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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l 11. 2021

기분까지 가지런해지는 '여름날에 글쓰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을 때, 또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도대체 쓸 만한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글쓰기가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그럴 때는 내가 왜 그렇게 시간을 많이 들여 글을 쓰는지 자책까지 하게 된다. 카피나 제목을 뽑아내는 자판기뿐만 아니라, 글이 안 써질 때 대신 써주는 자판기라도 한 대 더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 학창시절 때는 글을 써야 할 때 '서론-본론-결론'에 맞춰서 써야 한다고 배웠다. 서론에서는 어떤 글을 쓸 건지 잠깐 소개를 하고, 본격적인 글은 본론에서 쓰며, 결론에서는 다시 정리하는 글을 쓰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런 글쓰기는 요즘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요즘에는 첫문장을 얼마나 잘 뽑아내느냐에 따라 글을 계속 읽을지, 손가락으로 다음 화면을 넘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론, 본론, 결론에 맞춰 글을 써야 한다는 글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 논문이나 논술에서는 그런 형식을 갖춰야 하는 게 맞겠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웹소설 써서 먹고 삽니다>인데, 무조건 재미있는 글을 앞에 쓰라고 강조한다. 웹소설은 처음 몇 편에 승패가 결정날 정도로 앞이 재미있어야 한단다. 웹소설을 쓴다고 너무 가볍게만 볼 수 없는 게, 이 책의 저자는 신춘문예에서 입상을 할 만큼 글쓰기가 탄탄하신 분이다. 순수문학을 할 때는 알바를 해야 할 정도로 수입이 보장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편하게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 길게 남는다. 

정확히 내 감정을 잘 모르겠지만, 내가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글을 쓰면서 마음도 좀 편안해지고, 혼란스러운 마음도 정리가 되고, 좀 더 나은 내가 되는 게 아닐까. 뭐 꼭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떤 날은 글이 너무 잘 써질 때도 있고, 또 어느 날은 그림이 너무 잘 그려질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이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아,, 생각해 보니 이런 게 글을 계속 쓰게 하는 힘 같다. 쾌락의 감정을 주는 '도파민'까지는 아니지만 진통을 완화시켜 주는 '엔도르핀' 정도는 나오나 보다. 

날은 덥고, 코로나로 집에 있으려니 답답하기도 한 날에는, 기분 좋은 카페에 가서 마음에 쏙 드는 커피 한잔 하면서 글을 쓰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은 잘 써지는 대로, 글이 안 써지는 날은 안 써지는 대로 그렇게 말이다. 

서론에 글 안 써진다고 투정부리다가 본론에는 생뚱맞는 첫 문장의 중요성을 말해도 그냥 넘어간들 어떨까 싶다. ^^ 중요한 건 글을 쓰는 동안 내 기분이 몹시 유쾌해졌다는 거다. 무더위에, 장마 시작에, 코로나에 우울했던 마음까지 가지런히, 반듯하게 펴졌다. 

ps. 방금 깨달은 건데, 글을 쓰면서 내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자신을 더 깊게 바라보니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런 마음 끝에는 자신에 대한 무한 허용과 인정(?) 그런 비슷한 마음이 나오게 된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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