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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Apr 18. 2024

뭐 먹고 살지?

자영업자라면 공감하는 글


지난 주말, 프랑스어 학원에서 알게 된 동생 하나가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술집을 차리고 싶다고 하길래 나는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반대를 했다. 자영업자, 특히 요식업은 함부로 시작하는 거 아니다, 자영업은 월급의 2배의 수익을 내어도 세금 내고 뭣 하면 고만고만하다, 꼬박꼬박 월급 받는 게 세상에서 제일 마음 편한 일이다... 내가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어째 그의 귀에 가닿을 것 같지가 않았던 건 그가 자영업을 하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하는 일에 비해서 200만 원은 너무 작은 것 같아요. 무슨 일을 해도 이만큼은 벌지 않을까 싶다니까요.”


너무 낯익은 하소연이었다. 정확히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 가졌던 마음이었다. 그 200만 원 벌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의 마음을 돌릴 만한 언어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아서 입을 닫았다. 그저 하루 날 잡고 내가 좋아하는 술집들을 몇 군데 투어 시켜주겠다, 사장님 붙들고 인터뷰라도 시켜주겠다, 진짜 꼭 연락하라는 신신당부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건물에 있는 회사에 4년을 다녔다. 심지어 나는 돈도 훨씬 많이 받고 있었다. 300만 원이 넘는 월급 플러스 100만 원은 더 쓸 수 있는 법인카드가 있었고 분기별로 보너스도 짭짤했다. 물가 비싸다는 코엑스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먹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따금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도 질러 버리고 여행 가고 싶으면 바로 비행기를 끊었다. 돈이 좀 모자란다 싶으면 은행이 있었다. 온 세상이 더 좋은 신용카드를 권하고 더 많은 대출을 해주고 싶어 줄을 선 것 같았다. 은행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다니는 회사를 본다는 것, 아니 은행뿐만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내가 아니라 내가 소속된 곳만을 본다는 사실은 회사를 그만두고야 알게 되었다.


그때라도 다른 회사에 경력직으로 구직을 해볼 걸 그랬나. 내가 일 하나는 잘했는데.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서 카페를 차렸을 때 처음에는 할 일도 손님도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서서히 후회가 됐다. 회사를 계속 다닐 걸 그랬다. 돈 벌기 정말 힘들구나,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실제로 카페 2년 차 쯤 헤드헌터의 연락으로 경력직 지원을 하고 인터뷰까지 봤지만 4년이라는 경력 단절이 너무 크다는 대답을 둘러 둘러 들었다.


전회사는 돈을 많이 줬지만 그만큼 일이 많았다. 회사에서 빵빵한 스펙의 노트북을 쥐어준다는 건 어디서든 일을 하라는 뜻이다. 밥 먹듯이 하는 게 야근이어서 저녁 9시에 집에 가는 사람에게 일찍 간다고 놀리곤 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오늘 좀 몸이 안 좋아서, 핑계를 대곤 했다. 무능력하고 부지런한 상사를 만났을 때는 자정이 넘도록 회의를 한 적도 있었다. 매주, 매달, 매 분기 실적 회의를 거치며 받는 스트레스도 장난이 아니었다. 내 직속 선배 하나는 20명 정도가 모여서 회의를 하던 도중에 머리부터 쓰러졌다. 바로 옆에 서 있던 나는 선배가 떨어진 볼펜 따위를 줍느라 고개를 숙인 줄 알았는데, 선배가 다시 일어나질 않는다는 걸 수 분 뒤에 알았다. 회의를 멈추고 119를 불렀다. 선배는 서울대를 나오고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큰 병은 아닌 단순한 과로라고 했지만 선배는 한 달 뒤에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나는 그 선배를 조금은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게 그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원하는 만큼 일을 다 잘 해내려고 하면 내가 견딜 수가 없을 거라는 걸 나는 2년 차쯤 깨달았다. 욕먹을 건 욕먹고, 그건 담아두지 말고, 할 만큼만 하고, 퇴근하면 나는 자유다. 내 멋대로 세운 기준은 회사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나는 그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은 어른처럼 굴었다. 실제로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진짜 실전에 들어온 지 막 2년 정도 된 꼬꼬마일 뿐이었다. 고객사나 협력사가 내게 굽신거리는 건 내가 속한 회사 이름 때문이라는 걸 깜박한 꼬마는 서서히 회사 생활 10년, 20년을 한 사람들이 우습기 시작했다. 평생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해야 한다니 앞이 깜깜했다. 나는 내가 주변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일을 할 바에야 ‘내 일’을 하자. 내가 지금처럼만 내 일을 하면 돈도 훨씬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뒤돌아보면 틀린 것 투성이었다. 창업을 하려면 돈이 많거나 투자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돈도 없고 인맥도 없었다. 내 회사를 차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열정과 노력이 필요한지 간과했다. 트렌드를 읽고 대중의 마음을 사는 일을 하려고 했으면서 정작 나는 게으르고 대중들을 무시했다. 그런 주제에 내 마음을 감추지도 않고 스타트업 세미나 같은 델 다녔으니 회사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몇 개월 뒤 권고 사직서를 받았다.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반년 이상 회사를 때려치울 거라 노래 부르던 때라 다들 차라리 부럽다고 했고 나도 내심 좋았다. 위로금과 퇴직금 보태서 뭐든 해봐야지 하는 자신만 있었다. 그렇게 만 4년을 채우고 나는 회사를 나왔다.


