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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Aug 31. 2017

나는 편견으로 가득한 인간이다

세상이 이미 바뀌었다는 말로 겁을 주는 수밖에

나는 편견으로 가득한 인간이다. 아무리 인종이나 피부색이 범죄율과 상관없다는 지표를 눈으로 보아도, 흑인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뉴욕 밤거리,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득한 대림역 새벽 골목길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이태원 어두운 골목길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화장을 짙게 한 덩치 큰 여자분들을 마주치는 건 또 얼마나 싫고 무서운지. 호감 가던 남자가 아무나 가는 지방대를 나온 것을 알고 실망하기도 했고, 뚱뚱한 사람을 보면 자기관리를 못한 것만 같기도 해서 내가 효과를 봤던 다이어트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2차선에서 두 차선을 휘 가로질러 유턴하는 차나 위험하게 무턱대고 끼어들기하는 차들을 보면 다 김여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어느 정도 이상의 편견을 가지면서 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과는 별개로 나에게 길거리에서 추파를 날리는 뉴요커 중 대부분은 흑인이었고, 뉴스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잔인한 범죄가 심심찮게 보도되고, 실제로 내가 마주친 거리의 마구잡이 운전자들은 남자보단 여자들이 많았다. 


편견을 가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아주 별개의 일이다. 


이태원 밤거리에서 마주치는 성소수자들이 낯설고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에게 반대한다는 것은, 내 편견을 혐오로 드러내는 건 잘못되었다. 피부색과 그 인간의 존엄 자체는 아무 상관이 없다. 모든 인간은 자유로워야 하고,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그것이 인권이다. 겉모습이나 학벌을 가지고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인간의 내면의 반짝임은 그렇게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속의 순간적인 판단이 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인지, 실제 사실에 근거하더라도, 표현하는 것이 합당한 지 일일이 심사숙고하여야 한다.


몇 달 전, 누군가가 식당에서 옆 테이블의 대화를 옮겨주었는데, 머릿속에 불이 들어오는 듯했다. 나이 든 중년 남성이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이런 건 남자들이 놓아야 한다며, 수저 세팅을 직접 하더란다. 여자와 남자가 할 일이 정해져 있다 믿고, 대선 후보의 강간 모의가 추억팔이 정도 되는 어르신이, 그런 어르신이 그렇게 성장하신 과정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을 모두 이해시킬 수는 없다. 한두 번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라도 그래도 역시 아이는 여자가 키워야지, 하실 게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이런 말 하면 안 됩니다, 하고 주입식 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떠들어야 한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의 과격한 논쟁과 어휘를 존중한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더러워서, 라며 말조심을 하면서, 아주 조금씩 이 세상은 변해간다. 세상이 이미 바뀌었다는 말로 겁을 주는 수밖에,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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