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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맺어진 부부 –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박둥둥의 인생극장

by 박둥둥

문학사 속에는 서로를 시로 불러낸, 운명처럼 만난 부부들이 있다.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배럿 역시 그 중 한 쌍이다. 혹시 이름이 낯선 분이라면, 이들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시길.

1844년, 젊은 시인 로버트는 당시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시인 엘리자베스의 새 시집을 읽고 큰 감동을 받는다.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녀에게 팬레터를 썼다. 짧고 예의 바른 그 편지 속에는, 시 한 줄 한 줄에 감탄한 마음과, 그 시를 쓴 사람을 향한 존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시와 문학, 삶과 사랑에 대해 나누는 이 서신 교류는 어느새 두 사람 사이를 천천히, 그러나 깊게 물들여갔다.

첫 만남은 편지를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단순히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알 수 없는 희귀병과 폐 질환, 그리고 15살 때의 낙마 사고로 인한 척추 부상으로 몸이 심하게 약해, 도움 없이는 방 밖으로 나서기 힘든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영국의 환경오염이 질병을 악화시켰다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이 불편한 현실은 둘의 마음을 막지 못했다. 그들은 20개월 동안 약 600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다. 그러나 결혼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었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부와 신분을 지닌 명문가 출신으로, 무명에 가까운 청년 시인 로버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게다가 엘리자베스가 여섯 살 연상인데다 건강마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로버트의 주변인들조차 이 결합을 말렸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의 선택을 확신했다. 1846년, 엘리자베스가 마흔이 되던 해, 그들은 야반도주하듯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두 사람은 영국을 떠나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향했다. 따스한 햇살과 맑은 공기, 신선한 음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나날은 엘리자베스를 몰라보게 건강하게 만들었다. 결혼 6년 뒤에는 기적처럼 아들을 품게 되었고, 무사히 출산을 마쳤다.

문학적으로도 이 시기는 그녀의 전성기였다. 오랜 팬이자 든든한 동반자인 로버트의 지지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대표작인 『포르투갈의 소네트』를 완성했다. 두 사람은 시를 쓰는 일과 사랑하는 일을 구분하지 않았다. 시는 그들의 대화였고, 사랑의 증명이었다.

결혼 13년 만에, 엘리자베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로버트는 곁을 지켰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아름답다”였다. 사후, 엘리자베스는 여성 최초의 계관시인 후보에 오를 만큼 영문학사에서 중요한 이름이 되었고, 로버트 역시 그녀 못지않게 뛰어난 시인으로 기억되었다.

두 사람이 남긴 시와 편지는 여전히 사랑의 온기를 품고 있다. 서로의 시 속에서, 그리고 서로의 인생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부부.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한 편의 서정시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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