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영화리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by ironmin

울산의 한 시인이 외치듯이 적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여러분 글을 쓰세요! 오늘 밖에 쓸 수 없는 글이 있습니다! 지나간 글은 돌아오지 않아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떠올랐던 단어와 나열되던 문장, 벅찼던 감정이 시간이 지나 쓰려고 하면 잘 담기지가 않곤 한다. 운 좋게 정확히 같은 문장을 기억해 썼다고 해도, 시간이 지난 글은 어째 영 정이 안 갈 때가 있다.


글감은 어렵게 떠올랐다가 쉽게 사라지는 것 같다.


지금 내 리뷰가 바로 그런 글이라 할 수 있다. 2월에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고자 했으나 미루고 미루다 5월인 지금에야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그때의 감동을 잘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운 좋게도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대학교 후배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 선배가 되어 상황이 역전되었다. 학생 땐 참 귀엽던, 지금은 전혀 귀엽지가 않은 그 친구가 말했다.


“형. 형이 추천해 준 영화 엄청 재밌던데?”


“무슨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있잖아요.”


적어도 7, 8년은 전에 봤던 영화라 추천해 줬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추켜세울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는 게 좋다.


“내 추천은 실패 없지!”




그 친구는 그 영화를 보고 ‘아, 내가 제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난 조금 의아했다. 그냥 조금 힐링 되는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럴만한 내용이 있었나? 나이가 들어서 보면 또 다르다는 말을 믿고 다시 한번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다시 보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랜 시간 나를 괴롭히고 있는 ‘자학적 태도’라는 고요한 호수 한가운데 돌멩이 하나가 퐁당- 하고 떨어졌다. 그 돌멩이 하나가 일으킨 파동이 호수 전체로 퍼져 일렁이는 것 같았다.




일단은 영화리뷰이니 만큼 간단한 줄거리를 적으려고 했다. 하지만 석 달 전 본 영화의 디테일한 설정들이 잘 기억나지가 않았다. 월터가 사진을 찾으러 떠나는데, 왜 월터가 찾아야 했는지 도통 오리무중이다.


그렇다고 영화를 다시 보자니 비효율적이고, 줄거리를 검색해 가져오자니 왠지 내 글이 아닌 것 같다는 자존심이 발목을 잡았다. 결과적으로 이 리뷰는 영화를 소개하는 제대로 된 리뷰가 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난 리뷰 앞에 ‘내 맘대로’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썩 마음에 들었다. 이런저런 문제를 단 네 글자가 해결하다니. 지금부터 아주 내가 내키는 대로 이 영화의 줄거리를 휘갈기려 한다.




*




월터는 오랫동안 한 잡지사에서 별 볼 일 없는 일을 하는 직원이다. 누군가 필름을 보내면 그 사진을 인화하는 게 월터의 일이다. 잡지사의 밝고 화사한 공간과 다르게, 월터가 배정받은 공간은 제대로 된 조명조차 없이 어둑어둑하다. 난 사진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흔히 사진을 인화하는 공간은 그렇게 묘사된다.


그 공간이 마치 월터를 잘 표현하는 것 같다. 홀로 어둑한 공간에서 일과를 보내는 월터가 밝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사무직들과 대비가 된다. 그래서인지 월터는 혼자서 굉장히 많은 상상을 한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서 초능력을 이용해 갇혀있던 강아지를 구하는가 하면, 조롱하기를 일삼는 직장 상사에게 대들어 결투를 벌이기도 하고,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멋들어진 어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빠져나온 월터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그런 월터는 잡지사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숀’이라는 사진작가의 마스터피스가 사라진다. 그가 분실한 건지, 숀이 안 보낸 건지. 그렇게 월터는 지금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떠한 이유로 오지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숀을 찾아 나서게 된다. 오지로 향한 월터의 모험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과연 그는 숀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숀이 최고의 사진이라고 말한 마스터피스는 어떤 사진일까?




*




줄거리를 쓰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머릿속에서 스토리를 더듬고 내용을 압축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노력은 했다만 줄거리의 목적인 독자들의 흥미 유발에 성공했을지는 모르겠다.




월터가 짝사랑하는 상대의 아들에게 보드 타는 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이 있다. 음침하게만 보이던 월터가 웬걸? 꽤나 준수한 보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에게 어필하고 상대와 가까워지게 되는 장치로 쓰였을지도 모를 짧은 장면이었지만 난 조금 울컥했다.


대화 도중 상상 속에 빠져 멍하게 있기도 하는, 남들이 보기엔 이상하기만 한 월터도 어릴 땐 꿈이 있는 소년이었다. 보드를 잘 타고 싶어 몇 번이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났으리라. 월터는 끊임없이 고비를 넘기고 한 발짝씩 나아가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음침하고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 짧은 장면에 잊고 있던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가 떠올랐다 하면 너무 확대해석을 한 것일까?




나는 늘 해야만 하는 게 있는 사람이다. 워라벨이 좋은 직업을 원했던 이유는 퇴근 후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워라벨이 좋은 직장을 근 3년 정도 다니고 있지만, 막상 글을 쓴 날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열심히 산다는 것, 퇴근 후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성공은 그런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나의 비교 대상은 그런 사람들, 그리고 퇴근 후 매일같이 글을 써 내려가는 상상 속의 나다. 그래서 현실의 난 늘 실패한 채로 있다.


이게 앞서 말한 나의 ‘자학적 태도’이다. 글을 쓴다는 꿈을 가진 이후부터 글을 쓰지 않는 모든 날 가져온 태도이니 아주 깊고 커다란 호수가 되어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자꾸 월터가 호수에 돌멩이를 하나씩 휙휙 던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요하기만 하던 호수가 자꾸 조금씩 일렁이는 그런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다.




직장 내에서 겉도는 듯한 월터지만 가족을 잘 챙긴다. 가족이 이사할 때 큰 피아노를 옮기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나이 든 월터의 엄마와 엉뚱한 여동생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월터를 찾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도 월터는 가족의 일을 해결한다. 또 동생이 준 이상한 장난감을 내내 들고 다니고,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쓴다.


가만 보고 있으면, 월터는 맞지 않는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부터 주변을 챙기는 것까지 자신의 삶에 아주 충실한 사람이다.


그리고 매일매일이 실패인 나지만, 여태 지각 한 번 한 적 없다. 출근 정시 1, 2분 전 출근으로 성실한 느낌은 없을지 몰라도, 지킬 건 지키고 있다. 몇 분 늦게 퇴근하더라도 할 일은 끝내려 한다. 또 주에 두세 번 정도 헬스장을 가고 있고 가끔씩 풋살도 한다. 타지에서 생활하기에 가족을 잘 챙기긴 힘들지만, 가족행사엔 참석하려 애쓰고 곧잘 연락도 드린다. 여러 지역에 친구들도 많아서 한 달에 한 번은 타지로 향하는 것 같다.




월터는 오지로 모험을 떠나며 가치가 생기는 사람이 아니라, 원래부터 가치 있고 멋진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나 또한 내 삶에 충실하고 멋진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늘 실패한 내가 아니라 잘 살고 있는 나.


‘내가 제대로 살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던 후배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럼에도 이 영화 한 편으로 내 태도가 완전히 뒤집힌 것 까진 아니다. 여전히 종종 우울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잘 살고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자주 드는 것 같다.


영화를 소개했다기보단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 남긴 리뷰가 됐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아직 못 본 사람이 있다면 보고 힐링 받으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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