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1,2
예전부터 살짝 마음을 두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주변에서 큰 호응을 받아 망설일 필요 없이 바로 질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권,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국보 1호가 단순히 번호 순서로 정해졌다는 걸 알면서도, ‘1번’이라는 건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민음사 역시 새로운 세계문학전집을 시작하며, 무엇을 첫 작품으로 내놓을지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신화다.
신화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물론 “왜 서양의 그리스·로마 신화가 1번이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우리가 읽고 쓰는 현대 문학 대부분이 서양식 서사 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밑바탕에 있는 신화를 1번으로 삼는 건 어쩌면 필연이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는 로마 시대에 구전으로 전해지던 거의 모든 그리스·로마 신화를 정리해 하나의 장대한 서사시로 엮은 작품이다. 그런데 그가 이런 ‘쩌는’ 대서사시를 쓰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말재주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오비디우스는 연애와 관계를 주제로 한 책들을 쓰며 인기를 모았다. 요청이 있으면 대중 앞에서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그 내용이 지금 식으로 표현하자면 “원하는 남자를 100% 사로잡는 실전 연애 특강” 같은 것이었다. 현대의 나조차도 유료 결제를 망설이지 않을 만큼 솔깃한 이야기였지만, 결국 그는 풍기문란죄로 로마에서 추방되어 먼 섬으로 유배된다.
『변신이야기』는 바로 그 유배지에서 쓰였다. 카오스에서 시작해 당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이르기까지, 신들의 역사와 사건을 ‘변신’이라는 키워드로 엮었다. 변신은 다프네나 아라크네처럼 신이 인간을 나무나 동물로 바꾸는 직접적인 사건일 수도 있지만, 더 넓게 보면 카오스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인간이 나이 들고 사랑하고 죽는 모든 과정 역시 ‘변신’이다. 그리고 이 변신의 주도권은 철저히 신에게 있다.
읽다 보면 또 다른 키워드가 떠오른다. 바로 ‘부조리’. 이 작품 속 인간들은 별다른 잘못이 없어도 신에게 미움받아 변신당하거나, 사건에 휘말려 부당하게 인간성을 잃는다. 신들은 종종 인간보다 더 타락했고, 폭력을 죄책감 없이 휘두르면서도 존경과 숭배를 요구한다. 이치로 따질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이 곧 자연이고 운명이기 때문이다. 착하다고 자연재해를 피할 수 없듯,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과 한계도 항의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 비극의 근본 사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밤새 극장에서 연약한 인간이 부당한 운명을 견디는 이야기를 보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를 아름답다고 여겼다. 거기서 느끼는 쾌감, 이른바 ‘카타르시스’가 이야기의 원동력이었다.
오비디우스는 수많은 신화를 집대성하며,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꽃잎처럼 연약한 인간과 신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마지막에는 카오스에서 시작된 신들의 역사가 로마의 탄생과 아우구스투스의 등장을 위한 서사였음을 드러내는 거대한 구조를 완성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로마는 끝내 그를 부르지 않았다. 후대 역사가들은 당시의 다른 작가들이 더 과감한 작품을 쓰고도 무사했던 점을 들어, 아우구스투스가 그를 미워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작품이 ‘문학작품 넘버원’의 자리를 쉽게 내놓을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변신이야기』는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서사의 뿌리이자, 인간이 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증명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