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도시락
딸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꼭 2주가 지났다. 아침에 7시 20분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중학교 때보다 1시간 일찍 집에서 나간다. 그러다 보니 아침을 거르는 게 당연해졌다. 처음 입학하는 날, 새벽에 일어나 새 밥에 국에 생선까지 구웠는데 겨우 한 입 먹고 나서서, 그나마도 가는 차 안에서 토를 했다고 했다. 이후로 억지로 아침을 권하지 않게 되었다.
초등과 중등 시절을 작은 학교에서 보내고 처음으로 겪게 되는 큰 학교 생활을 앞두고 아이가 꽤나 긴장했구나 싶으니까 혼자 눈물이 다 났다. 게다가 준비했던 학교에서 떨어지고 생각지도 않은 학교에 배정을 받아 아이나 나나 입학 전 겨울방학 동안 나락으로 떨어지는 마음을 추스르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맞은 고등학교 생활. 걱정과 달리 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한동안 서로 마음 편하게 웃어보지 못했는데, 친구들 선생님 얘기를 나누며 웃었다. 잘 적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우리 가족은 아침저녁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은 가족이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며 저녁 한 끼 같이 먹는 것도 드문드문 귀한 일상이 되었다. 맛있는 걸 먹으며 하루를 얘기하고, 시시한 농담을 하며, 크게 웃던 우리 부엌 풍경이 사라졌다. 점점 아이랑 부대끼는 시간이 없어지고 있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어제, 아이가 처음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학원을 가는 날이 아니면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온다고 하여 그러라고 했다. 어제는 아이가 밖에서 삼시 세끼를 다 먹은 날이다. 아이의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겠지. 집에서도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9시만 기다렸다. 종일 밖에서 고군분투하던 아이가 그래도 밝은 모습으로 귀가했다.
"저녁은 어떻게 했어? 뭐 먹었니?"
아이를 처음 본 나의 말이었다. 딸은 학교 근처 식당에서 닭곰탕을 먹었다며 맛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딸의 침대에 누워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정리하는 딸이 얘기하는 하루일과를 들었다. 같은 반 친구 누구는 피아노를 엄청 잘 친다며, 어떤 친구는 수학, 과학에 있어서는 넘사벽이라며, 그리고 누구와 누구 사이에 흐르는 핑크빛 기류까지 얘기하며 우리는 오랜만에 예전의 우리처럼 웃고 떠들었다.
아이의 방에서 나와 문을 닫으며 엄마가 된 나는 내 엄마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하는 언니와 나를 위해 꼭 따뜻한 밥을 지어 저녁도시락을 학교로 갖고 오던 엄마가 생각났다. 복날이면 뚝배기에 삼계탕을 끓여서 뜨끈한 국물이 식지 않게 해서 가지고 오던 엄마였다. 매사 욕심이 크지 않은 엄마였는데 유난히 저녁도시락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빼먹지 않았다. 내가 커서 살림을 해보니, 매일 도시락을 준비해서 가져다주는 게 정말 보통일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게 엄마는 고등학생 딸들을 위해 저녁밥에 진심을 다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고마운 줄도 몰랐다. 얄궂게도 알아야 할 것은 항상 뒤늦게 깨닫는다.
당시 야자하는 학생들 사이에는 식당에 한 달에 얼마씩 돈을 내고 저녁도시락을 먹는 월식이 유행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그걸 먹기 시작하자 나는 엄마의 도시락이 지겨워졌다. 엄마에게 에둘러 말하지 않고,
"나 친구들이랑 월식 먹을래. 엄마 내 도시락 안 싸도 돼."
엄마는 왜 그러냐고 묻지도 않았고, 그러려무나 하고는 도시락값을 내주었다. 사 먹는 도시락은 처음에는 반찬도 색달라보이고 맛있어 보였지만, 며칠 지나자 새로움은 금세 시들해졌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친구랑 도시락 하나를 같이 나눠 먹고, 나머지를 용돈으로 쓰는 잔꾀까지 부렸다. 그렇게 엄마가 지켜주던 소중한 저녁밥이 내 인생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 언니가 말했다.
"니가 엄마 도시락 안 먹는다고 해서 그때 엄마가 엄청 속상해했다. 나는 도대체 니가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자꾸 새로운 세상을 기웃대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의 품이 아닌 세상으로 나가서 이것저것 겪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는 친구가 먼저였다. 엄마는 그냥 엄마였다.
내가 그때 엄마처럼,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가 되고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는데, 이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아이가 그 작은 몸으로 맞서서 부딪히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시기가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잘 먹이는 것 밖에 없구나' 싶었다. 그러니 자꾸 '밥'에 애달파하게 되었다.
얄궂게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도 그랬구나'
자식이기만 했던 내가 부모가 되고, 자꾸 그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