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영화리뷰2 <위플래쉬>

by ironmin

처음 영화리뷰를 할 때 디테일한 설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썼던 ‘내 맘대로’라는 수식어. 아무래도 이 수식어를 계속 써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역과 관련된 일을 하지만 전문가인지 물으면 잘 모르겠다.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학사학위 가지곤 전문가라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고 영화를 많이 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영화의 역사나 기법 같은 걸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비슷하게 생긴 외국 배우를 혼동하기도 하니, 네가 무슨 영화리뷰를 하느냐는 친구의 타박도 이해는 간다……. 아니다, 글의 흐름상 이해한다 했지만, 그놈은 아주 사람 열받게 하는 데 도가 튼 놈이라 여기 박제시키는 것으로 작게나마 복수를 하는 게 좋겠다.


어쨌든 이건 평균 이하가 쓰는 리뷰일지도 모르겠다.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는 어떤 사람의 리뷰가 경쟁력이 있을 것 같진 않다. 조금 더 냉정히 말한다면 읽을 가치가 없는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리뷰를 쓰는 이유는 뭘까?




첫 리뷰에서 보았듯 나는 영화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애쓰지 않는다. 그러기엔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얕고 또 빈약하다.


가뜩이나 아는 것도 없는데 사회는 점점 빠르고 복잡하게 변해간다. 그리고 거기에 발맞춰 끊임없이 정보와 지식을 채운다는 건 매우 피곤한 일이다. 차츰 시대에 뒤처지기 시작할 나이가 되었다.


이렇다 보니 가끔은 잘 모르는 주제로 대화를 해야 할 때도 생긴다. 그럴 때마다 약점을 채우기보단 임시방편으로 메꾸길 택했더니, 실눈을 뜨고 입을 약간 오므리고선 고개를 살짝씩 끄덕거리고 있기를 잘하게 됐다. 하지만 글에는 표정도 추임새도 없기 때문에 아는체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난 영화의 줄거리만 간략하게 소개하고는,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나 내 삶을 돌아보게 된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됐다. 때문에 내 리뷰는 꿈보다 해몽일 수도 있고, 감독의 의도를 털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고, 때론 운 좋게 얻어걸릴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영화리뷰라는 제목을 붙이고는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한다는 것이다. 영화 후기가 궁금해서 들어온 사람들에겐 활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가져갈 정보는 별로 없다는 점에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주섬주섬 꺼내 드는 내 이야기는 평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여러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의 리뷰를 읽고 본인만의 ‘다음에 볼 영화 리스트’에 내가 소개한 영화를 담아 가면 좋겠다. 또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가끔은 내 리뷰들 중 괜찮은 몇 편을 엮어서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과 같은 제목으로 책이 나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기도 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양옆에서 정장을 갖춰 입은 두 사람이 내게 “유퀴즈~?”라 물으면, 틀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엉성한 표정을 짓고는 “예스!”라고 대답하는 망상까지 끝마쳐 놓았다. 삼행시라도 시키면 어떡하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리뷰를 쓴다는 게 내게 꽤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보았듯이 내가 리뷰를 쓰는 이유는 자기만족이다. 그럼에도 나의 자기만족이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휴식이 되길 바라고, 또 감성적인 순간을 선물하게 되길 바라며 ‘내 맘대로-’ 리뷰를 조금 더 이어가 보려 한다.




*




이등병 시절, 말년 병장과 함께 초소 근무를 섰던 때를 종종 떠올린다.


“전역하면 뭐 할지, 계획 있으십니까?”


그때의 난 머리만 짧았지 군인이라기엔 조금 어영부영한 신병이었고, 병장은 그런 사소한 것들은 이제 아무래도 좋은 예비 전역자였다. 그래서 초소 근무와 같이 단둘이 시간을 보낼 땐, 사소한 질문도 던지고 별거 없는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곤 했다.


“난 전역하면 진짜 열심히 살 거다. 열심히만 살면 성공은 무조건 따라오니까.”


병장은 깨워도 돌아서면 다시 자고 있을 정도로 게으른 게 특징인 사람이었지만, 초소 근무만 들어가면 노력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곤 했다. 비록 관객이 나 하나뿐이었지만 병장의 연설은 성공한 연설이었다. 그 유일한 관객이 서서히 군대의 기억을 잃어가는 중에도, 열심히 살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큼은 10년이 넘도록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 리뷰할 영화는 최고가 되기 위해 손에서 피가 터질 정도로 드럼을 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위플래쉬>이다.




*




위플래쉬.jpg 출처: 영화 <위플래쉬> 포스터




-줄거리


미국 음악 명문대인 셰이퍼 대학. ‘앤드류’는 위대한 드러머를 꿈꾸며 셰이퍼대에 입학한다. 하지만 셰이퍼의 일류 밴드는커녕, 수준이 낮은 하류 밴드에서도 그는 단지 드럼 보조일 뿐이다. 다행인 점은 앤드류는 거기에 만족하지도, 꿈을 포기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늦은 밤, 빈 연습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드럼 연습에 한창이던 앤드류는, 잠시 뒤 낯선 시선을 눈치채고 연주를 멈춘다. 눈앞의 사람은 다름 아닌 ‘플레쳐’, 셰이퍼 일류 밴드의 지휘자였다. 묘한 말을 남기고 떠나는 플레쳐.


두 주인공이 나눈 첫 대화가 오묘한 느낌이 들어 복선이나 숨은 뜻이 있으려나 궁금했지만 결국 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얼마 뒤 플레쳐는 앤드류를 일류 밴드로 스카웃한다.


