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중략)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심보선(1970-)은 시인, 사회학자이다. 1970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