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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유효한 커뮤니케이션-<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번부터 읽기

by 박둥둥


사실 사르트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사르트르 개인적인 성향도 그렇거니와 기본적으로 키보드 워리어형 지식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도 순수하게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다.

사르트르가 잡지 <현대>를 만들며 그 유명한 참여문학에 대한 주장을 전개하자 이에 대해 진보와 보수 모두 강한 반발을 제기했는데, 특히 순문학을 대표하던 앙드레 지드는 스탈린 치하의 영화감독은 열심히 예술을 할수록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일 뿐이라며 사르트르를 비판했다. 이에 사르트르가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을 발표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그의 키배(...)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여기 실린 네 편의 에세이는 전혀 촌스럽지 않다. 특히 사르트르=앙가주망 이란 단순한 등식만을 알고 있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특히 당신이 문학전공의 석박사과정이라면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반대로 말하자면 문학전공이 아니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권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상당히 어려워서 나도 줄 치고 인덱스 붙여가며 읽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전자책이라 그럴 수가 없어서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앙가주망의 기본을 설명하는 내용은 첫 번째 에세이뿐이고 (기본이라지만 이 에세이도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 이후의 에세이는 이 내용을 더 심화시켜서 독자론(読者論)으로 전개되어 가는데 전공자에겐 그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그냥 교양으로 읽는 사람이라면 굳이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이 어려운 내용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읽어도 되나 하고 걱정 마시길.

내가 요약해 드릴 테니. (후후)


첫 번째 에세이 <쓴 다는 것은 무엇인가>는 한 줄 요약하면 그가 주장하는 참여문학은 공산당 하의 사회주의적 문학과는 전적으로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 맞다 앙드레 지드 까는 내용이다) 사르트르는 운문과 산문을 비교하며 산문이란 운문처럼 언어를 효율성에서 해방시키는 장르이면서도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장르라 정의한다. 참여문학은 마치 초밥장인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 하듯이 이런 산문을 가장 자연스럽게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리고 두 번째 에세이인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가 중요한데, 사르트르는 첫 번째 에세이를 더 심화시켜 단순히 사회참여적 소재를 다루고 주제를 구현하는 게 참여문학이 아니라, 독자와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참여문학이라 정의한다

오랜 세월 아예 독자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글을 의뢰한 귀족들의 요구만 신경 쓰면 그만이던 작가들은 이제 불특정 한 다수의 독자를 상정하고 이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독자가 작품 안에서 자기주장을 만들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내는 것, 바로 이것이 현시대의 작가의 역할이며 이를 바탕으로 독자가 다시 새로운 예술을 만들고 창작자가 여기서 영감을 얻어 다시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이 창조적 운동의 과정 자체가 사르트르가 이야기하는 참여문학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문학에서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주체가 된다는 말인데 이게 1947년에 발표한 주장이라는 게 놀랍기만 하다. 동시대의 다른 철학자나 작가들은 물론 요즘에서도 이런 생각을 가진 예술가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축구의 중심이 누구냐 할 때 선수나 감독이 아니라 팬들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주장이다(한편으론 이 잘난 척쟁이가 내가 쓰는 게 진리다! 작가만세! 독자는 그저 내 주장에 손뼉 치는 인형일 뿐!이라 하지 않았던 것이 흥미로웠다)

나머지 에세이에서는 프랑스 문학사를 독자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당시의 프랑스 문단에 대한 지적까지 이어지게 된다.

대충 이런 내용이기에 문학 오타쿠가 아니라면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오타쿠의 입장에선 아직도 날이 살아있는 필독서라 할 수 있다.

덧붙여 사르트르 덕후 정명환 선상님의 번역도 자세한 주석도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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