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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羊羹)

- 나가이 가후 (永井荷風) , 1947년 작

by 박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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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타로는 ‘모미지(もみじ)’라는 긴자 뒷골목의 작은 요릿집에서 요리 견습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징병으로 끌려가 2년 만에 돌아왔는데, 돌아오니 전시 통제 이후 세상은 송두리째 바뀌어 있었고, 긴자 일대의 형세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요리 준비에 쓸 재료가 부족해서, 도쿄 안의 어느 음식점도 날마다 손님을 끊김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집은 한 곳도 없었다. ‘모미지’에서는 겉으로는 휴업이라는 팻말을 걸어두고, 안면 있는 단골이나 그 소개로 오는 사람만 받도록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열흘에 한 번은 가게 문을 닫고 생선이나 채소, 술과 땔나무 따위를 사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대로 전쟁이 길어지면, 한 번의 휴일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어, 마침내는 장사를 이어갈 수 없을 것이라, 안주인을 비롯해 손님들까지도 이미 체념한 듯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타로는 근처 형편이나 세상 풍문으로 보아, 마냥 꾸물대고 있으면 다시 징집되어 전선으로 끌려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장의 노동자로 돌려질 거라고 생각했다. 설령 다행히 이곳에서 계속 일해 제법 요리사가 된다 한들, 평소 꿈꾸던 대로 언젠가 가게를 내볼 가망은 없었다. 차라리 지금 이때 모 아니면 도의 심정으로, 스스로 점령지로 나아가면 뜻밖에 새로운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결심한 그는 쇼와 17년(1942년) 말, 연줄을 찾아 군인이 되어 만주로 건너갔다. 그리하여 예전에 군대에서 익혀둔 자동차 운전을 살려 운전병으로 일하며, 꼬박 4년 세월을 보냈다.


패전 뒤 일본에 돌아와 보니, 도쿄는 눈 닿는 곳마다 모조리 불탄 들판뿐이었고, ‘모미지’의 안주인이나 요리사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도무지 찾을 길조차 없었다. 그의 본가는 후나바시(船橋) 마을에서 북쪽으로 2리쯤 떨어진 시골 농가였기에, 우선 그곳에 몸을 의탁하고 후에 운 좋게도 시청의 소개로 고이와(小岩) 의 한 운송 회사에 고용되었다.


한두 달이나 지났을까, 신타로는 금전에는 전혀 궁핍하지 않은 처지가 되었다. 아무리 물 쓰듯 써도 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천 엔 안팎의 지폐 뭉치가 꽉 들어 있었다. 그래서 우선은 양복에서부터 구두까지, 그동안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모조리 사 입고 외모를 꾸몄으며, 날마다 일터에서 들르는 암시장을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술도 마셔보곤 했다.


밤이면 동료 다섯, 여섯 명과 함께 논 가운데 세운 오두막에서 잠을 잤다. 가끔 일에서 틈이 나 부모가 있는 후나바시 집에 돌아갈 때면, 암시장에서 꼬치 하나 10엔 하는 장어구이를 여러 개 사서 선물로 가져가거나, 1엔짜리 사탕을 근처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어머니께 현금을 드리기도 했다.


신타로는 자신이 돈에 궁하지 않은 것, 요즘 같은 상황에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모 형제나 가까운 이웃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예전 자신을 꾸짖고 호통치던 연장자들에게, 지금은 이렇게 자신이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게 해 놀라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겁고 뿌듯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그는 시골 사람들에게만 잘난 체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신타로는 예전 ‘모미지’의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꾸중을 듣곤 했던 요리사 우에다, 또 안주인이나 주인, 매일 밤 술 마시러 오던 손님들, 담배를 사 오게 시킬 때마다 거스름돈을 팁으로 쥐여주던 손님들에게까지 다시 한번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는 진주군 병사와 다름없는 고급 모직 양복을 입고, 전쟁 중 장교들이 신던 진짜 가죽 장화를 신고, 챙 없는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햇볕을 가리는 색안경까지 걸친, 젊은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을 뽐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하러 가는 길에서도 부지런히 지인들을 수소문하며 옛 인연들을 찾아다녔다.


