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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l 05. 2021

뼈때리는 한 줄 글쓰기


사실을 말하면, 나는 책을 잘 안 사는 편이다. 으레 출판계에서는 참고도서로 필요하기도 할뿐더러 업계 사람들이 서로서로 사주는 편인데, 나는 주로 도서관에 다닌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다니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은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다른 도서관에 있는 책은 상호대차 신청을 해서 읽는다. 지금은 <중쇄를 찍자>라는 10권짜리 만화책을 상호대차 신청을 해서 열심히 읽고 있다. 


소똥 냄새까지는 아니지만 오리가 아파트 단지로 놀러올 만큼 시골 냄새 풍기는 곳이라 걸어서 가는 거리에는 도서관이 없어서 번거롭기는 하다. 그나마 지하철역에 스마트도서관이 있어서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리다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빌려가지고 온다. 그렇게 빌린 책이 양희은 님이 쓴 <그러라 그래>다. 요즘 학원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읽고 있는데, 내용도 가볍고 책도 작아서 지하철에서 읽기에 딱 맞다. 


그러다 보니 서점에서 내가 구입하는 건 잡지 종류다. <컨셉진>이나 <페이퍼>, 재주상회에서 발행하는 <인> 정도다. 디자인이 예쁘거나 책 기획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다. 특히 <인>은 정말 애정하는 잡지다. 디자인도 일러스트도 너무 예쁜 데다 가격도 착하다. 


최근에 산 책은 <달러구트 꿈백화점>과 <문장 수집 생활>이다. <달러구트 꿈백화점>은 도서관에서 내가 읽기에는 예약자가 너무 많아서 구입했다. 그런데 3분의 2정도 읽은 지 6개월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다 못 읽고 있다. 재미의 포인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헤매다가 책을 다시 펼치지 못하고 있다. 


<문장 수집 생활>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너무 좋아서 샀다. 제목이나 카피 쓸 때 글이 막힐 때마다 한번씩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책의 저자 이유미 님은 편집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편집숍 29CM의 헤드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로 지냈다. 쇼핑몰에서 문구를 잘 쓰면 얼마나 잘 쓸까 싶지만, 29CM 들어가 보면 정말 헤드 문구가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분은 평소 소설을 즐겨 읽는데, 소설을 읽다가 좋은 문구가 있으면 그걸 꼭 기록해 놓았다가 카피를 쓸 때나 글을 쓸 때 적용한다. 상업적이고 실용적인 카피에 감성 뚝뚝 떨어지는 글이 합쳐지니 낯설고 새로운 카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처음에 부동산 중개소에서 보았을 때의 화장기 없는 오가사와라 씨와는 달리 출근용인지 오늘은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루주는 지워져 있어서 그 불균형에 약간 가슴이 설레었다. -구보 미스미 <밤의 팽창>


저자는 <밤의 팽창>이라는 책에서 필사한 내용을 갖고 다음과 같은 카피를 만들어냈다. 


그를 설레게 할 당신의 불균형


<문장 수집 생활>은 좋은 소설책의 문구를 읽고 필사하여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소개하는 책이다. 온전히 자신이 생각해 낸 글이 아니므로 평가절하하기에는 글들이 새롭고 신선하다.


카피나 제목을 뽑을 때의 고민을 덜어주기도 하지만, 이 책의 특이점은 본문 글씨가 '먹'이 아니라는 데 있다. 보라색(?)과 녹색(?) 계열 두 가지 색이 책 전체를 덮고 있다. 더구나 책의 형식도 기존의 책과는 다소 다르다. 뒤 표지는 새로운 책의 앞 표지가 되어 좋은 카피를 쓰는 기술 10가지가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의 저자가 쓴 또 다른 책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을 읽을 책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책 제목이나 카피 한 줄, 카드뉴스에 들어갈 글, 하물며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릴 제목을 잘 뽑아낸다는 건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읽는 사람이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 고심할 수밖에 없다. 많이 써본다고 잘 쓰게 되는 건 아닌 듯하다. 나의 경우는 카피라이팅 수업을 듣고 카피 관련 책을 찾아서 읽는 편이다. 


<문장 수집 생활>을 읽고 나서는 나 역시 책을 읽다가 좋은 문구가 나오면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가 다 읽은 다음 한꺼번에 정리를 해놓는다. 워낙 소설책을 즐겨 읽지는 않아서 이 책의 저자처럼 좋은 문구를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쏙 빼닮은 듯 표현해 놓은 글을 보면 반가워하며 정리해 놓는다. 이런 날이 쌓이고 쌓이면 나도 좋은 제목이나 카피를 술술 쓰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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