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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로소 Jan 25. 2022

3. 친구와 가족이 되고 싶었다

나의 어머니들에게


어쩌면 나는 가정을 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가족 말이다. 어머니가 있었으면 했다. 존경하고 배울 점이 있는 어른. 내가 조금 삐뚤고 부족하고 모났을지라도 그런 내 모습까지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그게 나에겐 친구였다.


어른스럽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자란 나이지만, 나는 그게 가짜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는 갓난아기에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한 아이가 두세 명쯤 있다. 그 아이들을 욕하고 짓밟으며 자라난 게 내 자아이다. 그래서 내 속은 늘 시끄럽다. 아이들이 울고 있다.


나는 진짜 어른스러운 사람을 알고 있다. 꼭 나만큼, 똑같이 작고 여렸던 나의 친구들. 나만큼 결핍이 있었고 나만큼 사춘기였지만, 어떻게 그렇게 단단하게 누군가를 받쳐줄 수 있었을까 싶은 아이들. 그러나 때때로 내게 너무 힘든 추억을 선물했던 친구들도 알고 있다.

그 애들은 또 그만큼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일부를 내어주는 것쯤, 나를 좀 아프게 하는 것쯤은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종일 친구 집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학교 끝나자마자 들어가서 저녁식사까지 얻어먹고 날이 깊어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친구들의 어머니들은 나에게 밥을 해주고, 간식을 챙겨주며 따듯하게 대해주셨다. 그 작고 꾀죄죄한 남의 집 아이를 기꺼이 보살펴주셨다.

가끔은 당신의 딸과 같은 옷을 사 입혔고, 어른으로써 고민상담을 해주었고, 가족 외식에 초대하며 '친구의 엄마'가 아닌 진짜 어머니처럼 대해주셨다. 우리 엄마로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형태의 돌봄이었다.

그래서 나는 살가운 자매 같은 친구를 두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어머니들은 나의 친구들이다. 나는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생활력이 매우 약하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 외에는 상식이 부족하다. 늘 덤벙거렸으며 멘탈도 약했다. 특히나 심리적으로 나는 친구들에게 많이 기대었다.



지금도 멘탈이 무너지는 날이면 친구 H에게 전화를 건다. H는 가장 오랜 기간 나를 견뎌준 친구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사춘기를 겪었다. 그건 내가 "모든 걸 알고 있고, 하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착각"과도 같았다. 특히나 나는 나를 내려다봤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비웃고 조롱하는 목소리가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남 탓을 했다. 사실 그 병은 지금도 낫지 않았다. 이건 조금은 유전이고, 이런 나를 지탱해서 살고 싶은 최소한의 방어기제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 내가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다며 떠나갔다. 아직도 나는 내가 정말 '그런지' 의심하면서 살고 있다.


H는 누구보다 이런 초라한 나를 잘 알고 있다.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친해진 H는, 그 시절부터 배려심이 깊은 아이였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내 말을 끊은 적이 없고, '네가 틀렸다', '네 생각이 과하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내게 어떤 훈계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공감한다. 아주 적절한 리액션이나 조언과 함께 가장 먼저 내 마음을 위로한다.

나도 안다. 내가 매번 옳을 수 없다는 거. 때때로 내가 과하게 예민하다는 것. 그녀라고 모를까. 하지만 H는 내 입장에서 생각하고, 내가 옳지 않은 판단을 내리거나 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생각의 흐름을 이해한다. (나에겐 그 흐름의 당위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강조한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순간도 더러 있겠지만, 기꺼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 준다. 글쎄, 설령 착각일지라도. 그녀의 이런 행동이 온전히 내편이라는 감각을 준다.

내가 어떤 사람을 비난하고 싶어 하면 기꺼이 같이 비난해준다. 내가 두 가지 선택지를 고민하면, 내가 조금 더 마음이 가는 쪽을 권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답을 낼 때도, 내가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면 기꺼이 그 방향으로 답변을 틀어준다. 조금도 빗나간 적이 없다. 이것이 얼마다 뛰어난 '듣기'능력인지 놀라울 정도다.