요리사의 집은 원래 이리야(入谷) 쪽에 있었기에, 신타로는 그 근처에 간 김에 일부러 구청에 들러 어디로 이사했는지 물어보았지만, 뚜렷한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모미지의 안주인은 본래 아카사카에서 기생집을 하던 사람으로, 그 무렵 스물네다섯 살쯤이었으니, 지금은 서른을 훌쩍 넘겼을 터였다. 남편은 기바(木場)의 목재 도매상이라 들었는데, 통제와 재산 동결이 이어진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꽤 딱한 신세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떠올리다 보니 신타로는 더욱더 기어이 행방을 수소문해, 예전에 신세 졌던 은혜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 시절 잘나가던 게이샤들이며, 매일 드나들던 손님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안주인의 친구 가운데서도 대기소나 기생집을 운영하던 언니들이 다섯, 여섯은 있었을 것이니, 그중 한 사람쯤은 어디선가 마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신타로는 트럭을 몰고 가는 길에서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눈길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도쿄 나카노(中野)에서 오다와라(小田原)로 이사하는 사람의 짐을 싣고 도카이도를 달리던 길, 후지사와(藤沢) 부근 길가에서 잠시 쉬어 소나무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였다. 세련돼 보이는 부인 한 사람이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데리고 지나가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개도 부인도 분명히 그의 눈에 익은 모습이었으나, 개의 이름도 부인의 이름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신타로는 도시락통을 손에 든 채 일어서며,


“저기, 모미지의 손님 아니십니까?” 하고 말을 걸었다.

“저예요. 이 근처에 살고 계신 겁니까?”

“어머나.” 하고 부인은 신타로의 이름을 까맣게 잊은 듯 잠시 말이 막히더니,
“언제 돌아왔어?” 하고 물었다.
“올 봄에 돌아왔습니다. 모미지 안주인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꼭 찾아뵙고 싶어 동네 회관에도 물어봤는데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미지 주인은는 불타기 전에 강제 소개(疎開)로 집을 철거당했단다.”
“그럼 무사하신 거군요.”
“한동안 소식은 없지만, 지금도 소개지에서 지내고 계실 거야.”
“어디로 소개 가셨습니까?”
“치바현 야와타(八幡). 번지는 집에 적어둔 게 있을 거야. 네 주소를 적어줘. 집에 돌아가면 엽서로 알려줄게.”
“야와타라면 금방 찾을 수 있겠군요. 저는 고이와에 있는 운송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신타로는 권련 갑지의 종이를 찢어 주소를 적어 건넸다. 부인은 그것을 읽으며,
“신짱이었구나. 완전히 업종을 바꿨네. 장사는 잘 돼?”
“아주 잘됩니다. 일하려고만 하면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에요. 모두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신타로는 조수와 함께 가볍게 트럭에 뛰어올랐다.


그 후로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마칠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가, 신타로는 적힌 주소를 의지해 모미지의 주인이 산다는 소개지를 찾아 나섰다.
국철역에서 국도로 나가는 모퉁이 파출소에 들러 길을 묻자, 경찰은 “도리이 앞을 게이세이 전차가 지나가는 야와타 신사의 소나무 숲을 빠져나와, 도랑을 따라 난 길을 네다섯 정(町)쯤 가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길을 가다 보니, 평집 같은 주택이며 별장 같은 대문, 초가지붕의 농가와 밭, 소나무 숲이 뒤섞여,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제멋대로 굽어져 들어서다 보니, 금세 방향을 잃고 말았다. 초가을의 해는 어느덧 저물어가고, 옥수수 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와 더불어 길가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가 문득 귀에 선명히 들어왔다. 이 이상 아무리 더 물어가며 찾아도, 문패를 읽어 구분할 수 있는 집 사이에서는 도저히 목적지에 닿을 수 없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모르니 한 번만 더 물어보고, 그래도 모르면 오늘은 단념하고 돌아가자’ 하고 생각하던 차에, 잠자리채를 든 아이 서너 명이 잠자리잡이를 하며 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신타로는 아이들을 불러 세웠고, 그중 한 아이가

“바로 저 집인데” 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다른 아이도 “저기 소나무가 서 있는 집, 그 집이예요” 하고 덧붙였다.
“그래? 고맙다.” 신타로는 일러준 대로 쪽문이 있는 집을 바라보았다. 아까 한 번 모르고 그냥 지나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옆으로는 광나무로 만든 생울타리가 이어져 있고, 똑같이 생긴 쪽문들이 줄지어 있었다. 문패와 소나무를 확인한 뒤 안으로 들어가니, 새로 지은 이층집이 안쪽에 자리잡고 있고, 현관 앞 뜰에는 옥수수와 가지가 빼곡히 심겨 있었다. 신타로가 부엌 쪽으로 돌아가 안에 있는 사람을 부르려던 순간, 서양식 평상복을 입은 하녀 같은 여자가 유리문 바깥에 화로를 내놓고 냄비를 걸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긴자의 가게에서 술 덥히는 일을 하던 오치카라는 여인이었다.
“오치카상.”
“어머, 신짱. 살아 있었구나.”
“이렇게 멀쩡합니다. 다리도 두 개 붙어 있고요. 신타로가 왔다고, 안주인께 꼭 전해주세요.”