그 뒤 집 근처 전통주 술집에서 알바도 해보고, 길거리에서 직접 만든 샹그리아를 팔아도 보고, 에어비앤비도 해보고, 스타트업을 창업한답시고 영상 같은 것도 찍어 봤지만 전부 얼마 못 하고 그만뒀다. 카페나 하나 차리자 싶다가도 주변 단골 카페 사장님들을 보면 엄두가 안 났다. 돈도 좀 있겠다 느긋하게 좋아하던 글이나 열심히 써서 작가가 되자고 마음먹었지만 역시나 ‘열심히’ 써지지 않았다. 내 생에 처음으로 시간도 돈도 많은 날들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다. 마음 맞는 친구와 술은 언제나 주변에 있었고, 남자도 그랬다. 자고 싶은 사람을 꼬시는 건 무슨 게임과도 같았다. 2차로는 우리 집에 갈래? 남자들은 대개 거절하지 않았고 뒤늦게 다음날 거절당하더라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일 년쯤 놀았을까, 뒤늦게 내가 회사를 그만둔 걸 알게 된 엄마가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부모님이 하는 부동산을 일 층으로 옮기는 차에 공간을 좀 잘라줄 테니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해보라는 거였다. 자리도 좋고 월세도 저렴했다. 부산이라는 게 걸렸지만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경험 삼아 해보자, 했다. 그 경험이 5천만 원 짜리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결국 퇴직금 등에서 남은 돈을 다 날려먹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패착들은 ‘안 할 이유가 없어서 하는’ 마음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만두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였다. 회사에서 소진되느니 온전한 내 손으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커피를 좋아하긴 했지만 카페에서 일해본 경력이 있는 것도 공간을 예쁘게 가꾸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나는 1:1 과외로 돈을 내가며 커피를 배우고 컨설팅을 받았다. 두어 달 카페 오픈 준비를 하고 오래도록 살겠다며 남산 중턱에 얻은 넓은 집에 들여놨던 소파며 식탁들을 처분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화장대 하나만은 꼭 가져가겠다며 고집을 부려 서울에서 부산까지 포장이사를 했다. 단지 처음 돈을 주고 산 가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포장이사를 하다니, 지금도 화장대의 놀라운 수납공간을 유용하게 쓰고 있기는 하나 가끔 실소가 나온다.


요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식당이나 술집을 차린 사람도 힘들어하는 게 한국 요식업의 현실이라는 말을 동생에게 했다. 나는 창업이든 카페든 안 할 이유가 없다는 낭만적인 이유로, 냉정하게 계산해보지 않고 내 일을 시작한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럼 언니, 뭘 해야 해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걸 찾아보라는 게 창업하고 싶다는 애 앞에서 할 만한 충고는 아니지 않은가. “언니처럼 차라리 부동산이 나을까요?” 나는 부모님이 마침 접고 싶어 하는 부동산을 맡게 되어 부모님의 손님과 주변 인맥이 다 갖추어진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텃세 심한 부동산을 20대 후반 첫 창업 아이템으로 삼으라고 할 순 없었다. 새삼 내가 부모님 덕을 대단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말 끝을 흐렸다.


뭐 먹고 살지, 무수히 하는 고민인데 나는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일로 타협했다. 그토록 싫던 부모님의 도움도 받고, 친구들이 가득한 서울에서 떠나오면서까지 그저 가장 덜 힘들게 돈을 적당히 벌 수 있는 일로 타협했다. 그렇게 버는 돈으로 책을 사고 듣고 싶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남는 시간에 글을 쓰고 술을 마신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게 부족한 건 열정과 노력이었는지도. 매번 모든 답안지를 검토하고 내린 최종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서면 부족한 점에 계속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때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그때 카페를 안 했어야 했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묻는다. 본인의 일을 좋아하세요? 하하, 제가 생각하기에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요. 어머, 그러세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참 멋있는 것 같아요. 아 저는 전자에요. 제 일이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좋아서 하는 일도 아니죠, 뭐. 좋아서 하는 일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는 영역의 일까지 해야 한다는 걸 이젠 좀 알고, 돈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마냥 싫은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계속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는 건 아직도 내 일을 선택해 온 과정에 확신이 들지 않아서다. 나는 열정도 노력도 부족하다며 쿨한 척 하지만 사실 내가 무엇보다 원하는 건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버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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