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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로소 Jan 15. 2024

6. 내 안에 방방 뛰는 어린아이가 있다

‘착한 아이’는 어디서 왔는가



“이 집 딸은 정말 어른스럽고 착해.”


그 말이 나에게 저주가 될 줄 몰랐다. 나는 얌전하고, 성숙하고 그리하여 어른들의 기준에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중에서도 성숙함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감정부터 올라오곤 한다. 내가 성숙할 수밖에 없는, 성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여섯 살에 외할머니 집으로 왔다. 엄마가 두 번째 이혼을 한 덕이었다. 우리는 큰외삼촌이 세 들어 살던 집에 주인 할머니가 거주하시는 본채에 작은 방을 얻어 들어왔다. 그 방에는 별도의 작은 부엌과 수돗물이 나오는 보일러실이 딸려있었다. 보일러실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의 욕실이 되었다. 나는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여 찬물과 섞어 샤워를 했다. 동생과 나는 여섯 살 차이가 난다. 여섯 살의 아이와 한 살의 아이를 방에 두고 엄마는 일을 나가야 했다. 어린 동생은 외할머니가 업고 안아야만 살 수 있었기에 나는 조금 더 혼자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가장 큰 일은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었다.


주인집과 한 지붕 아래 살며, 나는 조용하게 외로움을 달래는 법을 배웠다. 하루 종일 작은 소리로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살았다. 열두 살 무렵부터는 닥치는 대로 만화책을 읽었다. 만화 속 인물들과 교류하며 감성과 인격을 쌓아나갔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유일한 존재들 덕분에 외로움을 달랬다.


또, 주인집 어르신을 보면 깍듯하게 인사를 했고, 늘 살금살금 조용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렇게 나는 그 말을 듣기 위해 수동적으로 노력했다. 저 아이는 참 어른스럽다고. 참 착하고 조용하다고. 어른에게 인사도 잘하고 경우가 바르다고. 나는 정말 내가 그들이 말하는 ‘착한 아이’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니 더 많은 칭찬이 돌아왔다. 그렇게 ‘착함’은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엄마는 불 꺼진 방에서 삶의 기구함에 대해 토로했다. 엄마가 어떻게 이혼했는지, 지금 우리 의 형편이 어떤지, 회사에서 엄마가 어떤 부당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빠가 보고 싶은지 등등 내가 원하지 않아도 엄마는 끊임없이 말했다. 그 마법의 말들은 나를 아이로 두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더 빨리 어른스러워져야 했다. 나는 엄마에게 더 그럴듯한 효녀이자 친구이자 남편이자 보호자여야 했다. ‘성숙함’ 또한 습관이 되었다.


“마음 안에 방방 뛰어다니는 어린아이가 있군요?”


상담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그렇긴 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좋아했다. 동네 골목대장이었던 친척오빠와 친척동생을 대동하고 동네 남자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다. 자전거나 인라인은 나에게 발이나 다름없었고,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다. 놀이터 담벼락을 장난 삼아 넘다가 옷이 찢어진 적도 있다. 남자아이들이 놀려댈 때면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고 대걸레 자루를 들고 뛰어다니며 혼내주기도 했다. 여자아이들과 걸그룹을 결성해 커버 뮤직비디오 찍기 놀이를 하는 가 하면, 반 친구들의 사진에 그림판으로 친구들의 캐릭터를 소개하는 글을 반 카페에 연재하기도 했다.


그래,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밝은 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 또래와 어울릴 때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른들의 세계가 따로 있다. 어른 앞에 섰을 때 내 세계의 초점은 내가 아닌 그들에게 맞춰진다. 나를 착하고 성숙한 아이로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하여 나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들 앞에서 어른이 되려 한다. 내가 자라서 어른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약하고 바보 같은 모습은 숨겨야 한다는 것도, 나를 딱딱한 가면 뒤로 감추었다.


