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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Sep 07. 2021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요즘 '컨셉진' 강의를 듣고 있는데, 매주마다 과제가 있다. 이번 과제는 '일'에 대한 거다. 일에 대한 콘셉트를 잡고 기획안과 대략적인 디자인을 잡아야 한다. 

콘셉트를 잡으려면 'what'에 집중해야 한다. 고민 끝에 나는 '우리는 왜 일하면 행복하지 않은가?'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 자체가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닐 것이다. 원하지 않은 곳에서 비자발적으로 일을 하니 스트레스가 오는 것이리라.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나의 경우, 일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았고 회사에서 누군가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도 나는 회사에 갈 때면 지하철에서 공황장애 증상을 겪고는 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극심한 공포 속에 앉아 있기도 했다. 아마도 일하기 싫어서 그랬으리라. ^^

일을 하는 와중에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기획해 보기로 했다. 평범하게 직장에 출퇴근하는 사람이 아닌(평범하게 출퇴근하는 사람이라고 다 불행하진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처음의 반짝거리는 눈빛은 흐리멍텅해지고 엉덩이는 무거워진다), 디지털 노마드로 산다든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본 직업이지만 카페를 운영한다거나, 전업작가지만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 말이다. 또하나 덧붙이면, 연극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평소에는 아르바이트와 가게를 운영하는 내 조카의 경우가 그렇다. 

주말에 그 조카의 공연이 있는 날이어서 의정부에 다녀왔다. 코로나 시국이라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꼼꼼하게 방역 잘하고 거리두기를 반영한 자리 덕분에 걱정을 다소 덜고 관람할 수 있었다. 조카는 뮤지컬학과를 졸업하고 졸업한 친구들과 함께 극단을 만들어서 공연하고 있다. 평소에는 극한알바도 하고 무인 가게도 운영하면서 저녁에는 친구들과 공연 연습을 한다.

주말에 있던 공연은 순수 창작극으로 '층간소음'이라는 작품이다.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사회 풋나기들의 작품이지만, 때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견줄 만한 진지함이 엿보였고, 또 때로는 젊은이들의 당돌함과 유머가 극장 내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도 했다. 

누구나 피해자도 될 수 있지만 가해자도 될 수 있는 '층간소음'이라는 소재 안에 고단한 외국인 노동자의 삶도 녹아 있고, 또 이웃간의 배려와 훈훈한 정도 담겨 있다. 때로는 큰 웃음으로, 또 때로는 소소한 감동으로 공연 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후다닥 지나갔다.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묵직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기도 했다.

좋은 작품이란 '의미'와 '재미'의 적절한 버물임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는 없고 재미만 있다면 공허하고, 의미는 있되 재미가 없다면 지루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의미와 재미가 52와 48의 비율로 적절하게 섞여 있어서 순한 맛의 떡볶이를 먹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숫기 없는 조카라고만 생각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배역에 몰입하는 아이의 눈빛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그렇게 아이는 성장하고 있다. 일도 꿈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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