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본 영화는 영화 감상을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의 추천을 받고 본 영화이다. 그 덕분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굉장히 재밌게 봤다.
하지만 리뷰를 쓰고자 했을 땐, 몇 날 며칠을 한 페이지도 채우지 못하는 스스로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지금껏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리뷰를 시작했는데, 난 재판을 해본 적도, 큰 권력 앞에 억울한 일을 당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화두를 던지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아침, 이전 편인 ‘와일드카드’에 누군가 댓글 남겼다는 알림이 왔다. 업로드한 지 꽤 지난 글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난데없는 타이밍이었다. 다음 글이 기대된다며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남겨진 댓글.
하지만 난 그것을 마냥 긍정적인 반응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 ‘소수의견’을 추천해 준 친구가 남긴 댓글이었기 때문이다.
싸늘했다. 이런 감정은 마감을 앞둔 작가의 마음과 비슷한 것일까? 아니면 말하지 않고 말하는 친구의 오묘한 모습에서 오는 서늘함일까?
그 댓글을 계기로 다시 텍스트 작성용 파일을 켰다. 그리고 리뷰가 어려운 지금의 상태를 솔직하게 쓰기로 했다.
참, 이럴 때 보면 나도 이상한 데서 고집이 있다. 쓰기가 어렵다면 쓰지 않고 다른 영화 리뷰를 쓰면 될 텐데, 어째서인지 리뷰하기로 마음먹고 본 영화는 꼭 리뷰를 쓰는 것으로 매듭짓고 싶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내가 쓰는 글의 퀄리티를 떨어뜨리게 될 텐데도 말이다. 사실은 비슷한 이유로, 이전 리뷰 중엔 별다른 감상이 없는 리뷰들도 더러 있다.
그래도 막막하기만 하던 리뷰를 여기까지 쓴 것만으로도 한시름 놓인다. 꽤나 어렵게 쓴 여섯번째 리뷰, 이번에 본 영화는 <소수의견>이다.
-줄거리
재개발 지역의 철거민들은 용역 깡패들과 경찰의 진압 작전에 저항한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비명소리. 사람들이 쇠 파이프를 휘두르며 거친 소리를 내뱉고, 이따금씩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현장. 철거민 박재호는 어린 아들이 현장에 휩쓸리지 않도록 비어 있는 교회에다 그를 숨긴다.
잠시 뒤, 작전을 지휘하던 경찰 팀장은 다급한 무전을 받는다.
-사고가 났습니다!
-무슨 사고?
-교회 쪽에서 사람이 다쳤습니다!
애석하게도 교회에서 박재호의 아들과 경찰 한 명이 사망하게 되고, 박재호는 경찰을 죽인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만다. 아들이 철거 깡패에게 죽자, 화가 난 박재호가 근처에 있던 경찰을 죽여버렸단 것이다.
윤진원 국선변호사는 피고인이 된 박재호의 변론을 맡고 구치소로 향한다. 그런데 수감된 박재호는 경찰과는 상이한 주장을 한다.
“내 아들 죽인 새끼. 그거 깡패 새끼가 아니라 경찰이오.”
“경찰이요?”
원래 피고인들은 억울한 사연이 많다. 그래서 윤진원 변호사는 이를 무시한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경찰조사 서류의 열람을 막는 검사와 살인 현장을 곧장 청소해 버린 경찰들의 이해할 수 없는 조치들, 그리고 이번 사건을 들쑤시는 신문기자.
“윤진원 변호사님?”
“무슨 일로?”
“이번 사건... 문제가 좀 많죠?”
신문기자 공수경은 윤진원이 캐치하지 못한 정보를 제공한다. 철거 깡패가 사람을 죽였는데, 현장에서 체포하지 않았다는 것.
“사람이 죽는 순간, 거기는 철거 현장이 아니고 살인 현장이에요. 그런데도 경찰이 용의자를 놔두고 작전을 계속 벌였다?”
윤진원은 소설을 쓰느냐고 대꾸하며 돌아서지만, 마음 속에선 의구심이 커져만 간다.
그는 사건 관련 자료를 검토하던 중, 철거민들과 시행사 사이 ‘제소 전 화해’를 서울시가 알선했다는 걸 알게 된다. 제소 전 화해는 법적 분쟁이 생기기 전 미리 화해 문서를 남겨놓는 것으로, 합법적이긴 해도 갑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서이다.
“그런데 이걸 서울시가?”
이권과 압력이 개입해 있음을 느낀 윤진원은 다시 신문기자 공수경을 찾고,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인 박경철 국회의원을 만난다. 그리고 한동안 박경철 의원의 기사를 내지 않는 조건으로 정보를 제공받는, 이른바 공조가 시작된다.
“그 무식한 철거 깡패들을 용역으로 썼는데, 이게 웬걸? 철거민들이 1년을 넘게 버티네? 대단하지. 그러니 위쪽에서 조합원들이 계약 해지 내용증명을 날렸어. 거기 재개발하는 데 시공비만 3조 5천억이고, 조합이랑 지자체랑 기타 등등 들어간 비자금만 수백억이야. 그러면 그 어마어마한 돈이 어디서 나오겠나? 건설사가 현금을 쥐고 있을 거 같아? 이자만 벌써 80억이 넘었어, 그거. 근데 경찰은 뭐가 급한지 바로 진압을 시작했네? 경찰 진압 수칙에도 어긋나게 말이야.”
