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979년 ‘장군들의 밤’ 재구성 화제, 황정민·정우성 ‘불꽃’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기세가 대단하다. 지난 11월 22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22일째인 오늘(12일) 누적관객 700만 명을 넘어섰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서울의 봄>은 그야말로 '핫' 하다.
이 영화는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인 12.12 쿠데타를 그린 영화로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래서 사실 개봉하면 곧장 영화관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12월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참고 참았다. 그리고 12.12 쿠데타 44주기인 2023년 12월 12일 '드디어' 봤다.
영화는 긴박하게 흐른다. 주인공 전두광으로 분한 황정민의 연기는 실로 놀랍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진짜 등장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장군 역으로 분한 정우성 배우는 특유의 묵직한 연기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황정민과 정우성은 2016년작 <아수라>에서도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쳤는데, 이번 <서울의 봄>에서 펼치는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은 더욱 진한 여운을 준다.
영화를 보면서 아무래도 한국 현대사를 떠올리게 된다. 12.12 쿠데타라는 역사적 사실이 이 영화의 주제여서일 것이다.
영화는 1979년 12월 12일 밤사이 벌어진 일을 그린다. 12.12 쿠데타의 줄기는 간단하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 책임자인 전두환 보안사령관(당시)이 수사를 빌미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당시)을 연행한 게 이 사건의 줄기다. 이후 전두환 사령관은 명실상부 실세로 군림했고, 끝내 최고권력을 거머쥐기에 이른다.
영화는 이렇게 무미건조한 역사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전두광이 '거사'를 실행에 옮기고 이태신 장군이 이를 저지하는 장면은 오늘(12일)로부터 44년 전 '그날' 밤이 꽤나 긴박했음을 알려준다.
쿠데타 막을 골든타임 있었지만....
그런데 이야기가 정점을 향해 치달을 수록 먹먹함이 밀려온다. 영화 속에서 전두광 보안사령관은 정상호 참모총장(이성민)을 연행하려 한다. 그러나 최한규 대통령(정동환)은 국방부장관 재가가 먼저라며 거절한다.
이 사이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은 전두광을 축으로 한 신군부의 반란을 저지하고자 동분서주하고, 일정 수준 성공을 거둔다.
당시 역사를 살펴봐도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 기도를 막을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신군부는 위기돌파에 성공하고 결국 원했던 목적, 즉 정승화 참모총장 연행에 성공한다.
영화를 보면서 쿠데타를 막을 '골든타임'이 번번이 무산될 때마다 탄식이 나온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따라서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이후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면 먹먹함은 절망으로 바뀐다. 한국 정치 권력이 군부에서 문민정부로 이동하면서 전두환 등 신군부를 단죄할 기회는 수 차례 있었고, 실제 사법부는 1997년 4월 "12.12는 명백한 군사반란"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고난은 잠깐이었고, 신군부 주축 인물들의 말년은 유별나게 호사스러웠다. 12.12 39주기였던 2019년 12월 12일엔 이들이 중식당에서 ‘쿠데타 기념’ 호화 만찬을 즐기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여기에 이들이 장악한 부는 자손에게 대물림되어 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뼈아픈 건,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와 촛불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를 거쳤음에도 그들이 저지른 죄과에 대해 제대로 법적·정치적 책임을 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전두환은 아무런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났다)
보수 개신교계의 죄책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경직, 정진경, 김준곤 목사 등은 서울 시내 유명호텔에서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불러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를 열고 그를 축복했다.
전두환은 12.12로 군권을 장악하고, 이를 발판으로 대권을 거머줬다. 이 때문에 박정희 군사정권 이후 모처럼 찾아온 '서울의 봄'은 짓밟혔다. 그리고 광주는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개신교계는 오히려 그를 불러 축복했다.
우리 사회가 이 점을 누차 지적했지만, 여전히 개신교계는 반성을 모른다. 오히려 더욱 극우화되었고, 보수 정치세력의 뒷배 구실을 드러내놓고 한다. 앞서 언급한 2019년 12월 12일 호화만찬 자리엔 김장환 목사도 함께했었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영화가 흥행하면서 영화를 본 관객들, 특히 '그 시대'를 겪지 못한 MZ 세대들이 새로이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 폄하할 수 있겠다. 그러나 숨겨져왔던 역사를 들추는 건 늘 예술의 몫이었다. 과거 연극·소설이 그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영화로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영화의 흥행이 아픈 역사를 일깨운 점은 반갑다. 다만 반짝 관심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고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면 반드시 주목할 지점이 있다. 영화는 전두광 사령관과 정상호 참모총장의 갈등에 집중한다. 물론 사실에 부합한다. 실제 정승화 참모총장은 전두환 사령관을 한직으로 보내려 했고, 이 점은 전두환 사령관이 12.12를 모의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전두환과 정승화 사이의 갈등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 18년간 권좌에 머물렀던 고 박정희 대통령은 군을 통치기반으로 했다. 고 박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 했지만 군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핵심은 누가 군을 장악하느냐였다. 그리고 이 문제에 답은 1979년 12월 12일 이후 분명해졌다.
전두환 사령관이 정승화 참모총장 연행에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군은 자신의 수중에 들어왔다. 전두환 사령관이 12.12 쿠데타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권력 실세로 부상했고 최고권력인 대통령까지 거머쥔 핵심 원동력은 군 장악에 있었다. 그리고 12.12 쿠데타가 전두환 개인에게는 물론 한국 현대사에 변곡점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영화가 전두광과 정상호 사이의 갈등구도만 부각한 것 같아 아쉽다)
지금은 어떨까? 과거 권력이 군에서 나왔다면, 지금은 검찰 아닐까? 이래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가? 또 한 번 먹먹함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