나와의 데이트 하루 이틀 전에는 친구를 안 만나는 식으로 친구들 만나는 것도 조심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지나치게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생계가 내 코 앞에 달린 위태로움의 감각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코로나는 나의 현실과 생계에 대한 위협이었지만 그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카페를 만드는 데 들인 퇴직금의 무게와 다달이 빠져나가는 신용카드 명세서의 길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가장 기본적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경제적 감각이 배제된 그를 나는 이따금 애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생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도 없었다. 30년이 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이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책임져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이따금 바에 가서 마신다는 위스키와 칵테일의 취향이 확고하게 자리 잡는 것까지도 그는 부모님의 용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의 용돈으로 만들어진 그의 취향에 반했던 터라 그의 여유로움과 나태함을 마냥 탓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 남자 친구라는 사람이 나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현실 감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뭐랄까 견딜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게 견딜 수 없어 내가 내뱉었던 따끔한 말들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고 했다. 우리가 연인으로서 헤어진 건 다른 이유였지만 친구로서도 헤어진 건 이것 때문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진심으로 그 아이의 어떤 면을 깔보고 경멸했다는 걸 떠올렸고 그런 진심이 담긴 말들은 오랜 시간 동안 타인을 상처 준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돈은 내가 벌면 되지, 하고 평균적인 잣대를 저버리는 식으로 나 스스로가 다양성을 지향하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옆에 기본적인 감각은 공유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너무 어린 남자는 안 돼, 너무 돈을 못 벌어도 안돼, 불우한 가정 형편도 어째 좀 불안한데, 이런 꼬리표가 늘어나는 이유다. 소윤 씨 눈이 너무 높아서 솔로인 거 아니에요 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인데 글쎄, 위험을 지양하는 게 눈이 높은 거라면 혼자 살 수밖에 없지 뭐. 이제 굴에 피트 위스키가 맛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괜찮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나에겐 직구까지 한 훈제 굴 12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