소리를 들은 안주인은 오치카가 전하러 가기도 전에 부엌으로 나왔다. 서른 전후로 보이고, 머리는 곱슬졌지만, 도쿄의 여인이 아니면 풍기지 못할 분명한 세련된 기운이 배어 있었다. 수수한 유카타에 손질한 반폭의 오비를 바르게 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카사카의 언니분께 주소를 여쭤봤습니다.”
“그래, 잘 와주었구나. 주인도 안에 계셔. 당신, 신타로가 왔어요.”
“그래? 정원 쪽으로 오라고 해.” 하고 안에서 대답이 들렸다.

하녀가 신타로를 정원으로 안내하니, 가을꽃이 무성한 툇마루에 쉰이 넘은 붉은 얼굴의 주인이 앉아 있었다.
“잘 찾아왔네. 이 근처는 번지가 뜨문뜨문이라 물어도 모를 곳이야. 자, 올라와.”
“네.” 신타로는 툇마루에 앉아, “이번 봄에 돌아왔는데, 어디로 찾아뵈야 할지 몰라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하고 말했다.
“지금은 어디 있나?”
“고이와에 있습니다. 트럭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바빠 죽겠습니다.”
“그거 다행이구먼. 마침 잘 왔다. 저녁이나 먹고 천천히 얘기하세.”


신타로가 예전 요리사 우에다의 행방을 묻자, 주인은 “우에다는 고향이 기후라 소식은 없지만, 아마 그쪽으로 소개 갔을 거야. 다행이 우리도 이렇게 무사히 있지. 우리 집은 폭격에 하나도 안 탔어.”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안주인을 불러 “밥은 나중에 하고, 우선 맥주를 좀 부탁하네.” 했다.


안주인은 즉시 상을 내와 오이무침과 훈제연어, 두 개의 유리컵을 놓고 맥주병을 가져왔다. 신타로는 주인이 먼저 한 모금 마시는 걸 보고 잔을 들었다. 맥주는 두 병뿐이라 나중에는 일본 술이 나왔으나, 신타로는 두세 잔만 마셨다. 그리고 만주에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녁상에는 전갱이 소금구이, 명아주와 달걀국, 가지 조림,오이 절임이 오르고, 쌀밥도 하얗게 차려졌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모이면 늘 하는 얘기―물자 암시장 시세나 제2차 재산 봉쇄 이야기가 잠시 오가는 동안 저녁식사는 끝났다. 정원은 이미 어두워지고, 별빛이 보이며, 바람이 송풍을 흔들었다. 등불을 찾아 날아든 벌레들이 문풍지에 탁탁 부딪혔다. 이웃집 울타리 너머로는 목욕물을 데우는 불빛이 반짝였다. 신타로는 시계를 보며 일어났다.


“갑자기 찾아뵈어 실례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또 놀러 오게.”
“안주인님,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엽서라도 보내주세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쪽문을 나섰다. 바깥은 정원만큼이나 어두웠지만, 집집마다 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따라 걷자, 올 때보다 훨씬 쉽게 게이세이 전차 선로에 닿았다. 신타로는 왜 방금 받은 대접을 마음 깊이 기뻐하지 못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물론 반갑고 즐거웠지만, 어쩐지 기대에 못 미치고 실망스러운, 시시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 자기 마음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주머니 속에서 꺼내지 못한 미국산 담배가 손에 닿았다. 신타로는 성급히 꺼내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전재산이 봉쇄된 지금도 매일 맥주와 일본 술을 즐기는 주인의 여유를 보니, 생각만큼 곤궁하지 않았다. 전후의 세상은 신문이나 잡지 논설에서 그리는 것처럼 궁핍하지 않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아직 완전히 파멸 직전까지 몰린 게 아니었다. 옛 사회의 구조는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다. 예전부터 여유롭게 살던 사람들은 여전히 여유롭게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보면, 자기의 현재 처지가 그토록 뽐낼 만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알 수 없는 불만이 차츰 강해졌다.


국도로 나오자, 눈에 익은 간판이 보였다. 신타로는 불현듯 한잔 더 하고 싶어졌다. 야와타 역 앞 노점들을 둘러봤지만 술을 파는 가게는 없었다. 찻집 같은 가게에서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창 안에는 가격표가 붙은 양갱과 과자가 진열돼 있었다. 지나가던 이들이 멈춰 서서 값비싼 가격에 놀란 듯한 얼굴을 하고, 어떤 이는 “터무니없다”며 성을 내고 갔다. 신타로는 문득 안으로 들어가 거칠게 의자에 앉았다. 벽에 붙은 메뉴판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을 보며,


“사과 하나 제일 좋은 걸로 하나 주게. 그리고 양갱은 단가? 그래, 달면 두세 개 싸주게. 근처 아이들에게 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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