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를 꼽으라 하면 '성실', '열심', '끈기' 뭐 이런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좀 갑갑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겨우 이런 거야?'라고 할 만한 단어다. 이건 마치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독서예요."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취미가 없을 때 만만하게 갖다 붙일 수 있는 게 독서였는데, 요즘은 독서가 취미인 사람을 찾기가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만큼이나 힘들 듯하다.
어쨌든 난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회사를 다닐 때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꼽혔고, 또 뭘 배우든 참 열심히 다녔다. 나보고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보였던 이유가 '불안'에서 시작된 거라는 걸 나 자신은 알고 있지만, 그 뿌리까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내 가족이나 지인은 나를 꽤나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며 '성실' 또는 '열심'이라는 프레임을 씌워놓았다. 저절로 얻은 그런 프레임이 나 또한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주말에 김은희 작가가 사부로 출연한 '집사부일체'를 보았다. 좋아하는 작가였기에 꽤 진지하게 들여다봤는데, 김은희 작가는 대본을 쓸 때 100번의 수정 작업을 거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생생하고 섬세한 묘사와 대사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동반 출연한 배우는 김은희 작가의 대본을 보면 소설을 읽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예전에 중학교 교과서를 편집한 적이 있는데, 교과서는 교정을 10번 정도 봤다. 어찌나 반복해서 보는지 교정지만 보면 거의 토가 나오는 지경이 되었다.10번도 많아 보이는데, 김은희 작가는 같은 내용을 100번이나 뜯어고친다는 말이다.
김은희 작가에 비하면 나는 새 발의 피였던 게다. 밑바닥까지 내려가 에너지를 끌어내며 한 것도 아니면서 너무 쉽게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이 정도면 열심히 한 거라고, 더 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속단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제목의 책이라도 한권 내야 할 판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산 척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