공수경 기자가 박경철 의원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주민들과 단 한 차례도 교섭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 근데 거기서 애가 죽었어. 골치 아프게 된 거지. 걔네 입장에선 경찰도 죽은 게 그나마 다행인 거야. 문제의 본질을 싹 감춰주거든.”
그렇게 말하며 박경철 의원이 건넨 서류에는, 박재호 사건을 덮기 위해 청와대까지 나섰던 정황이 담겨있다.
“큰집에서 개입했다는 얘기인가요?”
“타이밍이 절묘했단 얘기지.”
공수경 기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저 이거 기사 씁니다.”
“쓸 수 있겠어? 이게 다 추측인데?”
박경철 의원을 통해 윤진원과 공수경은 사건의 전말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그들은 국선으로선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절친한 형이자 민사 변호사인 장대석 변호사를 찾는다.
“형, 이거 국가배상 청구할 수 있을까?”
“안되지, 왜냐하면 넌 국선이고, 국가는 너의 직장이니까.”
“...그럼 형이 하자.”
장난기 섞여 있던 장대석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야 이거는... 내 명의 좀 빌려다 쓰고 그러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야.......”
“형 이거, 경찰 작전 중에 나온 피해야. 국가에 책임이 있다니까!”
그들은 끈질긴 설득 끝에, 속물이어도 정 많은 인간, 장대석 변호사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래서, 얼마 청구할 건데?”
“100원.”
“돈은 필요 없으니까 잘못을 인정해라? 국가가?”
검사도, 판사도, 심지어 법과 국가마저도 보호하지 않는 피고인을 위해 월급 받는 국선변호사, 이혼 전문 민사 변호사, 고집불통 신문기자가 뭉쳤다. 국가배상 청구 100원! 그들은 과연 억울한 박재호의 ‘소수의견’을 납득시키고 재판을 승소로 이끌 수 있을까?
‘영화는 영화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영화를 현실과 아주 떼놓고 볼 수만은 없다. 영화 <소수의견>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아니지만, 권력이 악용되고 이권에 따라 소수의견 쯤은 묵살해버리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무리 현대 사회가 과거에 비해 괜찮은 사회일지라도, 현대 사회를 아무런 문제 없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빈곤에 대한 문제라거나, 개인주의 속에서 개인이 갖는 정서적 문제, 환경 문제, 각종 학대와 폭력 문제, 넘쳐나는 갈등들, 사이버 범죄 등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문제들이 즐비해 있다.
그래서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언젠가 현대 사회가 격변을 맞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어떤 사회로 변화하는 정도로 매우 큰 격변 말이다. 현대 사회가 합리적으로 보일지언정, 그 이면을 가득 채운 사회문제들은 지금의 구조상 해결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면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나요?’ 하고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유토피아와 같은 완벽한 사회를 그려보는 건 쉽지가 않다.
다만, 요즘 AI의 발전이 이목을 끌고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 바둑기사와 바둑을 둘 때도 굉장히 놀라웠는데, 그 후 10여 년 동안 AI는 더욱 급격한 발전을 했고, 이미 일상 여러 곳에 녹아있는 게 보인다. AI가 스스로 운전을 하는 자율주행 기술을 보면 ‘운전대를 잡는다’라는 표현도 머지않아 고어가 될 것만 같다.
알파고가 바둑을 뒀을 때 한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AI가 인간의 일을 모두 대체한다면, 인간은 뭘 해야 하지?”
한 학부생이 답했다.
“그래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을까요?”
“아니, 모든 걸 AI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래도 인간은 일을 해야 하나? 왜 인간은 일을 해야 하지?”
그때는 학부생 중 누구도 교수님께 만족스러운 답변을 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난감하기만 하던 그때의 질문은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사냥을 하고 수렵‘채집을 하던 원시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게 노동이란 것인데, 정말로 인간에게 ‘노동의 종말’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뭘 해야 할까? 정말 먹고 놀기만 하면 될까? 희소 자원은 어떻게 분배될까? 갈등은 누가 해결해 줄까?
과학의 발전은 사회변화를 이끈다. 노동이 사라진 사회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일 것이다.
재미있는 상상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사회가 과연 늘 더 나은 사회로 변해가고 있는지, 미래 사회는 지금보다 좋은 사회일지, 그리고 지금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누가 보면 미래를 그린 SF영화라도 본 줄 알겠다. 영화 <소수의견>을 보고 ‘검찰 개혁’과 같은 키워드를 떠올리긴 했지만, 내가 다루기엔 아직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관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게 봤다. 불합리에 맞서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긴장감이 고조됐고 악역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에서 속이 다 시원해졌다. 한 번쯤 감상해 보시길 바라며 이만 여섯 번째 리뷰를 마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