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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l 12. 2021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날, 나를 위로하는 책들

그런 날이 있다. 온몸이 물에 젖은 듯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는 날. 동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디 상자 하나 있으면 들어가서 나오고 싶지 않은 날 말이다. 특별히 마음 상할 일도 없는데 괜히 걱정되고 우울하고 마음이 불편한 날. 그런 날에는 평소와 다르게 바지런 떨고 싶지도 않고, 마냥 이불 속에서 꿈지럭거리게 된다. 

오늘 내 기분이 딱 그렇다. 이런 기분이 드는 날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하나 꺼내서 조목조목 따져봐야 한다. 며칠 전 바보 같은 일을 한 게 마음에 걸렸다. 한번에 해결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두 번 고생하게 생겼다. 바보 같은 내 자신을 자책했고, 시간도 없는데 그거 처리하려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또 하나는, 자신감 상실이다. 갑자기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이런 날에는 두 가지 해결 방법이 있다. 하나는, 상자는 없지만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그런 마음들이 머릿속에서 떨어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시기가 온다. 

다른 하나는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에너지 수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나에게는 책이 그런 역할을 해준다. <중쇄를 찍자>처럼 만화책을 읽으면 깔깔거리다가 우울한 기분을 잊어버리게 된다. 아니면 유병재 님의 <블랙코미디>도 추천한다. 정말 기발하고 유쾌해서 구겨졌던 마음까지 활짝 펴진다. 

 자기계발서를 읽기도 하는데, 자기계발서를 읽는 동안 배터리 충전 속도가 빨리진다. 내가 좋아하는 자기계발서로는 <신경끄기의 기술>이랑 <무기가 되는 스토리>가 있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 책들이라 우울한 기분에 빠질 겨를도 없이 자기계발로 무장하게 된다. 

아예 그 우울한 기분에 푹 빠져들기도 한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기분 울적할 때 읽으면 문장 하나하나가 좋아서 책 속으로 몸도 마음도 젖어든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책을 읽기도 하는데, 이때 딱 맞는 책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다. 인생을 쉽게 쉽게 살아도 큰일 나지 않으니 릴렉스해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는 데 조금 힘을 빼야 할 때 읽곤 한다. 

나는 기분이 안 좋을 때 서점에 가기도 한다. 조금 한적한 서점도 괜찮지만, 광화문 교보문고처럼 대형 서점에서 어마어마한 책들 속에 파묻히다 보면 다양한 책들 속의 사연들을 만나 보며 힘을 얻기도 하고, 또 깜찍한 기획력이 돋보이는 책이나 디자인이 탁월한 책들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 온다.

나에게는 책이지만, 누구에게는 음악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는 운동이 될 수 있고, 누구에게는 산책이나 명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달달한 디저트도 소임을 다할 수 있다. 아, 글쓰기도 될 수 있겠다. 이 글을 쓰면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을 돌아볼 수 있었고, 글을 쓰기 전보다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장마로 몸과 마음이 모두 축축하고 무거운 요즘, 기분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은 어떤 게 있는지 미리미리 챙겨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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