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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아빠 Aug 01. 2022

움베르토 에코 ‘조국’ 이탈리아가 만드니 다르네

[리뷰]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 제작 ‘장미의 이름’

KBS 1TV가 매주 일요일 오후 방송 중인 해외드라마 '장미의 이름' ⓒ imdb

KBS1TV가 방영 중인 해외걸작 드라마 <장미의 이름>이 점점 흥미를 더해간다. 7월 3일 첫 방송한 <장미의 이름>은 7월 31일 총 5회가 전파를 탔다. 


‘넷플릭스’, ‘와챠’ 등 OTT에 익숙해서인지 매주 일요일을 기다리기 무척 힘들다. OTT처럼 날 ‘잡아서’ 한 번에 몰아보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강하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가 제작한 이 드라마는 이탈리아에서 첫 회 방송 당시 시청자수 650만 명, 시청률 27.4%를 기록했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닐슨코리아 집계 1% 안팎에 못 미치고 있다. 5회차 방송이 나간 7월 31일 시청률은 0.8%를 찍었다. 아쉬움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드라마는 이탈리아 천재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 원작을 각색했다. 앞서 1986년 프랑스 출신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 적이 있었다. 당시 윌리엄 신부는 숀 코네리가, 아드소는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각각 맡았다.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로 하면, 영화판 <장미의 이름>은 원작에 한참 못 미쳤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이 드라마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의 조국 이탈리아의 공영방송이 8부작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끌렸다.  <트랜스포머> 시리즈, <더 배트맨> 등에 출연한 배우 존 터투로가 기획한 점도 흥미를 더했다. 


5회까지 방송을 마쳤는데, 이제까지 극 전개는 무난해 보인다.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엔 없지만, 돌치노파의 봉기 등 극적 흥미를 더하기 위해 끼워 넣은 요소들도 크게 거슬림이 없이 다가온다. 윌리엄 수도사 역을 맡은 존 터투로의 연기는 중후함이 묻어난다. 


윌리엄 수도사가 영국 출신이기에 영국 배우를 기용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같은 아쉬움은 접어도 좋을 정도로 존 터투로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다. 수도원장 역을 맡은 마이클 에머슨의 존재감은 중요한 대목에서 빛난다. 아드소 역의 다미안 하둥 역시 풋풋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잠깐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는 추리소설 기법을 이용해 사뭇 무뚝뚝해 보일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프란치스코회 소속 바스커빌의 윌리엄 수도사가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성하면서 수도원장이 아끼는 말이 ‘브루넬로’임을 추리해 내는 도입부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 대목은 움베르토 에코가 셜록 홈즈 시리즈’ 원작자인 영국의 코넌 도일에게 바치는 오마주(예술과 문학에서 존경하는 작가와 작품에 영향을 받아 그와 비슷한 작품을 창작하거나 원작 그대로 표현하는 행위)다. 


‘바스커빌의 윌리엄’이란 주인공 이름 역시 코난 도일에 대한 경외감이 묻어난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가장 작품성을 인정받는 단편은 ‘바스커빌의 개’다. 에코는 코넌 도일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낸 것이다. 


중세 교회 ‘청빈’ 논쟁은 지금도 진행형 

드라마판 '장미의 이름' 주인공 '바스커빌의 윌리엄' 역은 '더 배트맨'으로 친숙한 존 터투로가 맡았다. ⓒ imdb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 보자. 이제껏 가장 흥미롭게 본 회차는 5회차였다. 5회차 말미에서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교황청 대사가 논쟁을 벌인다. 논쟁의 주제는 바로 ‘청빈’이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청빈을 강령으로 삼고 이를 실천에 옮긴 교파로 이제껏 회자된다. 하지만 교황청은 청빈 강령을 못 마땅히 여겨 이단으로 낙인찍는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한다. 프란치스코회 측은 교황청 대사들 앞에서 자신들의 반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유 재산이든 공유재산이든 그걸 포기하는 건 희생이고, 신성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이에 관해 설교하셨고 본보기를 보이셨습니다.”


이러자 교황청 측도 잠자코만 있지 않는다. 교황청 측은 이렇게 반박한다. 


“소유한 재물에 근거한 인간의 권리는 법률에 기재돼 있습니다. 그리스도도 인간이었습니다. 그분도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세속의 재물을 소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걸 다스릴 권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런 분의 후계자가 교황이십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측은 재차 반박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가 재물의 소유를 놓고 분열해야 합니까? 땅과 보석, 집과 돈을 갖기 위해서?”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교황청이 ‘청빈’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비단 중세란 특정한 시간, 그리고 그리스도교회라는 특정한 종교 공동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논쟁은 현대적이고, 여전히 교회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키는 도화선이다. 프란치스코회는 더욱 날선 질문을 던진다. 


“우리 구원은 사랑과 정의와 평화 안에 있습니까? 소유권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부여된 부패한 권력 안에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한국 교회의 한 단면을 본다. 신도수 수만, 헌금 수익(?) 수억을 올리는 큰 교회가 즐비한 한국이다. 


그런데 이토록 부유한 교회들은 물신주의에 탐닉한 나머지 가난을 백안시 하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자는 모든 목소리를 ‘이단’ 혹은 ‘사회주의’란 색깔을 덧입혀 파문한다. 흡사 중세 교황청이 재산과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아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이단으로 낙인 찍었듯이.


이 드라마는 원작 소설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대목 중 하나인 ‘청빈’ 논쟁을 제대로 풀어냈다. 앞선 4회차에서 미로와도 같은 도서관을 영상에 구현한 점도 인상적이다. 움베르토 에고의 문학적 공헌에 조국 이탈리아 공영방송이 화답하는 것 같다.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일그러진 신념이 종교적 교의와 만나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경고한다. 


앞으로 이어질 3편의 드라마가 원작의 메시지를 어떻게 그려낼지 사뭇 큰 기대를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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