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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위로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괴도 박둥둥의 월급루팡 도서리뷰

by 박둥둥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SF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고전이라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이나 필립 K 딕의 작품들도 여전히 읽지 않은 상태이기에 SF에 대해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처지는 아니라는 건 매우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F라는 장르에 대해 말해보자면, SF는 두 가지 토끼를 잡아야 하기에 창작하기 어렵다. 1. 상당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 2. 궁극적으로는 그 정교한 과학설정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파헤친다는 문학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저 위의 SF장르의 걸작이라 하는 작품들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넉넉히 잡고도 남았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들은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1을 중시하면 마니아의 호평을 받지만 문학계와 대중독자에겐 외면받기 쉽고, 2를 중시하면 과학이 들러리가 되어버리기에 그런 건 진짜 SF가 아니야 라는 마니아들의 혹평이 이어진다.


김초엽의 작품은 어느 쪽인가 하면 2번이었다.

SF적 설정들은 등장하지만 과학에 대해 수준 높은 지식이 없더라도 영화 <콘택트>를 이해할 수준이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녀의 작품들이 SF 중에서 순문학계에서 주목받고 등단 1년 만에 작품집을 묶을 정도로 독자들에게도 호평받는 이유도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지식은 물론이고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김초엽의 작품은 친숙하게 손을 내밀어준다.

이 때문에 작품들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SF라기보다는 청소년문학장르에 가깝다는 생각이었다. 여러 단편들 안에서 폭력적이고 성적인 장면은 하나도 없다

위로와 공감, 타인에 대한 소통의 시도 등 주제도 기존문학이 익숙하게 다뤄왔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표제작보다 과학적 설정이 가장 약하게 느껴지는 <감정의 물성>이 가장 완성도 있게 느껴졌다.

결국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의 작품들도 SF를 살짝 차용한 순문학이라는 마니아들의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이게 어디냐고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SF, 추리물, 판타지와 무협지 같은 소위 장르문학에 대해서도 (여전히 매우 좁은 문이긴 하지만) 문은 열려 있다는 순문학계의 제스처도 긍정적이고, 쉬운 문장 익숙한 주제라 하더라도 이런 장르의 소설이 대중독자들에게 호평을 받는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지금 한국문학에 가장 필요한 것이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에 들어오는 입구가 되는 작품이 하나 더 늘어나 더 많은 독자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건 덤이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있다. 1번 목표든 2번 목표든 더 과감한 상상력이 부재하다는 점.

인간이 우주로 나가 사는 시대라는 스케일 큰 상상보다 <감정의 물성>과 같이 작지만 참신한 발상의 작품이 앞으로 김초엽의 작품세계를 위해선 더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으냐 하면 어린 학생들, 책 좀 읽어볼까 하는데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입문단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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