사회가 보는 나는 성숙하고, 차분하고, 얌전하며, 똑똑하고, 자신의 능력에 프라이드가 있는 썩 괜찮은 어른이다. 다년간의 사회생활로 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법을 잘 알기에. 나는 그럴듯하게 말도 잘하고 나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법을 알았다. 그래서 더더욱이, 나는 겸손하고 이성적이면서도 지극히 공감능력이 높고, 또 어른스럽게 굴 줄 알아야 했다.


특히 나의 성숙함이 가장 필요한 때는 따로 있다. 바로 상처받고 싶지 않을 때이다. 나는 기대하지 않은 척을 잘한다. 나는 사랑받고자 하는 기대가 없었던 척을 잘한다. 충분히 환영받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받지 않아도 괜찮은 척을 잘한다. 내가 무척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도, 상대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나는 그 상대에게 맞춰 나의 기분을 끌어내리는 법을 잘 안다. 나는 여행에 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하고 싶을 때, 참는 법을 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을 때 청중이 시큰둥한 반응이 있으리라 예상해 둔다. 나는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도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 호기심을 감추는 법을 안다. 함께하는 여행에 나만큼 기뻐하지 않아도, 고심해서 고른 식당에 함께 간 상대가 만족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는 법을 안다.


그리하여 나는 내 안에 방방 뛰어다니는 어린이를 두고, 자꾸 가만히 있으라고 끌어앉힌다. 나 혼자만 너무 기쁘면, 나 혼자만 너무 들뜨면, 나 혼자만 너무 기대하면… 그 뒤에 돌아오는 건 허무 밖에 남지 않을 테니까.


“내 안에 어린아이를 꺼내 놓을 때, 그걸 받아줄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을 거예요. 한마디로 맞장구를 쳐주지 않는 거죠. 그래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쌓였을 거예요. 장례식장에서 혼자 박장대소하고 있는 사람처럼요. 민망하고 뻘쭘한 경험도 상처가 될 수 있어요. 아이는 깊게 숨는 방법밖에는 대안을 몰랐을 겁니다. 나는 그런 애가 아니야. 나도 모르게 그런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보내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 아이를 숨긴다고 숨겨질까요? “


아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은 함부로 지울 수도 감출 수도 없다. 그건 나를 죽이는 일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튀어 나는 어린아이를 달래고 달랬다. 그럼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될까? 아니면 내 안의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을 개발해야 할까?


어쩌면 나는 감동이라는 감정에 약하고, 세상 사람들이 나보다 감동의 역치가 높은 걸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감동을 잘 받는다는 거다. 쉽게 기뻐하고 쉽게 슬퍼하며, 쉽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 감정이 이후에 나를 배신할지라도, 그게 어디 나쁜가? 그게 나쁘니 그만 멈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이런 내가 좋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때론 감정적일 정도로 내 마음에 예민하다. 신나면 신나는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티 내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덕분에 나는 나를 바라보고 나를 둘러싼 세계를 섬세하게 탐색할 수 있다. 예쁜 사람들을 발견할 줄 알고 그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넬 줄 안다.


그게 나다.


얼마 전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반 카페에 쓴 글들을 다시 보곤 깜짝 놀랐다. 거침없는 말투로 친구들과 실없는 장난을 치며 어울려 놀고 있었다. 남녀 가리지 않고 이야기도 잘했다. 어쩌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존재했던 학교 안에서, 나는 제법 나다웠는지도 모르겠다. 까불거리고 엉뚱하며 관심을 받으려 우스운 행동도 서슴없이 하는 그 나이대 아이처럼.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 나와 맞닿았던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결코 우습지도, 초라하지도, 바보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반짝반짝 빛났다. 친구를 사랑하고 아낄 줄 알고 솔직함으로 무장한 사랑스러운 마음을 나눌 줄 알았다. 나는 아이가 되련다. 내가 나에게 맞장구를 쳐주련다. 때로는 성숙이라는 이름의 ‘어른인 나’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어린 시절 친구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에게 맞장구를 쳐주었던 감수성 풍부한 아이들을. 그들은 기꺼이 나를 향해 까르르 웃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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