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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Aug 14. 2017

둘이 하나가 된다는 거짓말

부부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둘은 가장 행복할 것이다.

같이 술을 먹던 오빠가 한숨을 쉬었다. 사귀는 여자 친구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며, 은근 결혼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내비친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는 그녀를 정말 사랑하냐고 물었다. 오빠는 그녀가 본인과 정말 결혼을 하고 싶은 건지 일을 그만두기 위해 결혼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속이 꽉 막혔다. 괜스레 그런 식으론 결혼하지 말라고 언성을 높였다가 곧 관두었다.  


티브이에서는 아내가 청소기를 돌리는 동안 소파에 앉아 두 발을 들어주는 남편이 나왔다. 분개하는 나에게 아빠가 아내가 전업주부를 한다면 집안일은 아내가 하는 게 맞지 않냐고 조심스레 반문했다. 한 사람이 그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가사 노동이 얼마나 많은지, 그걸 단순히 바깥일, 집안일로 나누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또 육아를 전담하기로 하고 그녀가 포기한 인생에 대해 떠들다가 나는 또 곧 입을 다물었다. 


결혼의 많은 불행은 오롯이 나의 책임인 나의 인생을 남에게 떠넘기려 할 때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사회에서 눈치 보며 돈 벌기 싫으니 결혼이나 하자는 생각이 이번 달 월급에 대한 쪼잔한 잔소리로 변한다. 엄마의 역할을 또 다른 여자가 해주길 바라는 안일한 귀찮음이 자기 밥상 하나 차리지 못하는 허리 굽은 노인들을 만들어낸다.


부부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둘은 가장 행복할 것이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사람이 내 '일'을 해주는 사람은 아니니까. 언제든 혼자인 내가 자신 있을 만큼의 경제적 조건을 갖춘 상태, 서로 각자가 책임지는 집안일이 분명한 상태는 행복한 결혼의 필요조건이다. 그게 꼭 돈이 억수로 많다는 이효리가 아니더라도, 하루 종일 혼자서도 잘만 놀면서도 효리랑 노는 게 제일 재밌다는 이상순이 아니더라도, 우리도 가능하다면, 괜찮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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