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컨셉진' 강의를 듣고 있는데, 매주마다 과제가 있다. 이번 과제는 '일'에 대한 거다. 일에 대한 콘셉트를 잡고 기획안과 대략적인 디자인을 잡아야 한다.
콘셉트를 잡으려면 'what'에 집중해야 한다. 고민 끝에 나는 '우리는 왜 일하면 행복하지 않은가?'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 자체가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닐 것이다. 원하지 않은 곳에서 비자발적으로 일을 하니 스트레스가 오는 것이리라.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나의 경우, 일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았고 회사에서 누군가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도 나는 회사에 갈 때면 지하철에서 공황장애 증상을 겪고는 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극심한 공포 속에 앉아 있기도 했다. 아마도 일하기 싫어서 그랬으리라. ^^
일을 하는 와중에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기획해 보기로 했다. 평범하게 직장에 출퇴근하는 사람이 아닌(평범하게 출퇴근하는 사람이라고 다 불행하진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처음의 반짝거리는 눈빛은 흐리멍텅해지고 엉덩이는 무거워진다), 디지털 노마드로 산다든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본 직업이지만 카페를 운영한다거나, 전업작가지만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 말이다. 또하나 덧붙이면, 연극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평소에는 아르바이트와 가게를 운영하는 내 조카의 경우가 그렇다.
주말에 그 조카의 공연이 있는 날이어서 의정부에 다녀왔다. 코로나 시국이라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꼼꼼하게 방역 잘하고 거리두기를 반영한 자리 덕분에 걱정을 다소 덜고 관람할 수 있었다. 조카는 뮤지컬학과를 졸업하고 졸업한 친구들과 함께 극단을 만들어서 공연하고 있다. 평소에는 극한알바도 하고 무인 가게도 운영하면서 저녁에는 친구들과 공연 연습을 한다.
주말에 있던 공연은 순수 창작극으로 '층간소음'이라는 작품이다.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사회 풋나기들의 작품이지만, 때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견줄 만한 진지함이 엿보였고, 또 때로는 젊은이들의 당돌함과 유머가 극장 내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도 했다.
누구나 피해자도 될 수 있지만 가해자도 될 수 있는 '층간소음'이라는 소재 안에 고단한 외국인 노동자의 삶도 녹아 있고, 또 이웃간의 배려와 훈훈한 정도 담겨 있다. 때로는 큰 웃음으로, 또 때로는 소소한 감동으로 공연 시간이 지루할 틈 없이 후다닥 지나갔다.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묵직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기도 했다.
좋은 작품이란 '의미'와 '재미'의 적절한 버물임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는 없고 재미만 있다면 공허하고, 의미는 있되 재미가 없다면 지루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의미와 재미가 52와 48의 비율로 적절하게 섞여 있어서 순한 맛의 떡볶이를 먹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숫기 없는 조카라고만 생각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배역에 몰입하는 아이의 눈빛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그렇게 아이는 성장하고 있다. 일도 꿈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