일류 밴드로 왔지만 여전히 보조의 자리에 있는 앤드류. 하지만 플레처의 예민한 음악적 감각에 드럼 소리가 거슬리게 되고, 기회의 공정함이란 이유로 앤드류는 금방 메인 드럼의 기회를 얻는다. 쉽게 찾아왔다곤 하지만 그 기회는 천금과도 같다. 그간 갈고닦아온 실력을 선보일 때다.


그러나 긴장한 탓일까. 도입부에서조차 플레처의 템포를 따라가지 못한다. 플레처가 이해하길 한 번. 또 달래길 두 번. 그는 철제 의자를 집어 들고 앤드류의 머리를 향해 던져버린다.


우당탕-!


음알못인 나로서는 박자가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플레처가 의자를 집어던질 땐 정말 깜짝 놀랐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에게 적당히란 단어는 없다. ‘어설픈 칭찬으로는 학생들의 재능을 꽃피울 수 없다’라는 신념으로 밴드를 이끄는 플레쳐. 그의 교육은 폭력과도 같다. 그는 메인 드럼의 자리를 놓고 앤드류를 포함한 세 사람의 경쟁을 부추긴다. 기회의 공정함 앞에서 주인공의 특혜 같은 건 없다.


최고의 자리가 눈앞에서 잡힐 듯 말 듯 하다. 메인에서 보조로 밀려나는 순간마다 드럼을 때려 부수고, 앞으로 뛰쳐나가 플레처의 멱살을 움켜쥐고 싶다. 손에서 피가 터져 나와도 드럼 스틱을 놓지 않는 앤드류. 그리고 그런 그를 더욱 몰아세우며 경쟁을 부추기는 플레처.


꿈을 향한 처절한 노력은 이윽고 광기 어린 집착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드럼 소리가 빠른 템포로 고막을 때린다. 마치 폭우가 쏟아지는 것 같다. 온몸을 땀으로 적신 앤드류. 피에 젖은 드럼 스틱.


두 사람의 집착은 그들을 어디까지 내몰려는 걸까?




*




노력의 목적은 성공이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엔 실패도 있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실패엔 나름 일가견이 있다. 20대 후반, 경찰을 목표하던 난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손을 벌린다는 것. 좀처럼 미친 듯이 노력하지 못한 것. 결과를 묻는 전화벨이 울리는 것. 위로를 받는 것. 응원받는 것. 마음을 굳게 다잡는 것.


… 그리고 다시 실패하는 것.


이런 것들의 반복이 나를 좀먹어 갔다. 목표량을 채우지 못한 매일매일이 실패다. 온종일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하길 수년. 자신감이고 자존감이고 온데간데없다.


너무나 비참한데 그걸 내 손으로 만들고 있는 거라서, 장수생의 비애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다른 길은 어떠냐는 수많은 조언에도 난 금방이라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관성이었나 보다.


끝내 난 이겨내지 못했다.


가끔 초소에서 병장이 했던 말을 되뇐다.


“열심히 하면 성공은 따라온다.”


그러니 난 열심히 하지 않아 실패한 것이다.


<위플래쉬>를 보면 알 수 있다. 열심히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처참해서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다. 노력의 가치는 성공을 통해 빛을 발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하는데, 끝내 성공하지 못한 실패는 내게 무엇으로 남았나. 실패한 경험이 일종의 낙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후 다시 수년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난 극복하는 과정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내가 지금 불행하느냐? 난 지금 노력해 봤자 성공하지 못하면 남는 것도 없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근데 왜 그렇게 썼느냐 하면, 지금부터 하려는 말이 스스로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친 듯이 노력해서 목표 쟁취해 내는 영화 속 주인공들은 누가 봐도 멋지다. 그러니 주인공이다. 나도 그런 주인공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목표라는 건 대체로 희소하기 때문에 얻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세상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보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들이 각자의 정도로 노력한 끝에, 각자 깊이가 다른 상처를 안고서 사회로 떠밀려 나온다. 잠깐 우물쭈물하긴 해도 그런대로 또 잘 살아간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끔 우울한 마음이 생기지만 또 가끔은 즐겁다. 불투명한 앞날을 막막해하다가도 오늘 하루 무탈하게 출퇴근 한 걸로도, ‘잘 살고 있구나’ 하고 희망차게 느낄 때가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처럼 어쩌면 경찰이 되지 않은 게 나에겐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합격하고 쟁취해 낸 사람들을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다. 보장되지 않은 목표를 향해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노력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그들은 한때 나의 동료였다. 그들이 우리가 왜 동료냐 하고 손사래 칠지 몰라도, 동료의 성취는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다만 그러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겪고 너무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연히 얻지 못할 수 있는 거고, 그러면 또 얻지 못한 채로 다시 여정을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위플래쉬>에서 앤드류의 꿈을 향한 갈망과 처절한 노력은 관객들에게 동기부여가 돼준다. 원래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열정적이어지는 법이다. 앤드류의 열망과 열정, 노력이 빠르고도 웅장한 드럼 소리와 어우러져서 관객들에게 쏟아진다. 관객들은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어떤 자극을 받고, 괜히 간지럽고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광기와도 같은 집착을 보고 있으면서도, 분명 생기가 가득 찬 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내일도 열심히 나아갈 힘을 얻길 바란다.


그리고 이루지 못할까 봐 불안하거나 실패한 경험으로 힘든 사람들에겐, ‘그럴 수 있다, 그래도 괜찮을 거다’ 하고 이 리뷰가 잠시나마 그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위플래쉬> 말미의 반전과 희열, 카타르시스를 놓치지 않길 바라며, 이번 리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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