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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Feb 23. 2022

명랑골프 10개월차, 골프가 재미있어졌다

예전에는 돈 많고 시간 많은 나이 든 사람이 하는 운동이 골프였다면,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나처럼 돈 많지 않은 사람들도 하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한다. 인스타에 검색만 해봐도 팔다리가 길고 예쁜 여자들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필드에 나가기도 하지만 친구들끼리 스크린골프도 많이 친다고 한다. 조카들 중에도 두 명이나 골프를 친다.  

내가 골프를 치기 시작한 건 남편과 함께 하는 취미생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침 아파트 내 커뮤니티센터에 골프연습장이 있어서 등록한 지 어언 10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레슨을 40회 받았고 일주일에 4~5일 정도는 꼭 가서 연습을 했는데, 정말 실력이 늘지 않았다(나는 뭐든지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운동은 더 그렇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도통 재미가 없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골프 클럽을 사지 않았다면 중간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클럽 산 돈이 아까워서 재미없어도 가서 연습했다. 잘하는 건 못해도 꾸준히 하는 건 자신 있는 나다. 

나만 이렇게 재미없다 하지,, 주변을 보면 정말 재미있게 골프 치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 배우기 시작했는데도, 잘 치지 못하는데도 재미있단다. 골프 얘기를 할 때면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떠오른다. 정말 재미있는 거다. 내 주변에도 나보다 늦게 골프를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에 6~7시간을 골프 연습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몸무게는 10킬로나 빠졌다는데, 그러고 보면 일단 운동을 오랜 시간 해야 살이 빠지나 보다. 

날마다 골프가 재미없다고 투덜대던 나도 이제 골프가 살짝 재미있어졌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첫째는 조금씩 공이 잘 맞기 시작했다는 거다.(골프 친 지 10개월 만에 말이다. 좀 울고 와야겠다.ㅠ) 그동안 계속 뒤땅만 쳤는데 이제는 제법 잘 맞을 때가 종종 있다. 40번 레슨을 받고 나서 유튜브 보면서 혼자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레슨을 그만두었는데, 레슨을 다시 시작한 것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 무작정 배웠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 안 상태에서 레슨을 다시 받으니 예전보다는 잘 알아듣고 몸도 말을 잘 듣는다. 셋째로,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거다. 예전에는 혼자 연습장 가서 연습만 하고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인사하고 대화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있다. 기질적으로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잠깐씩 대화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치는 것을 보는 게 더 재미있다. 

물론 재미있어졌다고 해서 잘 치게 되었다는 건 결코 아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 형편없는 실력이다. 7번 아이언으로 치는 거나 드라이버를 휘두르나 거리가 차이가 나지 않으니 말 다한 거다. 실제로 스크린골프장 가면 7번 아이언으로 80~90미터 나오는데, 드라이버로 치면 100~110이 나온다.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ㅠ

어떤 날은 너무 잘 쳐지는데, 또 어떤 날은 공이 잘 맞지 않고 거리가 많이 나가지도 않고 그런다(사실 오늘이 그랬다. 나 다시 도루묵인 건가,, 하고 좌절도 몇 번 했다. 분명 토요일에는 꽤 잘 쳤는데ㅠ). 공이 잘 나가는 날에는 '드디어 이제 나도 잘 치게 되나 보다.' 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폼도 영 엉망이라 괜한 짓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골프랑 나랑 밀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연애 때도 안 해본 밀땅을 골프 치면서 하고 있다. 헉.. 

아직 골프의 재미를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재미있어지고 있으니 그거면 된 게 아닌가 싶다. 골프든 공부든 일이든 일단 재미있어야 오래,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 그거면 된 거다. 살아갈수록 허용의 폭이 넓어지고 기준도 낮아지고 있는 내 자신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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