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영화리뷰5 <와일드카드>

by ironmin

12월 25일. 산타클로스를 보고 싶다며 버텼지만 결국 잠을 이기진 못했다. 등굣길에 보이는 어르신들께 인사도 꼬박꼬박 잘 했는데 아쉽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오늘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니 만화나 왕창 봐야겠다 하고 리모컨을 들었다. 아빠가 뉴스를 틀거나 엄마가 드라마를 틀기 전까진 온종일 만화 삼매경이다.


드래곤볼에선 손오공이 외계인들을 무찌르고, 머털도사에선 머털이가 108 요괴를 무찌른다. 가만 보면, 어릴 때 접하는 많은 스토리들이 하나같이 권선징악이란 주제를 품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레 착하게 살아야 하는구나, 착한 게 멋진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 다니는 게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산타클로스부터 온갖 만화들이 착하게 살라 그래도 나의 본성은 악했던 걸까?


동네 꼬마들이 모여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면, 꼭 도둑이고 싶었다. 술래잡기에선 잡아야 하는 책임을 가진 역할을 ‘술래’라 그랬는데, 이 놀이에서는 그걸 경찰이라 그랬다. 경찰이 되면 어쩐지 답답했지만, 도둑이 되면 신이 나서 비명을 질러대며 도망 다녔다. 나만 도둑이고 싶었나? 술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나?


차츰 커가면서 본능대로만 행동할 순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그래서 눈치가 생겼고, 공교육을 통해 도덕과 규범을 익혀 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학업이 끝나고, 직업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쓴 글에는 책임이 없었다. 그리고 세상은 책임이 없는 이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그제야 난 비로소 술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본 영화는 스스로 술래의 책임을 짊어진 경찰들의 이야기, <와일드카드>이다.




출처: 영화 <와일드카드> 포스터




-줄거리


방제수 형사가 용의자의 뒤를 쫓아 달리고 있다. 그는 늘 뒤쫓는 게 일이다 보니 저들보다 앞서 달리는 일이 없다. 차두리보다도 빠르고 멀리 뛰는 것 같은 용의자는 철책을 넘어서며 안도하지만, 앞엔 오영달 형사가 버티고 있다. 아무리 빨라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선 어림도 없다.


뛰어봤자다.


강남서 강력반 관할구역에 퍽치기 살인강도 사건이 연이어 터진다. 퍽치기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행인을 흉기 등으로 가격한 후, 금품을 빼앗는 범죄이다. CCTV를 통해 4인조의 범행임을 확인한 강력반은 연쇄 범죄로 판단하여 비상을 걸고 수사에 총력을 기울인다.


방제수와 그의 사수인 오영달 또한 추가 피해를 막고자 애쓰지만 4인조라는 특정 만으론 수색이 여의치 않다. 그들은 결국 조폭 도상춘을 찾아가고, 조폭의 조직망을 이용해 수사 범위를 좁히며 4인조의 행선지를 파악해 간다.


한편, 퍽치기 4인조는 한두 번 범행에 성공하면서 점점 과감해진다. 처음 인적이 드문 곳에서만 범행을 저지르던 그들은, 급기야 클럽에서 만난 여자들을 살해해 버린다.


좁혀가는 경찰의 수사망 속에서 그들의 흔적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드디어 방제수와 오영달은 4인조와 마주치고, 추격 끝에 방제수는 권총을 집어 든다. 하지만 그런 방제수를 만류하는 오영달. 결국 4인조를 놓치고 만다.


“왜! 왜 못 쏘게 하는 거야, 왜!”


“너, 총으로 사람 쏘면 기분이 어떨 거 같냐? 출근할 때 개만 쳐도 하루 종일 기분이 더러워, 인마. 그게 사람이면 기분이 어떨 거 같냐고.”


과거 총기를 사용해 용의자를 죽인 적 있는 오영달은 후배인 방제수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란다.


이번엔 놓쳤지만 아직 수사는 끝나지 않았다. 4인조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흔적을 남겼다. 경마장에서 4인조 중 한 명을 검거해 낸 강력반. 그를 이용해 남은 3명 모두 일망타진할 마지막 작전을 시작한다.








영화 중간중간 오영달이 총기 사용으로 과잉 진압했던 일에 대해 조사를 받고 징계가 내려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공권력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요즘은 경찰의 힘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형식일 뿐인 주제에 복잡하기만 한 절차법은 경찰의 행동을 옥죈다.


그 결과 술에 취해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진상을 피우는 시민에게, 경찰은 귀가하시라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문제는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경찰은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하고 소극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이다. 뉴스에서 정당한 경찰력을 행사하지 못해 추가 피해를 만드는 경찰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과연 한 경찰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교권은 상황이 더 안 좋아 보인다. 추락한 교권에 교사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서 오는 보람에 선생님을 꿈꿨을 테고, 힘겹게 좁은 문턱을 넘었을 테다. 하지만 그들의 꿈과 현실 간의 괴리는 현대 사회의 그 어떤 직업보다 컸을 것이다.


하지만 공권력이 떨어진 건 모두 과거로부터 온 것이다. 경찰들이 무고한 시민을 잡아다 고문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낸 역사가 있다. 그리고 선생들은 학생의 뺨을 후려치기 위해 셔츠 소매를 걷고 손목시계를 풀었다. 그것은 교육적 체벌이 아니라 약자를 향한 폭행이었음에도, 그들의 폭행은 사회가 묵인했고 처벌받지 않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역사를 알고 또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쉽게 경찰에게 절차의 자유를 줄 수도, 흔쾌히 교사에게 훈계의 자유를 줄 수도 없다.


어떤 게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판단하고 주관을 가지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이 과거처럼 강할 때나 지금처럼 약할 때나, 스스로에게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하며, 존경받아 마땅한 공직자들 또한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런 양심적인 사람들을 생각할 때 특정 직업을 사회적 이슈만으로 이야기하는 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영화 <와일드카드>는 2003년 영화로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사람들이 쓰는 말투나 억양도 달라지고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행위의 기준 또한 많이 바뀌어있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운다거나, 싫다는 이성에게 매일 같이 찾아가 불심검문을 하는 영화 속 장면을 보면, 이런 식으로 세대 차이가 생겨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새 세상이 많이 변했다.


오래된 영화였기에 별로 큰 기대가 없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영화의 내용 자체는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예상과 달랐다. 정진영 배우와 양동근 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했다. 그들의 뛰어난 연기는 영화에 재미와 매력을 더해주었고, 덕분에 영화에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다. 내용이 취향이 아니었음에도 내게 재미있는 영화로 남게 됐을 정도로, 그들의 연기는 아주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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