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취미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대학교 친구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내가 예전 직장을 그만두기 직전이었으니 거의 8년 만이다. 점심시간 동안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었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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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내가 많이 변했다고 했다. 우선 외모. 살이 많이 빠졌다며 놀라워했다. 운동취미 때문에 체중 관리에 신경 쓰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8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10kg 가까이 살이 빠졌다. 동호인으로서 마라톤이나 3종에서 좋은 기록을 위한 이상적인 수치는 키 - 몸무게 기준 112~115 정도이다. 나는 현재 110 수준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정도이지만 정작 나 자신은 아직도 감량에 목말라있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라는 사람들의 말을 실감하고 있다. 1kg 줄이는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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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10분 정도 대화를 하다 보니 나의 외모는 금방 적응이 되었다고 한다. 자꾸 보다 보니 더 건강해 보이는 것 같다고도 하였다. 외모의 변화보다 더 놀라운 건 나의 말과 행동, 표정과 성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라고 한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졌다고. 지금의 내 모습이 무척 보기 좋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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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는 달랐다. 지금처럼 사람들과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웃기고 재미있으려 노력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가까이 다가가기 쉽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공감력도 부족하고 인정머리도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6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준비하며 몇 달 백수처럼 놀 때에는 마냥 좋았다. 노는 것도 지겨워질 때쯤 문득 생각이 들었던 건 지갑에서 직장 명함을 없애고 나니 스스로 내보일만한 나만의 것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세상모르고 혼자 잘난 맛에 살아왔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으며 무척 재미있었고 그 상황을 즐겼었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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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것들은 나 스스로 해냈다고 생각하고 그러지 못한 친구들은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때 생각했다. 세상이 여러 가지 기준으로 서열을 나누듯 나 또한 그런 갈라치기에 익숙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 스스로 한 번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가만히 보니 나보다 형편과 처지가 안 좋은 친구들과 나의 차이는 딱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저 다행스럽게도 좋은 부모님 아래 태어났다는 것. 무엇 하나 나 혼자서 해낸 것이 없었다. 그렇게 깨지고 맞으며 점점 둥근돌이 되어갔다. 아직도 모난 곳이 많다. 더 다듬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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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우빈은 매일 다섯 가지 감사한 일을 메모하는 감사일기를 쓴다고 한다. 예전의 나는 예의상 감사하다는 말을 남들에게 자주 하고 다녔지만 정작 마음속 깊이 나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는 감사한 일이 딱히 없었다. 감사의 마음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고 할까. 지금은 내 일상 하나하나가 감사하다. 숨 가쁘게 달리며 등 근육을 고정하고 리드미컬하게 팔 치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나 한가롭게 고민할 수 있는 새벽의 여유가 감사하다. 늦은 시간까지 일에 시달리지 않고 집에 일찍 들어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식사를 즐기는 저녁의 따뜻함이 감사하다. 예전 나의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어처구니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하루 10개까지도 매일 감사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많이 변했다. 부드러워졌다. 부모님 덕분이다. 부모님은 항상 그대로였는데, 부모님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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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고 많이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공격당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확고하면 내뱉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지금은 말 한마디를 해도 나의 생각과 언어가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인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나는 비속어와 욕설, 혐오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곤 했는데,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그런 말을 끊었다. 입 밖으로 그런 말을 쏟아내면 좋지 않은 에너지가 내 입 주변을 맴돌다가 아내의 배에 얼굴을 갖다 대고 태교를 할 때 태아에게 전달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거친 언어와 생각이 나오려 하면 아이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행동거지를 점검한다. 어른은 아이의 스승이고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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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다른 운동들을 꾸준히 해왔지만, 3종과 마라톤 유산소 지구력 운동을 하면서 나는 변했다. 요즘 기준에서야 달리기가 근사해 보이지만 내 몸의 입장에서는 사실 말도 안 되게 힘든 동작의 연속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지면의 충격을 계속 받아내는 고통의 지속이다. 스스로를 고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기분이 좋아지는 호르몬이 뿜어져 나온다. 베타엔도르핀. 그래서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은 쓸데없이 행복하다. 현대인이라면 분명히 어떤 고민이든 있을 텐데. 주변에 이 운동을 즐기는 사람을 보면 할부금 대출금이든 자녀 교육 문제든 아내와의 갈등이든 달리기를 한다고 해서 고민의 근원이 사라지거나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달리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진다. 행복해진다. 매일 새벽 이렇게 힘들고 행복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그냥 종일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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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한번. 이 운동은 힘들다. 어제 사이클을 타고 내려 4000m, 3000m 달리기 그리고 400m 질주를 네 번하고 오늘 새벽에도 사이클을 타고 잠실 트랙으로 이동해 웜업과 200m 질주 400m 불완전 회복 반복 달리기를 포함해 15km 정도를 땀 흘려 뛰고 나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 힘이 빠져 날카로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이 운동을 즐기게 되어 참 다행이다. 사람이 조금 더 사람다워진다. 아이에게도 나중에 권유해 볼까. 내가 좋아하는 걸 남에게 세련되지 못하게 권하게 되면 꼰대가 된다. 세련되고 매력적인 방법으로 어디 한 번 끌어들여봐야지. 지금부터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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