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신화, 현실 괴리.... 성서적 검증 엄격해야
지난 10월초 불거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무력 충돌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양상이다.
소셜미디어를 검색하면 우리나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이·팔 갈등에 관심 갖는 분들이 부쩍 늘어났음을 느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갈등이 불거진 직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국내·외 언론을 통해 뉴스를 챙겨보며,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내가 이렇게 이·팔 갈등에 관심을 갖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스라엘은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 세계 3대 주요 종교 성지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번 생애 반드시 예루살렘은 방문하고자 계획 중이다.
다소 논점에서 이탈하는 이야기를 하자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이곳, 더 나아가 중동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때면 특히 보수 개신교계 목회자·성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종교적 교의를 덧칠하며 이스라엘을 두둔하고 나선다.
이번 이·팔 갈등 상황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보수 개신교계 연합체인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은 지난달 15일 오후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엔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도 참석했다. 한교총 대표회장이자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인 이영훈 목사는 특별기도 순서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땅에 벌어진 무차별적 테러와 공격으로 인해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이스라엘 국민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하마스의 무자비한 전쟁 도발이 그쳐 저들의 삶의 터전이 조속히 안전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 세계 가운데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란 대목에 주목하자. 보수 개신교계 내부에선 이런 인식이 만연하다. 2년 전인 2021년 6월 한동대는 미국 워싱턴 인터네셔널 갈보리교회 이성자 목사를 채플 강사로 초빙한 적이 있었다. 이때 이 목사는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를 하나님도 대적하신다. (중략)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던 현재 그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부터 1000대에 걸친 영원한 나의 언약으로 맹세하시고 '반드시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던 그 가나안 땅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이 같은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실로 어처구니없다.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미국은 이스라엘을 두둔하면서도 사태가 중동 전체로 퍼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현지시간 4일 요르단 암만에서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 타니 카타르 외교장관을 만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해소방안을 논의했다.
미국 CNN은 블링컨 장관이 카타르 외교장관을 만난 배경에 대해 "카타르는 하마스와 대화에서 핵심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보면 보수 개신교 측 인식은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현대 이스라엘이 택하신 백성인가?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말해둔다. 현대 이스라엘, 즉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국가적 실체로서 이스라엘은 구약성서가 기록한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백성'과 분명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구약성서 기록을 살펴보자.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어도, 이스라엘이 한때 고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했으며 이들이 모세의 인도 '하에'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으로 정착했다는 ‘출애굽서사’는 어지간히 안다. 비그리스도교인들은 출애굽 서사를 들먹이며, 이스라엘의 역사는 가나안 침략의 역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성서 '레위기'를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너희는 이런 행위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저질러 부정을 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낼 민족들은 이런 온갖 행위로 부정을 탄 것들이다. 그 땅도 부정을 탔기 때문에, 나는 그 죄악을 벌할 것이다. 그 땅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토해 내리라. (중략) 너희보다 앞서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런 온갖 망측한 짓을 다 하여 그 땅을 더럽혔던 것이다. 너희도 그 땅을 더럽히면, 너희보다 앞서 거기에 살던 민족을 토해 냈듯이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리라.“ - 구약성서 레위기 18:24~28
위에 인용한 구약성서 레위기 기록은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여호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준 언약이다. 여호와 하느님은 분명히 말한다. "기존 땅주인들이 땅을 더렵혀 그들을 벌했으니 이스라엘 역시 그 땅을 더럽히면 땅에서 토해내겠다"고.
여기서 땅을 더럽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기존 가나안 정착민들이 온갖 부정과 탐욕에 물들어 사회정의를 등한시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여호와 하느님은 이스라엘인에게 이전에 노예로 살았음을 기억하며 나그네를 환대하고, 기존 정착민과는 구분되도록 사회정의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는 분명히 경고한다. “너희도 그 땅을 더럽히면, 너희보다 앞서 거기에 살던 민족을 토해 냈듯이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리라”고. 즉, 기존 정착민처럼 사회정의를 등한시하면, 이스라엘 역시 화를 면치 못하리라는 경고다. 실로 모골이 송연하다.
이 대목에서 현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부르시고 택하신 백성'임은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 미국 캘빈 신학대학원 개리 버지 교수는 그의 책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에서 "성경적 약속과의 연결이 이스라엘 국가 됨의 근거라면 현대 이스라엘은 예언자들이 성경적 이스라엘에 적용했던 기준들에 의해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적는다.
하느님 언약 어긴 현대 이스라엘의 죄악
이번 갈등은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불거졌고, 민간인 희생이 뒤따랐다. 하마스의 행위를 두둔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현대 이스라엘이 건국 시점부터 하느님의 언약을 잘 지켰냐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하마스의 무력 사용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가자지구 봉쇄 정책이 부른 부산물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스라엘 출신 저널리스트로 가자 지구의 참상을 알린 아미라 하스는 이렇게 적는다.
“우리는 이른바 전문용어가 진실을 감춘다는 것을 안다. 1992년에서 1996년에 이르기까지 가자지구의 1인당 GNP는 무려 37퍼센트 하락했고, 총 GNP는 18.5퍼센트 감소했다. 6개월 만에 실업률이 8.2퍼센트 증가해 39.2퍼센트에 달했다. 1995년 가자지구 안에서 일자리를 잡은 운 좋은 사람은 실질임금의 9.6퍼센트 감소를 감수해야만 했다. 이스라엘에서 일한 노동자의 경우는 임금감소가 16퍼센트에 달했다.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이 끔찍한 상황의 원인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봉쇄의 결과가 어떠할지를 이스라엘의 정책결정자들이 몰랐다고 상상할 수 없다.” - 아미라 하스, <가자에서 바다를 마신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사야 선지자는 “억눌린 빈민들은 물을 찾아도 얻지 못하여 목말라 혀마저 바싹 타지마는, 나 야훼가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니"(이사야 41:17)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현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대하는 태도는 예언서와는 거리가 멀다.
앞서 인용한 신학자 개리 버지는 사뭇 신랄한 어조로 "구약의 예언자들이 오늘날 텔아비브나 예루살렘을 방문한다면 그들의 말은 신랄하고 강도 높은 비판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정말 이상하게도 성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권위를 아무도 몰라볼 것이고 예레미야 같이 그들은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국방부에 의해 감옥에 갇힐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현 이·팔 갈등 상황을 바라보는 건 참담하기 그지없다. 여기에 일부 성서를 곡해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보수 개신교 목회자들은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 앞에 기도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그래서 더더욱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정의로운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 상황을 가벼이 넘기지 않으시고, 갈등으로 얼룩진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주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