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고작 손가락이 다친 것 때문에 속이 상한다.
커피를 매일 내리다 보니 손톱 사이에 자꾸 커피 가루가 껴서 꼭 때가 낀 것 같았다. 카페 일 시작한 지 고작 몇 주나 지났다고 자꾸 손이 거칠어졌다. 한동안 안 받았던 네일 아트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치 중 하나라 돈은 아깝지 않았다. 며칠 전, 또 네일 아트를 받으러 갔는데 담당 언니가 큐티클을 제거하느라 푸셔(이름을 방금 찾아보았다)로 팍팍팍 내 손톱을 문질러댔다. 평소보다 좀 거친데, 하는 순간 엄청난 고통이 손톱 안에서 밀려 올라왔다. 피는 금방 나지 않았다. 괜찮다 싶더니 진한 아픔이 손톱 안에 고였다. 몸살 기운이 있어 몸도 아프고 졸렸는데 아프기까지 해서 자꾸 화가 났다. 심지어 담당 언니는 초보도 아니고 네일숍 원장이었다. 넌 왜 원장인데, 자꾸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실수한 거니까, 생각하고 좋은 목소리로 연고를 발라달라고 했다. 저녁쯤에 5만 얼마가 차감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다음날, 토요일 카페에 출근해보니 하필 다친 손톱은 포터 필터를 닦을 때마다 닿는 부분이었다. 안 쪽이 조금 곪았는지 만질 수도 없게 아팠다. 아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날 비웃었다. 어제 삼켜두었던 화가 다시 올라와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이상하게도 짜증은 서울말로 나왔다. 나도 일하는 사람인데, 손가락이 아파서 어쩌라는 거냐, 말 그대로 내가 좀 예쁘게 다니려고 한 짓 때문에 이렇게 아파야 되냐, 속상하고 짜증 난다고 화풀이를 했다. 돈을 내놓으라고 할까, 다신 안 갈 거니까 잔액을 환불해달라고 할까 고민했지만 대책은 없었다. 그 사람이 거듭 사과하고서야 내 목소리는 좀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손가락은 자꾸 아팠다.
마감할 시간이 다가올 때쯤, 낯익은 얼굴이 창문에 비치었다. 원장이 직접 무슨 상자를 하나 가지고 찾아왔다. 너무 미안하다며, 잔액은 원하는 데로 다 처리해드릴 테니 우선 연고 바르라며, 약과 손 케어할 것들을 좀 챙겨 왔다며 상자를 내밀었다. 나는 다친 손가락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이건 아주 작은 사고이고 저 사람은 할 도리 이상을 하면서 나에게 사과를 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손가락이 아팠고 그건 정말 속상한 일이었다. 억지로 웃음을 지어내서 그 사람을 돌려보냈지만 그 상자는 왠지 꼴도 보기 싫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받을 준비가 나는 아직 되어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 쪼잔함이 제일 속상했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돼서야 그 상자를 슬쩍 열어봤지만 물건들을 제대로 살펴보진 않았다. 내 마음이 딱 그래서 그 상자를 카페 바깥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엄마가 왜 햇빛에다 이걸 내놨냐며 잔소리를 해대서 나는 또 짜증이 났다. 내가 알아서 할게, 거기 그냥 좀 놔두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조금 있다 가서 엄마께는 사과를 했지만 엄마는 아직도 화가 나 있다.
감정 과잉 일지 모른다. 회사 다닐 때는 아무리 개저씨들이 외모 품평을 하고 고객들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오고 협력사가 대놓고 뻥을 치고 날 무시해도, 굳이 괜찮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오래가지도 않았다. 일일이 내 맘에 귀를 기울이고 화를 내기에 사회는 엉망이었고 일은 너무 많았고 내 하루는 짧았기 때문이다. 감정은 그냥 흘러 보냈고 좋지 않은 하루가 끝나면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잠을 잤다.
지금의 나는 고작 손가락이 다친 것 때문에 속이 상한다. 네일 아트를 하러 가서 다친 바보 같은 내 손가락이 아파서 엄마에게도 짜증을 냈다. 남에게는 또 며칠 뒤 미래의 나에게도 이 일은 분명 아무것도 아닐 테지만 지금의 나에게 이 고통스러운 감정은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냥 손가락이 얼른 나으면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내 쪼잔함은 잉여로움의 산물인 걸까, 그래서 이 정도는 무시할 정도로 바빠야 하는 걸까. 바쁘다고 흘려보내는 감정들은 과연 다 괜찮은 걸까. 내가 그토록 원한다고 생각하는 미래의 삶은 정말로 내게 행복을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