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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Aug 30. 2017

우리 가족

우리는 이제 서로 건들리지 않아야 할 부분을 안다.

나는 우리 가족들과 노는 게 진짜 재밌다. 아빠는 동백섬 아가씨 노래를 몇 번이나 간드러지게 불러주시고,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모델인 척 나무 옆에 기대선다. 동생과 나는 엄마 아빠 무릎에 누워서 티브이 채널 쟁탈전을 벌이다가, 방에 들어와서는 두런두런 남자 얘기며 인생 얘기를 나누다가 새벽녘이 되어야 잠이 든다. 보통 맛집에 가면 그렇게 입맛이 까다로울 수 없는 엄마 아빠는 해외로 여행을 가면 정말로 우리말을 잘 듣는다. 길을 헤매도, 열심히 찾아간 레스토랑이 자리가 없어도 짜증내지 않고 우리를 열심히 따라와 주고 즐거워하신다. 저녁과 반주를 함께 하면서는 대체 이렇게 우리끼리 웃고 떠들 거면 외국에 나와있을 필요가 없다 싶을 정도로 웃고 떠든다.


누군가 우리 가족이 참 사이좋아 보인다고 부러워하면, 나는 항상 "그만큼 많이 싸운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우리는 싸우면 끝장을 본다. (전전전...) 남자 친구의 종교로 싸우기 시작했을 때, 언젠간 끝장을 봐야 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새벽 4시가 되어 결론이 날 때까지 엉엉 울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그래서 우리 가족이 사이좋은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많이 싸워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나 절대 바꾸지 않을 부분, 이라고 선을 긋는 작업을 무진장 많이 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서로 건들리지 않아야 할 부분을 안다. 


아직도 박근혜를 가여워하는 엄마의 정치 성향은 아무리 맘에 들지 않아도 내가 바꿀 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아빠와 나는 엄마와 함께 뉴스를 볼 때는 아무 말하지 않고 조용히 뉴스만 본다. 엄마가 모임을 나가면 그제야 썰전을 같이 보면서 정치 얘기를 신나게 한다. 아빠는 채혈이 만병통치를 할 수 있다고 믿으신다. 나는 아빠가 자꾸 신체의 피를 뽑아대는 게 맘에 들지 않지만, 실제로 어깨가 괜찮아졌다고 하는 아빠를 걱정스레 한번 쳐다보고 만다. 몇 번이나 싸워서 한 달에 한번 이상 채혈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난 뒤로는 더 이상 싫은 소리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옛날 얘기만 하면 잘 우는 엄마를 만나서, KTX 노조들의 파업이 정당한 건지 토론할 수 있는 아빠라서 좋다. 엄마에게는 좀 더 감정적으로, 아빠와는 좀 더 이성적으로 싸우게 되지만 우리는 점차 합의점을 찾아간다. 서로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존중해주고, 어느 정도 무시하고, 배워나간다. 가까울수록 같이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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