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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아빠 Dec 24. 2020

마약왕 에스코바르의 백일몽, 현실 앞에 무너지다

[리뷰] 에스코바르 흥망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

한때 콜롬비아의 국가 이미지는 '무법천지'와 동의어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그때는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메데인 카르텔 보스로 군림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메데인 빈민가 출신 에스코바르는 코카인을 팔아 부를 쌓았고, 여세를 몰아 정계에 진출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 ⓒ 넷플릭스

하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높았다. 이때부터 에스코바르는 암살·테러로 콜롬비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는 전설적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시즌 3까지 나왔는데, 시즌 1·2는 에스코바르의 흥망성쇠를 시즌 3는 에스코바르 이후를 그린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강점은 사실성이다. 물론 허구적 요소가 뒤섞였고, 일부 가상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드라마는 에스코바르가 활약했던 시대상을 충실히 재현해 낸다. 드라마 중간 중간 끼워 넣은 보도 영상도 사실성을 높인다. 


하지만 사실성이 다가 아닐 것이다. 드라마는 에스코바르란 인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잡아내려 시도한다. 에스코바르(와그너 모우라)는 가정에선 얼핏 무뚝뚝해 보이지만 다정다감한 가장이다. 경찰이 체포망을 좁혀 들어옴에도 아내 타타를 찾아 애틋함을 표시한다. 


반면 카르텔 보스로선 그 누구보다도 냉혹하다. 자신을 강력히 압박하던 '서치 블락' 지휘관 요라시오 카리요 대령(모리스 콤테)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콜롬비아 정부를 흔들기 위해 폭탄테러를 서슴없이 벌인다. 


이렇게 사뭇 상반된 에스코바르의 면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겹친다. 한 번은 에스코바르는 체포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기지를 발휘해 가까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아내 타타는 쫓기는 삶에 불안감을 느낀다. 에스코바르는 이런 타타에게 춤을 청하고, 타타는 행복감에 빠진다. 바로 그 순간 에스코바르의 부하들은 경찰에 대대적인 복수극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다. 영화 <대부> 1편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이 조직을 이끌게 된 마이클 콜레오네는 라이벌 패밀리 숙청에 나선다. 콜레온 조직원의 숙청작업(?) 유아 세례 장면과 겹쳐지면서 잔혹성을 더욱 극대화한다. 에스코바르의 잔혹성도 따스한 남편의 이미지와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드라마의 흥미를 증폭시켜주는 요소는 또 있다. 바로 미국이다. 시즌 1·2는 미 마약단속국(DEA) 스티브 머피 요원(로이드 홀브룩)이, 그리고 시즌3는 머피의 파트너 하비에르 페냐 요원(페드로 파스칼)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마약보다 좌익정부가 더 해롭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는 미 마약단속국(DEA) 스티브 머피와 하비에르 페냐 요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 넷플릭스

이 지점에서 왜 미국은 요원을 콜롬비아 현지에 파견해 에스코바르를 추적할까 하는 의문이 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미국이 코카인의 주 소비시장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는 코카인에 취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사회문제로까지 떠오른다. 레이건-부시 행정부는 코카인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대대적으로 마약 단속에 나선다. 


그런데 미국이 메데인 카르텔을 정조준한 게 비단 마약의 심각성만은 아니다. 미국은 마약 보다는 좌익 정치세력의 등장을 더 걱정했다. 하지만 방관할 수만은 없을 지경으로 막대한 돈이 국외로 빠져나가자 미국 정부가 본격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DEA는 머피 요원을 현지에 급파해 먼저 활동하던 페냐 요원과 함께 에스코바르를 쫓는다. 


이뿐만 아니다. 이 드라마는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를 어떻게 다뤘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머피 요원에 이어 미 중앙정보부(CIA) 콜롬비아 지부장 스태크너 요원까지 함께 파견한다. 


시즌 2에서 스태크너 요원은 우익 무장조직을 사주해 에스코바르 소탕작전에 투입한다. 시즌 3에선 에스코바르 죽음 이후 최대 카르텔로 떠오른 칼리 카르텔이 에르네스토 샴페르 정권에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숨긴다. 스태크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좌익 게릴라들이 코카인으로 팔아 자금을 조달한다는 역정보를 미국 의원들에게 흘린다. CIA가 이런 공작을 벌인 이유는 간단하다. 샴페르 정권이 미국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무척 상징적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라틴 아메리카를 뒷마당쯤으로 여겼고, 그래서 좌익 공산정권의 등장을 막는데 사활적 이해를 걸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마약 카르텔을 관리했고, 필요에 따라선 적극 활용했다. 마약 카르텔은 이 틈새를 비집고 활개쳤다. 


넷플릭스의 실험정신은 칭찬할 만 하다. 만약 ‘보통의’ 미국 드라마였다면, 등장인물들은 모두 영어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르코스>에선 미국 쪽 주요 등장인물 몇 명 빼곤 모두 스페인어로 대사를 소화한다. 실험정신이나 다양성이 결여됐다면 할 수 없는 시도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에스코바르는 정계입문을 꿈꿨다. 드라마는 에스코바르가 대통령까지 꿈꾼 것으로 그린다. 하지만 앞서 적었듯 현실정치의 벽은 높았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의 국가부채를 갚아주겠다는, 무척 파격적인 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에스코바르는 이후 잔혹한 복수극을 벌였는데, 자신의 꿈이 좌절된데 대한 분풀이는 아니었을까?


하지만 현실이란 관점에서 볼 때 에스코바르의 꿈은 그야말로 백일몽에 불과하다. 아무리 곤궁한 국가라도 마약밀매로 부를 축적한 자를 지도자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말이다. 에스코바르의 돈으로 국가채무를 갚았다면 콜롬비아의 국가위상이 어땠을까 생각해보라. 


<나르코스> 시즌 1·2는 이렇게 에스코바르의 허황된 꿈과 콜롬비아의 참혹한 현실이 뒤섞이며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시즌 3는 에스코바르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진 등장인물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페냐 요원과 칼리 카르텔의 추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드라마 <나르코스>는 이제껏 본 드라마 중 최고라고 감히 치켜 올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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