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면서도 배우지만 영화란 참, 예측할 수 없는 문화이다. 소위 한국의 흥행불패 배우, 연기 잘한다는 배우를 포함해 명감독이나 유명 작품의 전 제작진을 모아 영화를 만들어도 흥행에 참패를 맞는 작품들이 많다. 그중 하나인 올해 영화 중 한 작품, 예측에 비해서 관객 수가 미치지 못한 <비상선언>을 봤다. 이름 날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의 이름을 보자마자 어떤 작품일지가 예상가는, 그러니까 소위 cj 감성이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영화관에 갔다. 김남길, 전도연, 송강호, 이병헌, 김소진 등등 알고 있는 배우들의 향연이었는데 대중의 눈에 익은 배우들이 장면마다 연달아 나올 때마다 메시지나 '비상선언'이라는 자체 매력을 뽐내지 못하겠다 싶었다.
하와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 승객 류진석(임시완)이 기내에 생화학 바이러스를 퍼뜨리며 러닝타임 140분이라는 긴 시간으로 보아 비행기가 쉽게 난공불락 되겠구나 하며 보았다. 기체도 오래됐고 연료도 부족한 비행기가 자알 버틴다는 그런 이야기인데, 지상에서는 정부가 비행기 착륙과 바이러스 치료제 논의한다. 기장이 죽고서 기내에 퍼진 바이러스 비행기, 비행기를 조종하는 전 기장이자 아이 아빠(이병헌), 사랑하는 아내가 하와이 행에 타 있는 형사(송강호), 승객을 우선시하는 사무장(김소진). 이러한 캐릭터로 보아도 수가 보이는 작품이다.
초반 4-50분 정도는 나름 긴장감도 돌아 흥미롭게 봤다. 형사가 사이코패스 집에 몰래 들어가 수색해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 공항과 비행기 그리고 범인을 찾아내는 정신없이 형사의 표정과 장면이 교차되는 연출까지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후반부는 처참했다. 바이러스로 인해 자국민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착륙 불허시키고 국민들은 바이러스가 무서워 착륙 반대 시위를 열고 그로 인해 승객들과 직원 모두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장면.... 왜 그러셨을까요. 각본이 공을 들인 연출이나 배우들의 열연에 비해 아까웠다. 또 여기서 살아남은 승객들이 대체 인생을 어떻게 앞서 살아갈지, 꽤 충분한 정신적 치료가 필요할 거고 또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다시 떠오르게끔 했는데 객실 승무원이 부족하거나 없었더라면 혼돈 속 비행기가 아닌 혼돈 속 카오스였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침착하게 승객들을 서비스하며 안전으로 인도하는 직업이었다. 비행기 기장은 자신에게 승객들의 목숨이 달렸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면도 눈여겨 보았다. 그리고 언제나 영화 속 무능해 보이는 정부 속에 있는 국민을 위한 장관도 있었다.
영화는 당장의 것이 보이는 나무보다는 숲을 봐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말 많은 신파. 넣을 수 있다. 넣어도 재미있을 수 있고 연출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 재난 영화에서는 필요하지만, 이상으로 불충분했다. 안 그래도 대중들은 몇 십 년째 비슷한 한국 신파 영화에 질렸을 때인데도 여전히 신파 없는 영화를 찾기 힘들다. 물론 그럼에도 이웃 간의 사랑과 가족이라는 메시지라는 건 알겠으나 꼭 비상선언 같은 긴급 재난 상황에 신파가 심했어야 했을는지... 근데 마지막 영상통화 장면에서 약간 울컥했으나 참아낸 나도 보였음. 이게 어른들에게는 확실히 먹힐 만한 장면이었을까? 초반부 비행기 안을 보여주는 멋진 연출 60분에 비해 나머지 80분이 아까웠다. 재난 사태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줄 알았더니만 재난 영화라 하기도 애매하고 아쉬움 그득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놀라운 연기력이라던 임시완 님은 베테랑 이후부터 줄줄이 나왔던 사이코패스, 빌런, 가짜 광기들의 모습이 합쳐 그려져서 오히려 돋보이지 않았다. 인간성이 부족한 연기가 더 쉽다는 배우들의 말에 공감이 됐던 역할이었다. 오히려 영화 속 내내 중심을 잡아주었던 다른 배우들 승무원 역 김소진 님, 부기장 김남길 님이나 역시나 축을 놓는 송강호 님이나 이병헌 님 연기를 곱씹어 보았다. 언제쯤 나오나 싶을 장면에 전도연 님이 등장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던 담대하면서 지혜로웠던 역할인 김남길, 김소진 님 역할과 연기력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김남길 님 연기와 눈빛 목소리는 정말 좋아하는데 연기 쪼가 없다고 생각하는 배우 중 한 명이고 목소리와 연기력이 내 취향이다. 그리고 사무장 역으로 나온 김소진 님도 눈빛이랑 목소리가 배역과 잘 어울린다. 두 사람 모두 올해 초에 방영한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호흡을 맞췄었는데, 악마들이 생각나서 그런가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이 좋았고 다음에 다른 작품에서도 만나고 싶다.
유명 배우만 데리고 흥행에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인 걸까. 한국 사람들에게는 배우도 배우이지만, 아무래도 메시지나 연출 부분이 중요한데 말이다. 제작사의 기대와 달리 대중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건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아쉽다는 입소문이 아닐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영화였다.