그 사람의 말속에 그 사람의 마음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 내가 옳다고 믿은 방향으로 듣고 답한다. 그렇게 많은 관계들이 틀어졌다. 하지만 나를 향한 H의 마음은 정면이고 곧은 선이다. 나는 자주 그런 친구가 되어주지 못하는 데도 말이다.

H는 아마 나 이외의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다. 나는 안다. 그건 H의 인성이라는 것을.




내게는 성장 시기마다 피부처럼 붙어 다닌 친구가 있다.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 동기까지.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에는 계속 그랬다.

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는 발악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친구들의 집은 저마다의 세계였다. 나의 집에는 없는 고소한 밥 냄새, 따듯한 방바닥, 저마다의 새것들로 꾸며 '평범'한 방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요람 같은 친구의 방이 있었다. 그래 너는 이런 곳에서 자라왔구나. 그런 그 아이들이 좋았다. 나와 달라서 좋았다.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때때로 안 좋은 방향으로 흘렀다. 나는 친구를 소유하고 싶어 했다. 친구가 나를 빼고 다른 친구와 노는 것이 싫었다. 친구를 둘러싼 나 이외의 관계가 질투 났다. 늘 내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친구 마음속 우선순위의 맨 앞에 있고 싶었다.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있고 연인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소중한 친구들, 나의 어머니들을 잃었다. 그러나 아깝다는 마음은 없다. 그 순간에 나는 최선을 다 했고, 그 친구들 역시 그랬다. 서로를 조용히 혹은 요란하게 떠나보내는 것도 우리들의 우정 방식이었다.  


최근에 모성에는 기능적 모성과 관계적 모성이 있다는 걸 배웠다. 내가 왜 그렇게 괴로웠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엄청난 기능적 모성을 퍼부어 주었다. 내가 먹고 자고 쓰고 배우는 모든 것을 위해 당신의 살을 깎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나 관계적 모성은, 오직 친구들에게 받았다. 감정적 공감, 응원, 보살핌, 아낌, 때로는 애틋할 정도의 애정... 함께 슬퍼하고 함께 웃어주었던 모든 순간들을 떠올리면 친구들이 있다.


어릴 적 엄마는 친구가 그렇게 좋으면 나가서 친구랑 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 어찌 보면 친구들은 나의 생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기에 쉽게 감정적 지지를 주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맞다. 저 아이가 먹고 자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어서, 그저 이 관계가 소중해서... 혹은 이 관계 속의 자신이 소중해서 탱탱볼처럼 주고받는 예쁜 감정들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 나는 그런 관계가 필요했다. '책임감'이 빠진 자리의 '감정적 여유', 그 여유로 나를 품어줄 수 있는 둥지가 필요했다.


친구와 가족이 되고 싶었다. H의 동생처럼 살가운 가족 구성원이 있으면 했다. J의 어머니처럼 집에 계시면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C의 부모님처럼 자녀의 친구까지 딸처럼 아껴줄 수 있는 도량이 있었으면 했다.  L의 부모님처럼 가끔 서점에 데려가 2권씩 책을 사게 해줬으면 했다. A의 어머니처럼 차를 타고 학교 앞까지 데리러 오거나 엉뚱한 농담으로 웃게 해주었으면 했다. P의 부모님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히 나를 받아들여줬으면 했다. 그러면 나도 그 아이들의 가족이 될 수 있었을 테다. 무엇보다 H가, J가, C가, L이, A가, P가 불 꺼진 차가운 골방에 나를 던져 넣지 않기를 바랐다. 나의 감정도, 이야기도, 추억도 의미 없어지는 그곳으로는. '가족애' 대신 '생존'만이 가득한 그 방으로는. 가기 싫었다.    

 








Photo by Gemma Chua-Tr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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