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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은 기억들의 구원

유병록 『안간힘』

by 박둥둥

오늘 아침, 유병록 시인의 시를 스레드에 올리며 처음 이 에세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이 당연히 연인에게 보내는 시라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시는 어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아들을 잃은 시인.
그럼에도 매끼 식사를 챙겨 먹고, 장례를 마치기 위해 잠을 자고,

결국 살아내야 했던 한 아버지의 몸부림.


그 모든 마음이 담긴 수필집 『안간힘』이 나와 있다는 말을 듣고, 곧장 밀리의 서재를 검색했다.
다행히 있었다.
출근길, 전철 안에서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이 책은 맨 얼굴 같은 책이다.
시인으로서의 유려한 문장은 의도적으로 거세되어 있다.
멋을 부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다.
돌이 조금 지난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깊은 슬픔.
그 일을 겪고 나서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아내와의 관계.
그리고 기억 저편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조각 같은 장면들.


그는 이 모든 것을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걸어 나간다.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고, 눈을 감았다가 뜨고, 그리고 또 걸어 나간다.
살기 위해서.


"그래도 살아라.
그래서 살아라.
그게 다다."


책은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좋았다.



슬픔은 이제 / 유병록


아무렇지 않은 척

고요해진 척


회사에서는 손인 척 일하지

술자리에서는 입인 척 웃고 떠들지

거리에서는 평범한 발인 척 걷지


슬픔을 들킨다면

사람들은 곤란해할 거야 나는 부끄러워질 거야


네가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흔들지 몸속 깊숙한 곳으로 밀어두지


구덩이 속에서 너는 울고 있겠지만


내가 나에게 슬픔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모르는 척

내가 나를 속일 수 있을 때까지

괜찮아진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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