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병과 늙음과 죽음과 불행

우리가 아파야 하는 이유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by 김소윤

쉽고 가볍게 일반화시키는 사람이 있었다. 부산사람들은 원래 먹는 거에 예민하다, 식당에선 꼭 큰소리로 따져야 자기 걸 챙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부산사람인데, 난 안 그래요. 얼마 전에 김치에서는 머리카락이 나오고 돼지국밥에선 수세미 한 줄기가 나온 식당에서도 말 한마디 따지지 않고 나왔단 말이에요. 하지만 나는 미처 그 사람이 틀렸다는 말마저 하지 못하고 곤란한 표정만을 소심하게 지었다.


처음에는 '원래 그래요.'라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났다. 저 사람은 저렇게 이것저것 혼자 결정해버리는 걸까. 자신의 세계는 하나도 바꾸지 않겠다는 고집과 이유를 생각조차 해보지 않겠다는 단순함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원래'라는 단어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저 사람의 단순한 세계는, 그래서 그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사람과 상황을 설명해버리는 단순함은 그 안에 단단하고 균열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복잡함과 다양성이 무시된 그 작은 세상에서, 그는 마치 혼자 사는 집처럼 편안할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생각하느라 고민하고 망설이는 사람들에 비해 그는 얼마나 이 세상이 간단하고 쉽겠는가 말이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가 암이 재발해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정말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오래오래 죽지도 않고 잘만 살아가는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내 친구가 죽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고 이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마가 내 손을 꼭 잡고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암은 스트레스에서 오는 병 이래. 착한 사람일수록 남 생각을 너무 많이 해주느라고, 그래서 아픈 건가 봐. 나쁜 사람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할 말 다 해가면서 살아서, 오래 사는 거 같아. 엄마도 너무 슬프네."


엄마가 말한 착한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과는 다르겠지만 엄마의 마음은 전달되었다. 외할머니도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큰외삼촌도 간암으로 투병하고 계신다. 엄마는 문득 그들을 떠올리셨을까.


의사들이 병의 원인을 스트레스나 운동부족으로 돌리는 건 결국 그들도 이유를 몰라서라고 생각했었다. 얼마 전에 만난 의대를 다니는 한 친구가 사실 병에 걸리는 것은 확률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담배 피우지 않는 사람이 폐암에 걸리고 술 한 방울 먹지 않는 사람이 간암에 걸리는 이유가 유전이나 스트레스라고 설명해 버리기엔 충분하지 않지 않은가. 확률이라는 말이 어쩌면 더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다.


큰외삼촌의 간암이 재발하고 얼마 후, 막내 외삼촌이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뇌압이 높아 소뇌를 압박한다는 설명을 듣고도 나는 '왜?'냐고 물었다. 왜인 줄 알아야 앞으로 조심할 것 아니야. 어른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네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래, 좀 적당히 마셔라, 라는 이야기를 했다. 술을 많이 먹어서 뇌압이 높아졌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실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유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의 이별에도 불행에도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이유를 알아야 불행을 받아들이고 또 앞으로 그것이 오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아파야 하는 이유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나의 불행에 오히려 이유가 없다면, 의외로 받아들이기 쉬울지도 모른다.


요즘 부쩍 아픈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픔과 병과 늙음과 죽음과 불행에 대해 생각한다. 이유를 찾는 버릇은 해결책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서지만 그 생각 역시 불행을 불러온다.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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